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닥다리 에디 Jan 15. 2020

독서모임 마실을 소개합니다.(2)

책 그 자체가 목적인 모임

원래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책 읽는 걸 즐기기는 했지만, 읽고 느낀 걸 어딘가에 적고 남기지 않으면 그대로 휘발되어 날아간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네이버에 있는 서평 카페에 가입해서 서평을 쓰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신청한 책을 받게 된 순간부터 반 강제적으로 책에 대해 써야 했으니, 의지가 박약한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방법이었다.


처음엔 즐겁게 써 내려갔던 서평과 독후감이었으나, 언제서부턴가 기계적인 서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라던 대로 정기적으로 책을 읽는 습관은 갖추게 된 대신, 깊이 있는 독서에 소홀하게 됐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으나 그 또한 즐거운 고민의 시간이었다. 다른 방법을 골몰하던 중 독서모임에 한 번 참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두 번 정도 독서모임에 참여했었다. 다만, 나와 맞는 모임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책에 대한 담론보다는 서로 간의 신상에 더 관심이 있다거나 모임 뒤에 이어지는 회식에서 더 활발한 이야기가 오가던 모임으로 기억한다.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맞는 모임이 아니었다. 사교의 기쁨을 쥐어짜기에 내 연기력의 한계는 명확했고, 회식의 만족을 찾기에 나의 주량은 몹시도 편협했다. 무엇보다 즐겁지 않았다. 그곳에서 난 이방인이었다.

두 번의 실패 뒤, 어딘가 음지에서 있을지 모르는 ‘나와 같은 인간’들을 직접 찾아보고자 했다. 예전엔 상상도 못 했던 생각이었다. '내까짓게 감히'. 그러나 결국 내까짓게 독서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그게 마실 1기가 되었다. 책도 읽고 또 글쓰기도 함께 하며 1년여간 마실 1기 분들과 함께 했다. #우리가팬이없지펜이없냐 는 그 1년 간의 글쓰기를 모아서 만든 책이었다. 단순한 독서를 넘어 한 권의 책을 만들게 된, 그러므로 인해 세상을 보는 시야가 확장되기도 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느덧 2년 전 일이다.


지금은 총 5개의 모임이 서울과 경기도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3주에 한 번 모여 함께 읽은 책을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며 서로의 글을 함께 읽고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내며 참가하는 모임도 아닌, 그저 좋아서 하는 모임이다. 바라는 건 그저 독서를 통한 ‘즐거움’ 뿐, 다른 어떤 불순물은 없다. 그 즐거움을 제외하곤 내가 줄 수 있는 게 달리 없기도 할뿐더러 달리 말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독서모임이 되고자 한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난 믿는다.


얼마 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독서모임 멤버 분들을 한 곳에 모아 다 같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를 가졌다. 명색이 책을 매개로 한 인연이 아닌가. 거창하면서도 소박하게 ‘문학의 밤’이라 이름 붙였다. 모두가 모이는 모임 역시 소소한 정도를 생각했지만, 한 분 한 분 오시는 분들의 숫자를 셈해보니 카페를 대관해야 할 만큼의 인원이었다. 어느새 이만큼 모였구나.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 같이 모여 인사 나누고 책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 보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다 같이 모여서 보니 서로가 비슷하다. 다르면서 닮았다. 나이와 성별, 직업과 성격 모두 다르건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서로 닮은 사람들이다 우린. 우리 서로 이곳에 잘 모인 게 맞구나. 그래서 신명 났다. 말을 더듬어도, 버벅거려도 전혀 창피하지 않았다.

서로 속속들이 알거나, 지나치게 알아서 참견하고 꼬치꼬치 묻는 그런 관계 말고, 그렇다고 먼 친척이나 아주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초등 동창 같은, 만나면 좋지만 딱히 할 말 없는 관계 말고. 책이라는, 혹은 책을 통한 다양한 관심사에 대해 논하고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느슨한 연대를 나는 꿈 꾼다. 학연 말고 지연도 말고, 그저 책이라는 관심사를 가지고 서로를 배려하며 편하게 나의 생각을 논할 수 있는 모임. 숫자의 많고 적음은 전혀 상관할 바 아니다. 다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어딘가 혼자서 매진하던 독서에 지친 이가 있다면, 또 당최 해 본 적 없는 독서모임에 대한 두려움 있는 이 있다면, 내성적인 성향 탓에 함께 어울리기가 주저되는 사람 있다면, 그 사람들 붙잡고 나 역시 그러했노라고, 그리고 여전히 그러하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기에 2020년 언젠가 우리 ‘마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닿기를. 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나 또한 물밑에서 열심히 발 힘차게 굴러보련다. 굳이 제목 붙이자면 2019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나의 자그마한 소회이자 2020년을 맞이하는 소박한 출사표라고 하겠다. 그때까지 각자의 시간과 자리에서 탐독하시길. 함께 하게 될 언젠가, 쌓인 회포 풀 듯 그간 읽은 책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모임 마실을 소개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