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명작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재미보단 감동을 떠올리게 된다. 숨 가쁘게 빠르게 변하는 시류 속에서 '재미'의 모양 또한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고전 명작에서 굳이 '재미'를 발견할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게 아닐까. 저 시대 속에선 이 영화 속 대사가 재치 있는 대사였으려나, 이 영화도 당시에는 꽤나 긴박감 넘치는 영화였겠지, 인정하고 싶지 않고 또 애써 부정하려 해도 고전 명작이라 불리는 영화를 볼 때마다 그 바라보는 시선에서 색안경이, 그리고 나른한 시각 또한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넷플릭스 속에서 이 영화를 우연히 발견한 이후 나의 편협한 시각을 드디어 반성할 수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제목의 영화였다.
잭 니콜슨이 연기한 이 영화의 주인공 멜빈은 로맨스 소설을 쓰는 작가로 활동한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그의 삶 속에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바로 그에겐 강박증이 있다는 것. 그리고 조금 더 사소한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의 괴팍한 성격, 즉 타인의 삶을 (때론 대놓고) 경멸하며 저열한 독설로 그들을 비꼰다는 점 정도가 되겠다. 본인 이외의 사람들에게 늘 냉소적이면서도 배타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주인공 멜빈을 극의 초반부부터 이해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지만,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괴팍한 그를 비난하기보다 점차 그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동한다. 누군가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면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다.
그가 아주 근사한 캐릭터라서 가능한 이해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영화를 보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는 강박증 탓에 다른 사람들보다 다소 힘든 일상을 견뎌야만 한다.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틈을 절대 밟지 않아야 하고, 또 사람들과 부딪히거나 접촉하지 않으려고 기를 쓴다. 식당에 가면 언제나 똑같은 테이블에 앉아야 하고, 또 식당의 식기가 아닌 늘 가지고 다니는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해야만 한다. 이러한 유별나고도 괴팍한 성격 탓에 모두들 그를 꺼려하지만, (영화라면 으레 그렇듯) 여주인공 캐롤만은 그에게조차 (그나마) 친절을 베푼다.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캐롤은 모두가 꺼려하는 그에게도 언제나 인내심 있는 태도로 멜빈을 대하며 유별난 그의 주문을 받는다.(식당에서 그의 주문을 받아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시나 영화라면 으레 그렇듯) 그녀에게도 문제는 있다. 그녀는 천식으로 고통받는 어린 아들이 있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며 홀로 고군분투하며 사는 중이라는 것. 평범한 연애와 평범함 삶을 꿈꾸며 늘 쾌활하고 활기차게 살고자 하는 그녀이지만 현실의 고된 어려움이 늘 그녀를 호시탐탐 집어삼키려 한다. 그런 그녀의 삶에 멜빈이 우연히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언뜻 보면 평범한 로맨스 영화일지 모르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 영화는 소외된 사람들이 각자 고군분투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삶 속에 더 기대할 게 뭐가 있겠느냐고, 더 좋은 삶이 가당키나 한지 묻는 듯도 하다. 그 답은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이 영화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큰 축은 당연히 주인공 멜빈이다. 그의 결핍이 여실히 보인다. 그의 강박증으로 인해 타인을 대하는 그의 괴팍한 언행은 극 초반부터 도드라지게 보이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면서 점차 다른 사람들의 결핍 또한 보인다. 동성애자인 그의 이웃 사이먼의 결핍, 그리고 여주인공 캐롤의 결핍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실 우리 모두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셈 아닐까.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을 추구하지만, 우리 모두 실은 알고 있다.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서로 별다른 관련 없어 보였던 이들 셋은 사이먼의 강아지 버델을 매개로 서서히 친밀해진다. 어쩔 수 없이 버델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한 멜빈은 처음엔 좌충우돌하며 어려움을 겪지만 서서히 마음속에 타인에 대한 애정을 품게 된다. 본인도 예상치 못한 일련의 변화들 속에서 멜빈의 눈은 캐롤에게로 향한다. 겉으론 씩씩해 보이는 그녀이지만 내색하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고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짚고 넘어가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이 영화 제목이다. 개봉 당시의 원제를 알고 보면 더 재미난 부분이 'As good as it gets'로 이 문장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 멜빈이 내뱉은 대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의사의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맬빈은 괜스레, 그리고 심술궂지만 그러나 악의가 없는 말을 내뱉는다. 'What if this is as good as it gets?, 즉 지금이 가장 좋은 상태라면(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이다. 냉소적이면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몸에 배어 있지 못한 그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대목으로, 이는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제목 그 자체가 된 셈이다.
영화의 주제는 실은 허무하리만치 간단할지 모른다. 결국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 혹은 불편하고 번거롭더라도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것 말이다. 더불어 누구든 완벽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그 한계를 스스로 직면했을 때 비로소 더 큰 기회와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도 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점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그 가속을 더해가지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주목하고 싶은 주제는 결국 이렇게 '사랑'으로 수렴한다는 사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1998년에 개봉된 영화지만 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고전 명작의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더불어 사는 삶'과 그 안에서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 나른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 나른한 이야기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만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혼자서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완벽한 사람 또한 없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 배려하고 보듬어가며 살아야 한다고 영화는 말하는 듯했다. 볕 좋은 어느 주말, 넷플릭스에서 찾아 시청해보시길 바란다. 주옥같은 명대사들은 굳이 발췌해 넣지 않았다. 직접 보면서 생동감 있는 감동을 느끼시기 바라는 마음으로.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분명 '생각할 거리'가 많이 생기리라 확신한다. 봐야 할 가치나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