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아,
도로는 정글이나 다름없단다."

운전에 앞서 지피지기에 대하여

by 구닥다리 에디

운전을 처음 시작하던 당시 아버지께서 해 주신 말씀이 있다.


"의성아, 도로는 말이다 정글이나 다름없단다."


교통규칙이란 게 있고 질서라는 게 엄연히 있는 우리나라에서 도로가 정글이나 다름없다니, 아리송한 아버지 말씀을 이해하게 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초보운전' 푯말이 전혀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간단한 사실, 옆 차선으로 끼어들 때 필요한 건 양보가 아니라 과감함이라는 진실, 적정 차간 거리를 유지했다간 빨리 가라는 경적 소리가 뒤차로부터 시끄럽게 울린다는 현실을 마주하기까지 말이다.


도로가 정글이다 라는 명제에 대해 굳이 부연 설명할 필요 없으리라.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계시다면 이미 다들 느끼신 바가 있으실 테니 말이다. 그러나 십 수년의 운전경험을 토대로 나는 아버지의 말씀에 한 가지를 첨언하고자 한다. 바로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말이다.


지키고 준수해야 할 규칙과 질서가 있다한들 편법과 불법의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드는 무리들이 간혹 도로에서 보일 때가 있다. 깜빡이 없이 이 쪽 저 쪽을 향해 쉼 없이 끼어들거나, 잔뜩 막힌 도로 위 길게 늘어선 줄에서 차근차근 서행하는 수고를 거부하고 얌체같이 중간에 끼어들곤 하는 하이에나 같은 무리들부터, 조금이라도 도로에서 부당한 일이라도 당하는 순간에 그 분노를 이기지 못한 채 잔뜩 날이 선 경적소리 울려가며 포효하며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갈 기세로 맹렬히 보복운전을 하는 사자와도 같은 육식동물들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도로에서 보이는 이들 무리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했다.

nikolay-tchaouchev-784486-unsplash.jpg


도로는 정글이다라는 명제에 비춰 나 스스로를 돌아본다면 난 기린, 혹은 톰슨가젤 정도가 아닐까. 내 평소 성격과 함께 운전할 때의 태도를 종합해서 본다면 말이다. 얌체같이 끼어들 수 있는 영악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당한 일에 대한 보복 따윈 생각하지도 못할 쫄림보, 굳이 정글 속 동물들에 비유하자면 그래서 난 초식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끼어든 앞차를 향해 소심한 하이빔 몇 번 쏘아주는 것이 전부인 초식동물.


권면하고 싶은 바는 바로, 나 자신이 어느 계열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심사숙고해보시길 바란다는 점이다. 본인이 정글 속 사자나 호랑이와도 같은 기개와 배짱이 있다면 험악한 운전습관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건 정말이다. 바람직한 운전습관이라고는 못하겠 지만 불법만 아니라면 누구도 무어라 말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건 그런 운전태도를 지향했을 때 적어도 마음속의 거리낌이나 부대낌이 없다는 것, 마음에 거리낌이 없다면 얌체같이 끼어들건 앞차를 향해 거칠게 클락션을 울리건 누구도 무어라 할 수 없다. 법에 저촉되는 행동만 아니라면 말이다.


문제는 초식동물이 하이에나나 다른 맹수들의 운전습관을 그대로 답습했을 때 발생하곤 한다. 역시나 나의 경우를 돌아보자면 나 역시 운전 초기에는 도로 위에서(정확히는 코 앞에서) 자행되는 부도덕한 무리들을 그대로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깜빡이 없이 끼어드는 무뢰배에겐 요란한 경적으로 응수를 한다거나 얌체같이 끼어드려는 운전자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비켜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상대에게 끼어들만한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런 나날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운전이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늘 도로 위의 다른 차들과 날 선 신경전을 벌이는 기분이랄까. 문화지체 현상을 들먹이며 나를 제외한 다른 양심 없는 다른 차들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 것이 점차 몸에 베이고 있었던 당시였다. 양보의 미덕은 힘없는 약자들에게만 해당된다고 굳게 믿던 시절이기도 했다. 동시에 운전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고, 그에 비례해 점차 운전하는 재미를 잃어가던 시절이었다.


운전을 다 마친 뒤엔 늘 찌꺼기 같은 스트레스만 남아있던 그때 내게 무언가 다른 방도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방도의 일환으로 그냥 평소 내 모습인 쭈구리처럼 운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끼어들면 그깟 거 양보 한 번 해주고, 깜빡이 없이 끼어들어도 매너를 배우지 못한 상대를 긍휼히 여기려 했다. 어차피 나의 정체성은 초식동물이니 초식동물처럼 운전할 수밖에. 내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부턴 적어도 운전을 마친 뒤 마음의 거리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난 양보의 화신이야."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선의에서 비롯된 양보는 아닐지라도,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일까. 얌체같이 끼어든 앞차가 비상 깜빡이를 켜주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었다. 어차피 난 힘없는 톰슨가젤이니,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어떠할지 궁금하다. 어떤 정체성의 운전자 일지 말이다. 조금의 부당한 처사에도 포효하는 사자 같을지, 혹은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끼어들 수 있는 하이에나?, 감히 누군가의 운전태도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마음은 애당초 없다. 언급했다시피 불법만 아니라면 어느 누군가의 운전습관에 대해 누구도 무어라 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다만 궁금할 뿐이다. "마음은 괜찮으신가요?" 나처럼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다 답답함을 느끼신 적은 없으신지 말이다. 이 글에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본인의 정체성과 다른 운전태도를 갖고 계신 게 아닐지 자문하고 의심해 보길 바란다.


본인의 정체성이 사자던, 하이에나던 그 자체가 문제 될 건 없다. 그 캐릭터가 무엇이든 간에 '나 답게' 운전하시길 바란다. 사자는 사자같이, 하이에나는 하이에나같이, 그리고 초식동물은 초식동물같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