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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Mar 17. 2020

우아하게 나이 먹는 나만의 레시피

'내일 일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을 통해 엿본 근사한 어른의 모양

높은 기대감이라는 건 물론 그 자체만으로는 결과물의 수준을 미루어 짐작케 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었을 때 그 기대감의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면 박한 평가를 면하기 힘들어진다. 결국 높은 기대치 그 자체만으로 이미 어떤 리스크를 포함하고 있는 것 아닐까. 어느 누가 봐도 기대감을 채우고도 남음이 있을 결과물이라면 아름답겠지만, 문제는 그 결과물이 기대감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 객관적인 지표 이하로 우린 실망하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 건만, 오히려 낮은 기대감을 갖고 있던 어떤 결과물에 대해, 그 기대감을 훨씬 상회하는 만족감을 얻게 되면 우린 환호해 마지않는다. 내게 이 책 '내일 일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이 바로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결과적으로 올해 들어 읽은 책들 중에 가장 눈부신 문장들 가득한 책이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꽃 피는 봄 오기 전이건만, 그럼에도 올해 읽은 책들 중 단연 압권이라 표현하고 싶다. 정말 아무 기대 없이 고른 책이건만, 예기치 못한 일격에 그 여운이 아직도 얼얼하다. 당분간 이 저자의 다른 책들을 모조리 읽어보게 될 것 같다. 필력과 함께, 마음을 담은 흔적이 여실히 보이는 문장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책은 온라인 상에서 연재했다던 그의 칼럼들을 한데 모아 엮어낸 책으로, 그가 인상 깊게 읽었던 책 속의 문장들과 그의 삶을 교차하며 묵상하는 시간들을 함께 담아냈다. 태도와 관계, 시선과 희망이라는 커다란 4가지 주제 속에서 그는 지난날을 반추하고 있다. 백미는 바로 이야기 속에 투영된 저자의 탁월한 균형감각이다. 2016년에 이미 쉰이 되었다던 그는 어떤 순간에서는 20대의 젊은 청춘의 글로, 또 다른 어떤 순간에서는 본래 50대 나이 때로의 글로 신출귀몰하며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저자는 한 가정의 가장이면서 누군가의 참 좋은 선배이기도, 한편으론 나름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평범한 작가이자, 일상 속에서 본인만의 소신을 관철시키려 부단히 애를 쓰는 평범한 소시민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삶이 고스란히 보인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그대로 책에 녹여낼 수 있는 건 아니기도 하고, 또 어른이 되어가며 어느 정도 이상으로 솔직해지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것 역시 잘 알기에 이 책 속 저자의 글이 너무도 반가웠다. 나이를 먹어감에 나 스스로 어느 순간 꼰대가 되어가고 있진 않은지 더러 점검을 할 때 있는데 그때마다 이 책을 펼쳐본다면 아주 좋은 잣대가 되어줄 수 있겠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태생적 '한남'이라고 하더라도, 한 집안의 중심은 가정이 아닌 모든 동거인이라는 생각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하지 않는 한, 뼛속까지 침투해서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저지르는 가부장제의 의식과 태도를 지속적으로 묻고 점검하지 않는 한, '어쩌다 보니 한남'은, '어쩔 수 없는 한남'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그 대가로, 더 깊이 고립되고 더 많이 외로울 것이며 거듭 실패할 것이다."


<내일 일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中

50대가 스스로를 한남이라 자처하기 어디 그리 쉬운 일일까. 집에서 저녁을 먹던 중 딸에게 물을 떠달라고 했다가 된통 핀잔을 먹고선 불만에 혼자 구시렁거리던 저자는 그 불만의 원인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자각하는 한편, 스스로를 '어쩌다 보니 한남'이라 부르길 주저 않는다. 다른 나이도 아닌 50대가 말이다. 실로 재미난 어른이 아닌가.


"나는 우아하게 나이 드는 자세 중 하나는 'shy 하기'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줍어하자는 것도 아니고 부끄러워하자는 의미도 아니다. 자기 공간을 좁게 쓰고, 자기 존재를 작게 드러내는 것 정도가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shy'함의 형상일 것이다. '거침없이 당당하게'라는 자기에게 용기 주기와 남성성의 신화는 가부장적 시대에나 통용됐던 유용함이었으리라. 또는 아직 자기 무기를 감추지 못하고 미숙했던 젊은 시절에나 처방될 수 있었던 자기 최면이었으리라."


<내일 일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中


'감성이 죽었을 때, 인간은 늙는 것이라고' 그는 주문처럼 중얼거린다고 했다. 허언이 아니요 과장 또한 아님을 그의 책을 통해 구구절절 느낄 수 있다. 그는 여전한 청춘이라는 것을. 자신을 비롯한 어른 세대가 짊어져야 했던 당시의 가치에 맹목적 지지 혹은 변명으로 일관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지금이라도 지양해야 할 무언가로 규정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목소리 크게 내며 존재감을 어필하려는 어른이 아니라 되려 목소리를 작게 낼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어디서 얻어낸 근사한 통찰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분명히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우아하고도 세련되게 나이를 먹을 수 있는 자기만의 레시피를 말이다.

언제일지는 모르나 나 또한 그간 읽은 책들을 바탕으로 훗날 나의 삶을 풀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직은 시기상조일뿐더러 괜찮은 롤모델 하나 못 찾았던 지난날이었건만 이 책을 통해 그 시작을 조금은 가늠해볼 수 있었다. 이런 책을 써보고 싶다. 혹은 흐르는 세월 따라 이런 어른의 모양이 되고 싶다. 바라는 대로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건만, 그럼에도 인생이라는 망망대해 속 자그마한 부표 하나쯤 있다면 방향을 가늠해보는 데 조금이라도 수월하지 않을까. 이 책에 저자가 꾹꾹 눌러쓴 담은 삶의 방식이 내겐 흡사 부표와도 같이 느껴졌다. 이따금 쳐다볼 때마다 혹시나 물살에 내 방향이 바뀌진 않았는지, 또는 지금 어느 지점 즈음에 와 있는지 알 수 있는 그런 부표 말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기를 써서 쟁취하거나 노력하지 않더라도 거듭 쌓이는 시간에 비례해 나이를 먹는다. 그러나 나이 먹을수록 편협하고 괴팍해지는 어른이 있는 반면, 다른 어떤 이는 시간이 갈수록 우아하게, 그리고 근사하게 나이를 먹는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시간이건만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답은 이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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