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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Sep 21. 2018

당신의 가족은 행복한가요?

[서평] 박사가 사랑한 수식,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 기억을 잃은, 정확히 말하면 과거의 쳇바퀴 같은 80분간만을 기억할 수 있는 한 노인이 있다. 가정부 없이는 거동조차 힘든 상황임에도, 그 특유의 괴팍함으로 이미 수 차례나 가정부를 '갈아치워' 왔다. 그런 그에게 미혼모 가정부가 등장한다. 고작 스물여덟의 나이지만, 이미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있다. 생계를 위해 주인공 '나'는 예순네 살의 천재 수학박사(그마저도 과거의 일이지만)와 하루 대부분을 그를 돌보며 함께 보내야 한다. 어제와 같은 하루하루지만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고자 빼곡한 메모지를 온몸에 덕지덕지 붙여가며 하루하루를 기억과 투쟁하는 그와의 생활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박사에게도 그리고 주인공 '나'에게도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박사는 수학과 야구가 세계의 전부인 사람이다. 첫 대면부터 신발 사이즈와 전화번호를 질문하며 주인공의 신발 사이즈 24는 4의 '계승'으로, 실로 정결한 수라고 한다거나, 주인공의 전화번호 5761455는 1에서 1억 사이에 존재하는 소수의 개수와 일치한다고 하는 등, 모든 일상의 대화를 수학의 수로 치환하며 상대와 이야기를 한다. 다행히, 주인공 '나'는 이런 박사의 대화에 대해 신기해한다거나 흥미로워한다. 박사의 배려와 호의로, 아들을 박사의 집에서 함께 돌볼 수 있게 되었고, 처음 대면한 그 자리에서 박사는 아들에게 '루트'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
.
<박사가 사랑한 수식 中>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선 세 사람이 함께 일궈가는 이상적인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물론 그 안에서 누군가가 실수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다른 상대편이 감내하고 배려해야 할 것도 생기지만, 세 사람은 함께 우정을 쌓으며 더욱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문제는 박사는 단지 80분간만을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단지, 단지 80분간만을 기억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을 뿐, 사실 박사가 해내지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주인공 '나'는 이따금 그 사실을 잊으며 박사의 한계를 설정한다. 그리고 그걸 일깨우는 건, 아이러니하지만 어린 아들 루트다. 서로 간에 가장 중요한 건 '신뢰'가 아니냐고 어린 아들 루트는 주인공 '나'에게 일갈한다.

“너 혹시, 박사님이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다고 화난 거니?”

“아니야.”

루트는 나를 노려보며 언제 울었냐는 듯이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엄마가 박사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야. 박사님에게 나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까 하고 잠시라도 의심한 엄마를 용서할 수가 없어서야.”
.
.
<박사가 사랑한 수식 中>

이렇게 루트는 비록 어리지만, 이따금 어리지 않은 순수한 감정으로 주인공 '나'를 돌아보게 하기도 하고, 박사는 박사 나름대로의 배려로 이 둘을 보듬으려 한다. 주인공 '나'는 본인에게 지워진 책임감을 넘는 사랑으로 박사를 돌보며, 아들 '루트'와 함께 박사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한다. 중요한 건, 이들 세 사람이 각자에게 길들여지며 서로를 배워간다는 점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던 일들이, 세 사람이 연대하고 힘을 합치자 별 것 아닌 일들이 되어간다. 박사와 함께하는 '야구장 나들이'는 예전이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었다. 그러나, 세 사람 각자가 맡은 역할 속에서 서로를 배려했을 때 어떠한 장애물도 헤쳐나갈 수 있게 된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본인의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기분은 어떨까. 다른 사람들은 오늘을 살고, 그렇게 쌓인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지만, 박사에게 쌓이는 건 없다. 내일도 결국 늘 같은 '80분'일 수밖에 없다. 앎도 감정도 늘 제자리걸음인 기분은 아무리 몰입하려 해도 몰입이 되질 않는다. 고작 80분이다. 80분마다 박사는 본인이 스스로에게 써두었던 메모지를 발견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좌절한다.

박사는 자기 발치로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굽은 등이 하룻밤 사이에 더 왜소해진 것 같았다. 소모될 대로 소모된 몸은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고, 그저 갈 곳 잃은 마음만 엉뚱한 곳을 헤내는 것 같았다. 숫자의 비밀을 밝혀낼 때의 집중력은 사라지고, 루트를 끔찍하게 아끼던 애정도 온데간데없고, 온몸에서 생기란 생기는 다 빠져나간 듯 보였다.

마침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 나는 그 소리가 박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줄은 모르고 방 어디에선가 망가진 오르골이 울리는 줄로 착각했다. 루트가 손을 베었을 때 들은 울음소리와는 전혀 성질이 다른, 오직 자신만을 위한 나직한 울음소리였다. 

가장 눈에 잘 뜨는 곳에 붙어 있는 메모지, 박사는 윗도리를 걸치면 복기 싫어도 보게 되는 가장 중요한 메모를 읽고 있었다.

'내 기억은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
.
<박사가 사랑한 수식 中>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모든 것이 변화하고, 심지어 그 속도마저 종잡을 수 없는 현실에서 수학이야말로 절대 불변하면서도 순수한 언어가 아닐까. 이기주의와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삭막한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작가는 수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박사를 통해, 그리고 루트를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듯 느껴진다. 조금씩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냐고 말이다. 


학창 시절 그렇게 멀리했던 수학에 이런 따뜻한 이야기를 담아낸 작가의 역량이 놀랍다. 책의 저자야말로 수학을 포기한 대입 입시생을 자녀로 둔 게 아니었을까. 수학이 쓸데없는 학문이 아니며, 우리 인생에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고자 글을 쓰지 않았을까 라는 상상을 해본다. 동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수학을 매개로 이런 따뜻함을 품을 수 있다는 건, 작가적 재능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힘들다.


시종일관 박사를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하는 루트의 존재가, 그리고 그런 루트를 향한 박사의 애정이, 그런 박사를 향한 주인공 '나'의 배려가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이들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다가도, 피는 섞였지만 남보다도 못한 짓을 저지르는 가족들이 너무나도 많은 세상 속에서, 가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가족의 범주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세상이다. 가족임에도 타인에게 보다 더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 가족이기에 참을 수밖에 없는 일과 상황들. '가족'이라는 미명 하에 너무나도 많은 만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신문지상과 뉴스를 통해 나오는 사건 사고들은 더 이상 놀랍지도 충격적이지도 않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들도 처음부터 '그런' 가족은 아니었겠지, 아니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루트 건만, 여러모로 우리 모두 그에게 배울 점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사랑, 상대에 대한 배려를 말이다. 단지 피가 섞였기 때문에 가족이 아니라 신뢰와 사랑, 믿음을 주었을 때 우린 어느 누구와도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작가가 책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바였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부모님과 형, 그리고 와이프에게 이런 전적인 신뢰와 사랑, 믿음을 주고 있는지 자문해 보게 됐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도 '남보다 못한 가족'과 '가족보다 더 끈끈한 이웃' 사이의 간극에 대해 한번 스스로 성찰의 기회로 삼길 권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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