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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Dec 18. 2018

꼭 해야 할 일 같은 건
세상에 없습니다.

[서평]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오쿠다 히데오 그의 천재적 장편소설

우리는 모두 비틀즈의 팬이다. 비틀즈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순 없었지만, 비틀즈의 카세트, 비틀즈의 시디를 들으며 내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런 면에서 굳이 비틀즈의 팬임을 떠벌리고 다니지 않아도,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비틀즈의 팬이 아닐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yesterday'의 초반 도입부를(정확히 표현하자면 오직 그 부분만) 따라부르며, 뒷부분은 허밍으로 흥얼거리지 않은 이가 과연 있을까. 원하건 원하지 않건, 비틀즈의 음악은 우리 아버지 세대부터 우리 세대까지(사실상 이후 모든 세대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우리는 모두 비틀즈의 팬인 셈이다.


이 책을 처음 집어든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표지에 그려져 있는 존과 그 옆에 나란히 서있는 동양인처럼 보이는 여자가 내가 알고 있는 어느 유명 그룹의 멤버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책 귀퉁이엔 '장편소설'이라고 표기되어 있긴 하나 심지어 제목조차도 '팝스타 존'이라고 하니, 내가 몰랐던 존 레논의 자전적 에세이인가 싶어서 다시 한번 책을 찬찬히 살펴보게 된다. 허나, 존레논의 자전적 에세이, 혹은 그의 인생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책은 세상에 존재하질 않으니, 이건 소설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소설이라고는 해도, 감히 어느 누가 그의 삶과 인생을 논한단 말인가. 그런 찰나의 불쾌감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점이 내 안에서 점차 모호해짐을 느꼈다. 


존 레논의 대략적인 삶을 알고 있다는 배경지식이 오히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책을 읽는 재미를 더욱 부추겼다. 어느새 이 책이 소설이라는 걸 잊게 된다. 책 내용 역시 현실과 꿈이 뒤섞여서 등장한다. 뭐가 진짜고 뭐가 픽션인지 가늠하기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비틀즈의 존과 관련해서 행방이 묘연한 4년간이 있다. 책의 저자 오쿠다 히데오는그 4년간을 상상력 하나만으로 재구성한다. 이야기 안에는 요즘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진정한 '힐링'이 들어있다.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비틀즈의 존과 관련해서 행방이 묘연한 4년간이 있다. 책의 저자 오쿠다 히데오는그 4년간을 상상력 하나만으로 재구성한다. 이야기 안에는 요즘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진정한 '힐링'이 들어있다.  


분명하다, 저자 역시 비틀즈의 광팬일 것이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존의 일생 전체를 그려낸 것이 아니라, 그의 행적이 묘연했던 단 4년간을 표현했기 때문에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못해 허무할 수도 있다. 가뜩이나 불쾌감으로 읽기 시작했건만, 존의 숨겨진 엄청난 이야기를 기대했건만, 이야기는 존의 변비와 함께 시작한다. 


어느 날부터 존의 일상에 아주 작은 문제가 생겼다. 바로 존에게 변비가 생겼다는 점인데 처음에는 가벼워 보였던 이 변비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상치 않아진다. 바로 존이 '변의'조차 느끼질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이 과연 배설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우스꽝스러운 소재일지 모르지만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가 제기하는 문제에는 우리의 허를 찌르는 무언가가 있다.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숨기고 살아가는 걸까. 겉으로 보이는 미소 속에 무엇을 파묻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걸까. 들키고 싶지 않은 속마음. 안 보이는 체하는 진실. 행복하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거짓으로라도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그것은 마치 그렇게 되고 싶은 자기암시 같은 것이다."


변비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존은 의사와 상담을 시작한다. 변비를 치료하기 위한 상담이라니, 누군가에겐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의사와의 대화를 통해 나오는 대사들은 결코 변비만큼 가볍지 않다. 


의사는 존에게 우리 각자가 언젠가는 느꼈을 '정답에 대한 강박'을 이야기한다. 각자의 인생에서 꼭 해야만 하고, 꼭 가야만 하며, 꼭 거쳐야만 하는 것은 없다고 의사의 입을 빌어 작가는 이야기 하고 싶은 듯하다. 그야말로 우리네 각자의 인생이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언젠가부터 평균적인 삶, 꼭 지향해야만 하는 삶을 설정해놓고 서로 그 틀 안에 들어가기 위해 버둥거리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복잡다단한 삶에서 이러한 공식이라도 있는 편이, 각자 삶의 성공과 실패를 규정짓거나 판단하기 용이하기 때문일지 몰라도, 우리는 모두 각자가 꼭 해야만 하는 것들을 내면에 차곡차곡 쌓고 살아간다. 


쌓은 것들의 해소는 곧 행복이고, 계속된 재고는 불행으로 귀결된다고 믿지만, 우리가 왜 꼭 그래야만 하는지가, 이 책이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이 아닐까. (의학적으로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변비면 어떤가, 꼭 우리는 배설을 해야만 하는가,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작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진다.


살아가면서 꼭 해야 할 일은 하나도 없다.


"실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살아가면서 꼭 해야만 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책도 없고, 만나지 않으면 안 될 사람도 없어요.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음식도 없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학교도 없죠. 권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의무는 없어요. 해서는 안 될 일이 몇 가지 존재할 뿐이고,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심리가 너무 강합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존재들 아닐까. 각자 맞는 나이에는 각자에게 주어진 미션이 존재한다. 학생은 공부를, 대학생은 취업을, 회사원들은 결혼을, 부부들은 아이를. 그렇게 본다면 우리네 인생은 끝없이 펼쳐진 미션들을 하나하나 달성해 가는 과정이 아닌가. 다만, 자문해 볼 수 있겠다. 과연 우리는 이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비혼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한다. 하나의 고정관념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는 방증이다. 결혼 그 자체가 우리 모두가 넘어야 할 허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안에, 또 우리 사회엔 금이 가고 깨져야 할 많은 고정관념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타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달성해야만 하는 미션'의 노예가 될 것이다. 왜 해야하는지, 무엇을 위해 해야하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해야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누군가 묻는다면 이런 형편없는 대답밖에 할 수 없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 대해 우리 각자가 스스로에게 묻기를 바란 것 같다. "꼭 해야만 하는 게, 맞습니까?"라고 말이다.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글을 다 읽은 시점에서 든 생각이었다. 존 레논의 사회적 공백기, 그 4년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라고 했다. 4년을 기준으로, 존 레논이 발표하는 음악이 구분된다. 이 책은, 그 4년 동안에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지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 그 자체다.


아무런 단서 하나, 증인 하나 없이 오로지 상상력에 기대 작가는 누군가의 4년을 메꾸는 데 성공한다. 거기에 현대인들의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끼워 넣기까지 한다. 고정관념에 빠지지 말라고 말이다.


작가만큼 내가 존을 잘 안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작가는 존의 일생과 그 삶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 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진다. 당신도 비틀즈의 팬이구나. 그래, 우리 모두는 비틀즈의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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