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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May 04. 2020

"사랑까진 모르겠고, 그냥 적당히 좋아합니다."

내 도전의 온도는 미적지근하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뜨뜻미지근한 온도

드라마틱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느낀 바를 끄적이던 습관은 어려서부터 계속 가지고 있었다. 기쁨이나 슬픔, 좌절이나 우울과 같은 감정들이 활자의 형태로 배출되어 단어와 문장을 이룰 때마다 마음속 묘한 쾌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하룻밤 지나고 보면 어제의 내가 쓴 글이 낯설 때도 있었고, 또 일주일, 혹은 한 달이 지나서 보면 그때의 내가 또 생각나고 그리운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차곡차곡 쌓이고 모인 그 퇴적물들은 그렇게 내 청춘의 기록이 되었고, 온전한 나만의 방이 없던 내게 이따금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볼 수 있는 다락방이 되어주기도 했다.


번뜩이는 문장, 혹은 수려한 표현들 가득한 것도 아니었다. 누가 볼 것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 아니기도 했고, 당시엔 그럴 여유도 없이 눈 앞의 무언가에만 심취했던 경주마와도 같았던 터라 솔직하면서도 날 것 그대로의 글들 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시적인 표현이나 은유적 문장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지만, 그 덕분에 적어도 그 문장들 속에서 그때의 그 치기 어린 내 모습이 고스란히 보인다. 허울 좋은 표현들 속에 숨지 않고 당당히 나를 드러내고자 했던, 뻔뻔하면서도 솔직한 내가 그 글 안에 녹아 있다. 


본격적인 글을 쓰게 된 시작이 언제였을까. 누군가 그 시작을 물어본다면 2006년의 어느 날을 이야기할 요량이다. 낙서와도 같은 끄적임을 넘어 그때부터는 한 편의 정제된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어떤 명확한 근거와 기준으로 그 전의 글과 그 이후의 글을 가름할 수 있을까마는. 단순한 끄적임이었던 예전의 글들과 달리 그 이후의 글들에선 한 편의 글 속에서 당시의 내 모습이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한 편의 글의 형태로 나를 기록하고, 그것을 통해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럴 요량으로 시작한 글쓰기였다. 그 시작이 2006년의 어느 날이었다. 시간 지나고 보니 어느새 출발선이 저 뒤에 있음이 보인다.

독서를 하며 책을 읽고 즐긴 건, 나의 느낀 바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이 마음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구나.’, ‘그 심경이 이렇게 글로 구현되기도 하는구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좋은 공부이자 배움 그 자체였다. 다양한 작가들의 책들을 통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순간을 마주하기도, 그리고 그 순간들을 글로 표현해내고야 마는 그들의 일상과 그 익숙함을 동경하기도 했다. 정처 없이 부유하며 방향 없이 흘러만 갔다고 느낀 나의 청춘과 지난날 속에서조차, 독서와 글쓰기는 습관적으로 틈틈이 매진해왔다. 의식적인 노력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밖에. 그래야 그 공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 지나 뒤를 돌아보니 그것들 덕분에 내 삶에 이만큼이나마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틈틈이 써둔 글들, 글이라고 할 수 없을 끄적임들 모두 내겐 이정표와도 같았다.


대단한 인간은 스스로의 인생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지만, 나 같은 소소한 인간에겐 그럴 깜냥까진 없다. 다만, 글이라면, 글을 통해서라면 아주 조금은 가능할지도. 누군가 물어본다면 인생까진 모르겠고, 그저 주어진  삶 나름 잘 헤쳐가며 살고 있노라고. 대단히 자랑하거나 드러내 놓을만한 성취는 없지만, 본디 내게 허락된 것, 그리고 가진 것에 비해 잘 살고 있노라고, 그 모든 게 습관처럼 끄적여 온 글들 덕분이었다고 난 이야기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은 뭔가 그럴듯해 보일지언정, 고쳐 쓰고 숙고하는 동안, 진심은 이내 걸러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도 ‘소통’이란 것이 본디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로, 정제된 언어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지만, 사실 글을 통해 누군가와 소통하고픈 마음은 애당초 없습니다.


제 생각과 사유에 대한 일방적인 자기 고백이 될 것 같습니다. 집에서 글을 끄적거리듯, 정제되지 않은 초고 그대로 올리고자 합니다. 거친 단어, 투박한 문장 들로 가득한 글이 되더라도, 그것이 제 진심을 담길 바랍니다. 순간순간의 진심이 그대로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 2006년 9월 어느 날의 기록 


시작한 것이 도전이었다면, 계속 지치지 않고 이어나가는 것 또한 내겐 도전이다. 무언가에 가열찬 시작 했다가도 금세 식어버려 나가떨어지곤 하는 내게 본격적인 도전은 어찌 보면 뭔갈 시작한 그 이후일 지도. 그런 의미에서 나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악다구니 가지고 고군분투하다간 쉬이 지쳐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때문에 난 불타게 타오르는 도전보단 적당히, 미적지근한 온도를 계속 유지하는 방편을 선택했다. 적당히 좋아하는 그 마음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너무 심취하지도 말고 몰입하지도 않고, 적당한 주기마다 온도계로 측정하고 표시해가며.


노력하진 않는다. 쟁취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오래 하고 싶을 뿐. 순간순간 흥미가 소진되거나 재미가 반감되어 나태해질 때 더러 있더라도 아주 엔진이 꺼지지 않을 수 있는 건, 그 자체에 대한 소소하고도 적당한 애정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다. "사랑까진 모르겠고, 그냥 적당히 좋아합니다. 질리지 않을 정도로요." 글쓰기를 시작한,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나의 시시껄렁한 도전을 표현한다면 담담히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겠다.


이 도전의 끝엔 뭐가 있을까. 아직 난 잘 모르겠지만, 끝에 뭐가 있다한들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일까. 그저 이 도전을 이어나가는 여정 자체가 내게 재미있으면 그만인 것을. 그렇지 않은가?


끝으로 이 글을 읽으며 조금이라도 고개 끄덕일 사람들에게 고(告)한다, 권면하고 싶다고. 대단한 자기 계발을 위한 거창한 활동 말고, 한 잔 술에 모든 근심, 걱정, 시름 털어버리는 그런 술자리 말고. 대신 경험한 바를 모두 기록하는 습관, 느낀 감정을 글로 표현해 보려는 노력, 흐르는 시간에 비례해 그 글들을 계속해서 쌓아 올리기 위한 은근과 끈기를. 이 모든 것에 앞서 지금 당장 무언가를 끄적여보려는 미적지근한 시작과 시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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