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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Jan 14. 2020

독서모임 마실을 소개합니다.

외향적이지 않아도 되고, 온전히 책 그 자체만 이야기하는 모임

나는 앞에 나서서 무언가 하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학창 시절부터, 그리고 대학생이었을 때도, 지금 몸 담고 있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말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되려 후미진 뒷자리 구석에서 구시렁거린다거나, 나 같은 찌질한 몇 명을 모아 낄낄 거리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어울리는, 그런 인간이었음을 고백한다. 굳이 거창한 고백까지 하지 않아도 내 주변인들은 모두 다 아는, 결코 새삼스럽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다. 

아직도 기억난다.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께서 정해주신 순번에 따라 그 날 그 날 교탁 앞에 서서 발표를 해야 했던 그때,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등 뒤로 콸콸 흐르던 식은땀 같은 것 말이다. 뒷자리에선 방언 터지듯 조잘거리던 내 조동아리는 교탁 앞에선 전혀 무용지물이라, 더듬거리며 간신히 발표라 부를 수 없을 조악한 읊조림을 마친 뒤 다시금 내 안식처인 저기 저 구석 뒷자리로 돌아왔다. 그제야 심장이 언제 쿵쾅 거렸냐는 듯, 창백했던 얼굴엔 다시금 홍조가 돌았고 이내 찌질한 크루(Crew)들과 낄낄 거리며 마음의 평정을 찾곤 했다.

고등학생 때야 앞에 나가서 하는 발표에 다들 쭈뼛거리기 마련 아니냐며 마음의 위안 삼으려 해도, 대학에 올라간 뒤에도 내겐 별다른 드라마틱한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제야 내 정체성에 대해 조금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멍석이 깔린 자리에 맞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는 리더의 자질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다른 누군가는 장의 그릇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겠다. 장기판에서의 졸, 스타크래프트에서의 마린, 부루마블에서의 마닐라와도 같은 사람, 나를 비유하자면 말이다. 굳이 억울하다 느낀 적도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 정체성에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내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인 독서와 관련된 모임에 한두 번 참여해보며 아주 자그마한 생각이 내 안에서 자라나기 시작해다. 나로서는 전혀 해본 적 없는 '불순'하며 '불온'한 마음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나 같은 소위 '찌질'한 이에게 독서만큼 잘 맞는 취미도 없었다. 책을 읽고 그 이야기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거나, 내가 겪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탐닉을 해볼 수 있다는 것, 내가 느낀 독서의 유익을 설명하자면 이렇게 난 이야기할 수 있다. 책에 대한 넘치는 애정의 결과였던 건지, 혹은 스쳐 지나가는 독서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겨보고 싶었던 건지, 난 언제부턴가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기 시작했고 이는 내게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정성스레 작성한 서평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이따금이긴 하지만 심지어 글을 쓰신 작가님들의 댓글까지 달리는 경험이 쌓이며 책을 매개로 한 타인과의 소통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퇴근 후의 무미건조한 시간이 즐거운 글쓰기 시간으로 내게 자리잡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앞서 '불온'하고 '불순'하다 언급한 생각은 그러면서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자리잡기 시작했다. 바로 독서모임을 참여해 볼까에 대한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일과 관련되어서 사람들을 대면하고 마주하는 시간이 많지만 그럼에도 내 성향과 정체성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지금 영위하고 있는 인간관계를 넘어선 다른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느낀 적은 없었다. 다만, 책을 매개로 한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과 거기에서부터 비롯된 즐거움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에 자연스레 독서모임에 대한 의지가 점차 강해지고 있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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