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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Feb 17. 2020

독서모임 운영자 자격증 취득과정

독서모임 운영을 위한 필수 자격요건, 일단 시도해보는 마음가짐

몇 움큼의 용기를 짜내어 참가해 본 독서모임이 대실패로 귀결되자 이후부턴 다른 독서모임을 찾아 나서기가 저어되었다. 책이라는 공통분모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나의 다른 성향들마저 가리거나 덮어주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당시 내가 참여했던 모임들에선 활로를 찾을 수 없었다. 평균 이상의 낯가림과 굉장히 저조한 적극성을 가지고서는 사실 어딜 가나 대동소이한 결과가 예상됐기에, 그즈음부터 난 다른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바로 나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독서모임을 직접 모집해 보는 방법, 수많은 독서모임 중 내게 맞는 모임을 찾아다니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말이다.


그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을 살면서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어떤 모임을 기획하거나 모집, 혹은 운영한다는 그런 발칙한(?) 상상 말이다. 상상조차 한 적 없었으니, 하물며 현실세계에서 내가 무언갈 조직하고 운영해본다는 건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일이었으며 어찌 보면 그간 공고히 쌓아온 나의 정체성마저 위협하는 일이었다. 상상 속에서도 난 늘 수동적인 인간이었으며 무언갈 말하기보단 듣는 편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잘 못하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 문제일뿐더러, 설령 실패로 귀결된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배우고 익힐 것은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 생각이 내 인생 속 전무후무한 첫 시도의 슬로건이 되었다.

 

‘잘할 생각조차 하지 말자. 일단 해보자’는 것 말이다.


성과를 내야 하는 압박이나 책임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야말로 퇴근 후 나의 온전한 즐거움을 위한 일이 아닌가. '담백하고 가벼운 마음'은 쾌조의 시작을 위해 가장 우선시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별다른 고민을 배제한 채, 먼저 가벼운 행동으로 옮겨보는 것이 나의 첫 목표가 되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사실 그땐 생각했던 바의 실천, 그거면 족하 고도 남음이 있었다.


직접 주체가 되어 독서모임을 운영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그 대상이 처음부터 불특정 다수가 된 건 아니었다. 그럴 배포도 없었을뿐더러 안정 지향적인 나의 성향과도 맞지 않았다. 나는 독서모임은 물론이거니와 어떠한 모임도 능동적으로 운영해 본 적도 없었기에, 모임과 관련한 어떠한 능력도 내 안에 없다는 전제가 깔려야 했다. 이러한 악조건의 전제 하에서 독서모임을 함께 해볼 수 있는 건, 사실 딱 한 가지 경우만이 존재했다. 바로 독서모임의 대상을 친구 및 지인들로 한정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었다.


결심이 선 그 순간부터 친구들을 포함한 지인들을 만나거나 우연찮게 연락할 때마다, 함께 독서모임을 한번 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거창한 건 결코 아님을 분명히 밝히는 한편 ‘혼자 읽은 책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독서모임의 단촐한 목적으로 이야기했다. 약 2주 간의 시간이 지난 시점에, 뜻을 같이 하기로 한 두 명의 소중한 모임원들이 모이게 되었다. 누군가에겐 ‘고작’ 두 명이겠지만, 내게는 한 명 한 명이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독서모임의 모집을 시작하기 전부터 염두에 둔 최소한의 모임원 숫자가 나를 포함한 세 명이었던 터라 이 역시 내게는 쾌조의 스타트였던 셈이다. 이렇듯 독서모임을 위한 판이 서서히 깔리고 있었다.


독서모임 ‘마실’은 그렇게 발족하였고, 태동하였다. 절대반지를 사수하고자 떠난 반지원정대, 7개의 드래곤볼을 모으기 위한 손오공 일행의 모험, 짧은 문장력 탓에 무엇에 비견한다 하더라도 당시의 내 심정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꿈과 모험의 나라 초입 어디쯤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미지의 세계였건만 그리 큰 두려움은 없었으니 나 같은 겁쟁이에겐 그마저도 신기한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두려움보다 왜 설렘의 질량이 더 컸던 걸까. 


돌이켜보면 난 독서모임 그 자체에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 즐거움이 다른 모든 수고스러움과 번거로움, 그리고 두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 이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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