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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Mar 22. 2020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

학연, 지연을 뛰어넘는 취향의 힘

318 군은 나와 같은 대학 동기라는 점에서부터 인연이 출발했다. 같은 학번이지만 병역을 해결한 뒤 학교에 입학했던 나와 5살 차이가 나는 터라 그는 내게 동기이자 동생인 셈이었다. 당시 5살 차이가 유달리 크게 보였던지 좀처럼 나를 어려워하던 다른 동기들과는 달리 별다른 거부감과 거리낌 없이 내게 다가왔고, 이따금 내게 시시껍절한 우스갯소리를 내던지던 그를 보며 난 묘한 동질감과 이질감을 동시에 느꼈었다. 유유상종과 근묵자흑 사이의 묘한 경계 지점에서 대치하던 것도 잠시, 우린 스스럼없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나름의 관계를 쌓아 나가기 시작했다. 졸업 후 각자 삶의 자리에서 각개전투하느라 왕래가 끊어지기도 했지만 우연찮게 다시금 그 관계의 끈이 이어지게 되었다. 당시 그는 조그만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기에 독서모임을 함께 하게 된 건 그래서 무척이나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홍철 군(본명이 아니다)은 나와 재수학원에서 만난, 같은 학원 동기인 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음악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재즈 기타리스트, 그가 되고자 했던 건 재수학원 수강생보단 무대 위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기타리스트라고 했다. 그러나 삶이란 늘 그렇듯 바라던 바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 터라 재수학원에서 우린 만나게 되었고 이후 각자 대학을 들어간 후에도 종종 왕래를 하며 소식을 주고받고 있었다. 


왕년에 기타 꽤나 치던 음악가는 공무원이 되었다. 책을 자주 읽진 못하지만 좋아한다고 했던 그는 함께 독서모임을 해보고 싶다고 내게 대답해주었다. 이렇게 318군과 홍철 군 그리고 나. 마침내 나의, 그리고 우리들의 첫 독서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닻을 올리며 떠나는 첫 항해, 혹은 달을 향해 우주로 떠나는 카운트다운, 결과를 배제한 기대감 자체로만 놓고 본다면 이와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지 않았을 당시였다.

독서모임을 시작했다고는 하나 일천한 경험 덕에 막연할 수 있었고, 우왕좌왕할 수 있었다. 이를 상쇄한 건 다름 아닌 모임 멤버들과의 정서적 유대 덕분 아니었을까, 지나고 나서 보니 그 덕분에 쾌조의 출발이 가능했다고 되돌아보게 된다. 책을 포함하여 책과 삶을 대하는 태도들에 비슷한 공통점도 많았고, 취향까지 비슷하게 수렴했기 때문에 조금은 더 열린 마음과 자세로 합심할 수 있었다. 본디 ‘나’를 중심으로 맺어진 관계였던 덕분인지, 모임원들끼리 서로 어우러지는데 위화감이 없는 건 어찌 보면 성공적인 멤버 모집의 결과였던 셈이었다. 거창한 웃음보단 시시껄렁한 농담을 더 좋아한다거나, 애써 찌질함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거나, 셀 수 없이 많은 단점을 부끄러워하기보단 한 줌도 채 되지 않을 장점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점들까지, 책을 좋아하는 것 이외에도 서로 공통점이 많았다. 결국 나의 친구는 나의 다른 친구들과도 결이 잘 맞는다는 것, 유유상종에 입각한 이 경험은 이후에도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부분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긴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두 명의 모임원이 추가되었다. 나의 다른 친구 한 명과 홍철 군의 다른 친구 한 명, 이 역시 유유상종에 입각한 추가 선발이자 각자가 신뢰하는 관계성에 근거한 확률 높은 베팅이었다. 이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일 거라는 믿음 말이다. 나이와 성별, 업으로 삼고 있는 일은 모두 제각기 달랐지만 결국 우린 취향이 비슷하다는 공감대 하나로 모이게 되었다. 이렇듯 총 인원 5명이 참가하는 독서모임의 윤곽은 점차 선명해지고 있었다. 

한 권의 책을 모두의 토론으로 결정한 뒤 한 달에 한 번 만나 그 책에 대해 미리 나눈 질문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 옳고 그름보다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며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시각을 배우는 한편, 이를 통해 나의 시야를 확장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자발적이면서도 서로 책임감을 갖고 임하는 독서모임, 책을 접점으로 하여 어떠한 이야기든 나눌 수 있는 모임, 다만 서로 간에 적절한 예의를 갖추며 상대방을 존중하며 귀를 기울이는 모임. 우리의 모임은 그러했다고 회고한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는 길에 그런 신명이 생겨날 리 없기 때문이다. 


모임은 그래서 늘 즐거웠으며 나누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고 매 순간이 내게 유의미했다.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지적인 욕구를 넘어 정서적 만족감까지 얻을 수 있었기에 그 시간들을 자양분 삼아 난 분명 한 뼘 더 자라났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시간들이 없었더라면 나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분명 더 많은 시간들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함께 나누는 대화들 속에서 발견하는 통찰과 깨달음은, 혼자 악전고투했더라면 더 걸릴만한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시키는 힘이 있다고 난 믿기 때문이다. 그런 1년을 보내면, 사람은 누구든 성장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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