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곤 하시는 택시운전기사님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라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나와 같은 길치의 가장을 만났던 기억 말이다.
지하철에서 봐야 할 숫자가 침대 위 눈을 뜨며 보였던 적 있었다. 8시가 막 넘었던 시간이었다. '맙소사 큰일 났다' 라기 보단 기왕 늦은 거 오늘은 지하철 말고 택시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다. '역시 난 여유를 알아.' 라며. 흐느적흐느적 여유롭게 집 밖을 나서서 택시를 잡았다. 당시엔 카드 계산이 보편화되기 전이라 '카드라 죄송합니다.' 미리 기사님께 꾸벅 양해를 구했다. 그리곤 목적지인 성수사거리를 말씀드렸다. 그런데 기사님께서 갑자기 티맵을 켜시더니 익숙하게 음성으로 '성수사거리'를 나지막이 속삭이셨다.
'어럽쇼, 여기서 가기에 되게 간단한 길인데.'
기사님의 포스(?)가 뭔가 심상치가 않다고 느꼈다. 본능적인 동질감이었을까, 가는 동안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서울서 택시 생활 31일째라고 하시는 기사님, 길치시라고 조심스레 말씀하신다.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은, 뭐랄까. 동질감이랄까, 아니 아주 살짝 우쭐거림도 있었던 것도. '나도 아는 길인데 이건.' 예컨대 이런 감정이었겠지. '직진하시다가 좌회전 한 번이면 끝인걸'. 내가 늘 다니던 길이건 뭐건 그건 고려대상에서 제외하고 말이다.
나 : "아, 기사님께서 쓰시는 어플도 물론 훌륭하지만요, 요즘은 길 찾을 때 이 어플이 조금 더 유용합니다. 저 같은 방향치, 길치에게는 이게 더 편리하더라고요."
나 : "지금 이 길이 성수동입니까, 여기는요 건대입구 쪽입니다."
나 : "또 저기는요, 또 이길로 가시 면요."
질문하시지도 않았건만 흡사 기사님의 서울 가이드가 된 것마냥 조잘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기분이란 건 꽤나 쏠쏠하구나 싶기도. 어쭙잖은 조언에 공감대까지, 길치끼리 대화가 참 재미났던 순간이었다.
택시를 탈 때부터 눈이 조금씩 오고 있었다. 눈발이 조금씩 거세지니 조금씩 걱정하시는 기사님, '우리 아내가 걱정하겠네요. 일찍 들어가야겠습니다.' 염려의 실체는, 본인보다 본인을 걱정하실 아내에 대한 걱정이었다.
기사님과 달리 지리에 아주아주 밝으신 사모님, "남들은 한, 두 달 택시 운전하면 익숙해진다는데, 당신은 1년도 불안해요." 라며 늘 노심초사. 어디를 갈 때도 사모님이 척척, 기사님은 단지 운전(만)하는 기계라고 하신다.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그런 자신을 걱정할 아내 분에 대한 배려를 늘 잊지 않으시려고 노력하시는 듯했다. 백발이 다 되신 연세에도 여전히 아내를 염려하고 배려하려 하셨다.
미리 가늠해 볼 수 있어서 좋았던 의미 있는 시간. 길치의 가장이란 건 이런 거구나 싶은 기억으로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 굳이 표어처럼 제창하지 않아도, 내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는 각자 느끼셨길 바란다.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이야기이니 부디 가슴 깊이 새기시길 다시 한번 권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