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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Feb 11. 2020

정말 책 얘기만 하나요?

독서모임, 책과 사교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수고하셨습니다. 2차는 지난번 우리 갔었던 그 맥주집으로 갈게요.”


인터넷에서 독서모임이라고 검색을 해보면, 정말이지 수많은 독서모임이 검색된다. 모임 관련 어플이나 책과 관련된 카페 등, 언제부터 이렇듯 도처에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그 어느 곳에서나 독서모임은 존재한다. 일단 집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한 차례 거른 뒤, 그중에서 나와 제일 맞을 만한 모임을 찾기 시작했다. 모임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중에서 내게 맞는 모임 일지를 판단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제일 활성화되어 보이고, 모임에서 선정된 책 제목들이 지나치게 가볍지 않았던 한 모임을 선택했다. 모임 가입 문의를 통해 나에 대한 간략한 프로필 정보를 보낸 뒤, 가입 승인이 이루어졌다. 다음 모임일은 약 2주 뒤, 읽고 나눌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얼마나 나눌 이야기가 많은 책인지는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어떤 사람들 일지, 잘 어울릴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도 있었지만 그보단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다.


다른 모임들도 다들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가입과 실제 참여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자면 말이다. 필요한 건 자그마한 의지와 결단력, 그리고 실행력일 뿐. 독서모임은 단지 그 소재가 책이라는 점, 그뿐이다. 모임에 대한 기대 역시 그 정도였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남들과 함께 나눈다는 점,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고 그것이 어떤 시너지를 일으킬까, 그리고 그 담론이 내게 어떤 새로운 영감을 줄까. 모든 건 미지수였지만 그것이 오프라인 모임의 묘미이자 넘어야 할 유일한 허들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전부 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아닌가, 다른 소재였다면 엄두도 못 낼 바깥 모임 이건만 그것이 책이었기에, 얼마 있지도 않은 용기를 쥐어짜서 나는 그 허들을 넘을 수 있었다. 어느덧 다가온 모임일,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해서 모임 장소로 향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과 이렇게 한 자리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라 조금 떨리지만 앞으로 재미나게 활동해보고 싶어서 이렇게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본적으로 밝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미 만들어진 지 시일이 꽤 지난 독서모임이라 서로가 다들 이미 익숙해 보이기도 했고, 그랬던 덕분인지 분위기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거웠다. 다만, 책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는 내 예상보다, 또 기대보다 그 빈도가 적었다. 기본적으로 모임에 참여한 인원수 자체가 많았기에 발언권 역시 몹시 제한적이기도 했고, 책을 모두 다 완독 하지 못한 채 참석한 사람이 과반수 정도 되어서인지 책의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는 계속 겉돌았으며 그마저도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모임을 주도하는 두, 세 사람에 의해 토론은 진행되고 있었지만, 실은 토론이라기보다 신변잡기식 사담에 조금은 더 가까웠다. 그러나 그게 무슨 큰 대수로운 일일까, 그저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듯한 분위기에 모두 별 다른 불만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더 즐거워 보였달까.


“수고하셨습니다. 2차는 지난번 우리 갔었던 그 맥주집으로 갈게요.”

단지 모임에 임하는 목적이 달랐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책이 하나의 도구라는 점은 비슷했으나 그 도구의 용도가 서로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안에서 내가 이방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쥐어짜 낸 용기를 가지고 참석했던 독서모임엔 결국 나 같은 소극적인 신출내기가 발 붙일 만한 틈은 없었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 속에 난 쥐 죽은 듯이 다른 사람들의 농담을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간혹 돌아오는 차례에 너털웃음과 함께 적당한 농담을 던지는 것으로 내게 돌아온 바통을 얼른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데 급급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흘렀을까. 내 예상보다 훨씬 빨리 모임이 파하고,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레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그 군중 속에서 나 홀로 무리에서 이탈한 노루 새끼처럼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함께 어울리지 못함을 겸연쩍어했지만 실은 전혀 겸연쩍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 말이다. 단지 조금 달랐을 뿐. 그 모임에서 다른 이들의 바람과 나의 바람 사이에 아주 사소한 차이가 존재했을 뿐이었다. 책에 대한 깊은 담론은 오히려 다른 이에게 불편할 수 있다. 모임의 이유가 사교와 나눔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젊은 남녀가 여럿 모인 자리인데 단지 '책'을 주로 이야기해야 한다면, 그건 지나치게 이상적인 바람일까.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비단 나 혼자 뿐인가. 


모임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질문에 대한 답은 단지 '다르다'로 수렴했다. 다만 기본적인 사교적 역량이 필요한 독서모임에서 내 조동아리는 무용지물이 되므로, 나는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그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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