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닥다리 에디 Dec 06. 2020

책으로 엮는 나만의 이야기

남의집에서 만난 사람들, 그 각자의 이야기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함께 얼굴 맞댄 채 나누는 시간, 서로 다른 환경의 각기 다른 개인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 한데 모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전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순간. 과장이나 억지, 허언이 결코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으니 그 세계가 실재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심전심이라 모임에서 같은 시간을 향유한 다른 이들 역시 조금이라도 느꼈기를.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아주 일부라도 그 세계를 가늠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코로나19가 발발하고 아주 재빠르고도 기민하게 독서모임의 운영을 중단했다. 당초 조그만 으름장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는 쫄림보이기도 했지만, 우리네 인생사 중에 가장 기본적인 건강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게 벌써 올 2월 경의 일이었다. 그 뒤로 9개월이 흘렀다. 후회는 없다. 그러나 진한 아쉬움은 늘 마음 한 켠에 또아리 틀고 있던 차였다. ‘남의집’ 호스트가 되어보자고 작심했던 건, 방역에 대한 최소한의 절차를 도와줄 수 있는 이와 협업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올해의 몇 안 되는 내 빛나는 선택이 되어주었다. 신간 출간, 그리고 퍼블리셔스테이블의 참가와 함께 나에게 눈부신 하루를 선사해주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본격적인 홍보의 시동을 채 걸기도 전에, 그러니까 모임이 열리는 날로부터 3주 전에 이미 정원이 차서 더 이상 사람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나의 지극히 협소한 역량을 다행히 잘 알고 있는터라 모임원을 다섯 명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었고,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모임의 질을 생각한다면 이는 필연적인 선택이 되어야 했다.


박도 작가님의 ‘솔직한 서른 살’을 모임의 주제와 연관된 책으로 선정했던 건, 책에서 여실히 드러난 박도 작가님의 지향점이야말로 책을 만들고자 작정한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교보재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사전에 메일로 교감한 그녀와의 짤막한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더 나은 내일을 가늠할 수 있었다. 모임을 준비하는 시간마저 내겐 배움 가득한, 그리고 즐거움 구석구석 베인 시간이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작가라고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쓰고 책을 출간했다고 했다. 책이 완벽하건, 혹은 다소 미흡하건 나만의 색깔이 묻어있는 글과 책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 한 권으로 이미 그녀가 작가로서의 삶을 이어나가도 좋을 충분한 근거가 되어줄 수 있다고도.

그토록 바라던 책 출간 이후, 사실 그녀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지도, 혹은 책을 통해 쏠쏠한 수입을 챙긴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책 출간을 통해 그녀가 아주 사소한 한 가지를 얻은 게 있다면, 글을 스고 책을 만드는 그 과정이 그녀에겐 무엇보다 재미난 일이라는 점 아니었을까. 책 출간을 통해 다른 무엇보다 단지 그녀는 앞으로 계속 써야 할 이유를 얻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도록 하기 위해. 더 괜찮은 글을 독자들에게 선보이기 위한 마음을 담아. 


자신만의 콘텐츠를 글로 적고, 적은 것들을 책으로 엮는다는 건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분명 아닐 게다. 남들 쉬거나 게으름 피울 시간에 글감을 생각해야 하고 그것을 글로 옮겨야 하며, 옮긴 것을 계속 기웃거리며 들여다봐야 하는 일. 누군가에겐 불필요하거나 지나치게 번거로운 시간일 수 있으나 반대로 그것을 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은 모르는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고. 그것이 내가 이 모임을 열고자 한 이유가 되었고, 그래서 모인 사람들은 나의 '솔직한 서른 살'을 선택한 나의 취지에 무척이나 공감해주었다. '에디 님이 이 책을 고르신 이유를 짐작했다'라고 하며.


이번 독서모임에 참여하신 한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책에서 엿볼 수 있었던 작가 박도 님의 개성이 '<아무튼, 술>의 저자 김 혼비 님의 재치와 <월간 이슬아> 의 저자 이슬아 님의 담백 사이에 있는 글'과 같다고. 철학과를 나왔다는 (나도 미처 몰랐던) 프로필까지 조사하시면서 '철학도'로써의 느낌과 문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더 재미있었다고 표현해 주신 부분이 내겐 인상적이었다. 모두 다 격렬히 공감 한 건, '솔직함'을 무기로 내세운 글이 그 자체로 개성 넘치는 이야깃거리임과 동시에 독자들에게 폭넓은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바로 '에디 님이 이 책을 고르신 이유'가 아니었겠느냐며, 나의 출제의도(?)를 정확하게 짚어주셨다. 


덧붙여 모두 다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 것 중 하나는, 도서 제목과 표지의 아쉬움이었다. 안에 들어있는 눈부신 글들을 가늠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제목과 표지 덕에, 되려 그녀의 글이 흡사 반전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그녀의 뾰족한 개성을 담기엔 다소 뭉툭한 외양이 아니었을까. 나 또한 이 전 독후감에서 언급했던 터라 다른 이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끝으로 다들 박도 작가 님의 다음 신작이 기대된다고도. 예상했던 것보다 더 책의 내용을 곱씹어 오신 훌륭하신 수강생들 덕에 무어라 더 부연하지 않아도 모임 그 자체로 풍성한 대화들이 오고 갔음은 물론이다.

오래간만에 진행하는 모임이라 말에 두서가 없었고, 해야 할 말을 하지 미처 하지 못하기도 했다. 진행자 입장에서 전체적인 시간 안배와 진행에 있어선 만족스럽지 못한 모임이었으나 모임원의 역할로 한정한다면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모임이었다. 호기심 동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엔 늘 재미가 수반되는 덕분에 눈 반짝이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당초 나눠주고자 했던 의도보다, 내가 얻어가는 배움의 폭이 더 넓은 모임이 되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독서모임을 진행한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온라인 세상에서 나누는 대화엔 한계가 있다고 여전히 믿기에, 난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기능할 수 있는 연대를 찾고자 한다. 이번 남의집 모임을 통해 그 단초를 얻은 바,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모집할 요량이다. 대면해서 대화를 나눌 수 없다면, 글을 통해 사람들과 연대하겠다. 변하는 상황을 탓하기보다, 그 변화 속에서 유연하게 대처하고 싶다. 늘 그렇듯,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 습관이랄 게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