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처럼 쌓여도 즐거울 수 있는 건, 적당히 좋아하기 때문 아닐까
나를 소개할 때 좀 더 그럴듯하게, 기왕이면 좀 더 근사하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 더러 있다. 상상 속에서 나는 청중들을 앞에 두고 영어로 나를 소개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정체 모를 '근사함'인지, 그런 상상할 때 더러 있다. "렛 미 인트로듀스 마이셀프 투 유, 암..."
영어로 소개하건, 혹은 그럴싸하게 나를 포장해서 이야기하건, 그 모습이 진짜 내가 아님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사람, 혹은 몇 안 되는 장점으로 단점을 무마하려는 사람. 어쭙잖은 겸손, 혹은 겸손을 빙자한 허허실실 또한 아니다. 내가 알고 와이프도 알고 내 주변인들 또한 알고 있는 사실 일터, 굳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까닭은 애써 감추거나 숨겨야 할 사실이 아니라는 것 역시 알기 때문이다.
천성이 게으르다고까지는 말하기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나, 그렇다고 부지런하고 근면 성실하다고 말하는 것 역시 마음에 거리낌이 있다. 적당히 누울 자리 두리번거리며 보다가 여차하면 재빨리 누울 줄 아는, 그것도 제일 먼저 말고 적당히 두 번째나 세 번째로 눕게 되는, 이른바 중용의 덕을 추구한다고 조동아리를 나불대는 사람이다. 말 잘한다 하여 이담에 커서 변호사 하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고 이렇게 글로나마 나를 변호한다. "그렇게 게으른 친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얍삽하긴 해도 큰 악의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많이 읽고자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좋은 책을 많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나 좋은 책이란 건 읽어봐야 아는 법. 의도치 않게 다독하는 모양새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 나를 두고 누군가 간혹 질문할 때 더러 있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 비결이 있습니까?' '다독할 수 있는 특별한 독서습관이 있나요?'
그들의 기대치를 채워줄 수 있는 그럴싸한 대답을 하고 싶을 때 많지만, 정작 나오는 대답은 시시껄렁하기 그지없다. "읽을거리가 쌓여서 숙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좋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큰 스트레스가 없는 편입니다. 저 역시 지쳐서 쉬다 다시 읽기, 읽고 쓰기, 그러다 다시 미루기를 반복합니다." 이상적인 독서습관은 틈틈이, 그리고 꾸준히 읽는 것이 맞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말했다시피 나는 그리 특출 나게 근면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애써 노력하진 않는다. 쟁취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오래 하고 싶을 뿐. 순간순간 흥미가 소진되거나 재미가 반감되어 나태해질 때 더러 있더라도 아주 엔진이 꺼지지 않을 수 있는 건,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다. "사랑까진 모르겠고, 그냥 적당히 좋아합니다. 질리지 않을 정도로요." 그 끝엔 뭐가 있을까.
아직 난 잘 모르겠다. 다만 아직 '잘 모르는' 그 마음까지 쓰고 기록하고자 한다면, 그 지나온 발자취를 통해 그 끝에 대해 조금이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나만의 '실록(實錄)'을 훗날 무용담처럼 늘어놓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귀찮음과 미루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고) 나의 글을 쓰겠다. 아니, 쓰고야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