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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Jan 25. 2021

'뤼팽'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된 비결

고전의 재해석을 넘어 오리지널이 되는 비결

영웅에 대한 이야기, 정확히 말하자면 '이야기를 빙자한' 예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아주 좋은 소재다. 거듭 되풀이되는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플롯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영웅들의 이야기를 찾는 건, 그 당연한 정의구현이 정작 현실에선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반증이 아닐까. 정작 그렇지 못한 현실과 달리 속 시원하고도 통쾌한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단순한 영웅의 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넘어 사람들의 시선이 점차 악당들에게로 향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늘 정의를 구현하며 매력적이기까지 한 배트맨과 달리 단순한 사고뭉치, 혹은 사고뭉치를 넘어 극악무도한 악당으로 묘사되어 온 조커의 경우, 종전까지 별다른 수고스러움 없이 매우 단순하게 묘사된 인물을 넘어 2019년 영화 '조커'에서부터 보다 깊숙하면서도 매우 입체적인 면모의 악당을 그려내고 있다. 태생부터 배트맨에게 두들겨 맞기 위해 악당으로 태어난 인물이 아닌, 지극히 평범했던 개인이 복잡한 삶의 질곡 속에서 악의 화신으로 거듭나게 된 과정을 묘사한 덕분에 악에게도 개연성과 설득력이 부여되기 시작했다. 영웅만이 근사하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악당도 능히 매력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 시대. 우린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악당에게 그런 서사가 부여되는 건 아니다. 누구에게나 공감을 줄 수 있는 소재와 요소가 어디 그리 흔할까. 특히나 그것이 우리가 기피하는 '어두움'과 '악'에 대한 것이라면 더더욱 찾기 어렵고 찾는다 해도 그 안에 설득력을 부여하기란 몹시 힘들다. 일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을 해냈을 때 얻을 수 있는 건 분명하다. 악당들을 흠씬 두들겨 패는 영웅들은 근사하지만 왠지 나와 멀어 보이는 반면, 나쁜 짓을 일삼는 악당들은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나 또한 상황이 급변하면 그와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악당에게 사람들은 좀 더 동질감을 느끼는 것 아닐까.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이 악당이라는 캐릭터에 환호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대단한 악의 이면에 존재하는 평범성, 괴도 뤼팽은 악에 대한 사람들의 판타지를 좀먹으며 현대에까지 이르렀고,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통해 구현되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얼마 전 첫 선을 보인 ‘뤼팽’은, 앞서 언급한 요즘 트렌드의 악당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춘 캐릭터이자 이름 자체로 파급력을 갖는 몇 안 되는 콘텐츠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 악당들에게 다양한 개성과 입체적인 개연성이 부여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트렌드이자 근래에 새로 생겨난 시각이었더라고 한다면, 이미 ‘뤼팽’이라는 캐릭터야말로 태생부터 입체적인 악당의 면모를 갖고 탄생했던 터라 요즘 같은 시국에 (콘텐츠 제작자에게) 안성맞춤일뿐더러, 근래 매력적으로 포장된 악당들을 통틀어서도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화려한 악당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설득력을 위해 공들여 포장이 필요했던 다른 악당들과 달리 뤼팽은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캐릭터인 셈이니, 필요한 건 현대에 맞는 아주 약간의 변용과 재해석일 뿐, 다른 부차적인 겹겹의 포장이 불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넷플릭스 속 ‘뤼팽’을 즐기기에 앞서 주목하고자 했던 건, 얼마나 허를 찌르는 재해석이 가미될지, 또한 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어떻게 이야기 속에서 설명하고 나열할지에 대해서였다. 그리고 본격적인 시청 전 썸네일 이미지를 통해 이미 확연히 확인할 수 있는 인상적인 한 가지는, 뤼팽이 백인이 아닌 흑인이라는 설정이었다. 또한 한 회씩 드라마를 보면서 알게 된 건, 이 드라마가 원작 ‘아르센 뤼팽’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 이와는 개별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새로운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물론 요소요소마다 아르센 뤼팽 속 인과관계를 차용한 흔적은 역력하지만, 이 또한 주인공 아산이 뤼팽의 열렬한 팬이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비슷하면서도 매우 개별적인 두 뤼팽의 이야기가 묘하게 교착점을 만들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계속 동하도록 만들고 있는 셈이다.


모리스 르블랑의 원작 소설 속 ‘뤼팽’ 역시 그러하듯,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뤼팽’ 속 주인공 아산 역시 매력적인 동시에 다재다능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변장술에 일가견이 있음은 물론 비범한 두뇌회전과 월등한 운동신경 등, 기본적으로 원작 소설 속 뤼팽의 역량을 드라마 속 주인공 아산도 갖추고 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려는 한편,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악당들에게 단죄를 하고자 아산은 치밀하게 짠 계획을 하나 둘 실행해나간다. 결국 지금까지 공개된 회 차들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건, 이 시리즈 자체가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악당들의 단죄를 위한 주인공 아산의 여정이라는 점이다. 그 쉽지 않은 험난한 여정 속 위기와 갈등들을 아산은 자신만의 화려한 비기들을 통해 극복해 나가며 악의 세력에 대항하며 거대 권력을 등에 업은 그들과 맞선다.

이미 캐릭터 자체가 완성형이라 그런 걸까, 극을 이끌어가는 전체적인 긴장감 대신 이 시리즈는 주인공 ‘아산’이 얼마나 뤼팽스럽게 악당과 (심지어) 경찰들을 속이며 아버지의 원수에 접근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50분이라는 시간 대부분을 주인공 ‘아산’이 가지고 있는 뤼팽의 흔적들을 설명하는 한편, 원작 소설 속 ‘뤼팽’을 얼마나 착실히 오마쥬 하는지를 보여주는데 시간을 할애한다. 사건을 중심에 둔 아주 엄청난 두뇌싸움이라기보다 악당들의 허를 찌르는 방법과 트릭을 고스란히 보여줌과 동시에 권력을 가진  악당들이 결국 패배하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아주 대단한 서사보다 단순함에 더 초점을 맞춘 듯하니 좀 더 복잡하면서도 입체적인 원작 소설 속 뤼팽의 면모보다는 드라마 속 ‘아산’이 더 돋보인다. 보다 보면 느끼게 된다. 이 드라마에선 뤼팽보다 아산이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 점은, 아르센 뤼팽의 팬으로서 남다른 그의 면모를 드라마에서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그리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입체적인 캐릭터의 묘사라거나, 아주 세밀한 이야기의 전개를 바라는 사람들 역시 그 기대감을 충분히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 아주 디테일한 부분에 있어선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지점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부분들에 있어서 이견이 있을지라도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단 한 가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지극히 단순한 플롯과 그리 복잡하지 않은 서술방식, 누구나 예상하는 결말에서 오는 통쾌함, 내지는 통렬함이 바로 그것이다. 이 드라마는 오락영화가 갖춰야 할 대부분의 것들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뤼팽을 기대한 사람에게 ‘아산’이 보일 것이기에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마음과 함께 (납득하고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이야기 속 아산이 또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한 회씩 보다 보면 뤼팽과 다르면서도 닮아있는 새로운 인물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보일 것이다. 이야기의 대부분을 시청한 지금, 이 ‘뤼팽’이 왜 넷플릭스 오리지널인지 그 이유가 짐작이 된다. 


드라마 속 아산은 뤼팽의 고전적 방법을 모두 차용한다. 때문에 아주 거대한 반전은 없다. 다만, 내게 있어 반전은, 뤼팽의 제목으로 변장한 ‘아산’의 고유한 이야기였다. 뤼팽이라는 제목을 보고 마음이 동해 시청을 시작한 그 순간, 이미 허를 찔린 셈이다. 나의 경우엔 당초 원하던 뤼팽의 이야기가 아니라 회 차를 거듭하며 흥이 조금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주 마음이 돌아서기 전 어느 지점부터, 어느 순간 나는 뤼팽이 아닌 '아산'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앞으로 그의 앞엔 어떤 흥미로운 여정이 펼쳐질지, 위기가 닥치더라도 과연 어떤 능력으로 그것을 탈출할지에 대해 말이다. 바로 어린 시절 읽고 환호했던 괴도 뤼팽이 그러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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