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뒤꽁무니를 따라다녔던 어느 얼간이 이야기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길을 잘 알아? 길이 헷갈리거나 할 때는 없어?"
예전 연애시절, 운전에 관심을 보이던 아내가 어느 날 이런 질문을 한 적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순식간에 등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올 것이 왔구나. 혹은, 때가 됐구나. 이런 기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대답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선 안된다. 지나치게 빠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뜸을 들이지 도 않는 선에서 답변이 나가야 했다.
"글쎄, 운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긴 해. 근데, 우리 점심 뭐 먹을까?"
서울촌놈, 어느샌가 주위 친구 녀석들이 날 부르는 별명이 되었다. 관성의 법칙이라 해야 할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지만 좀처럼 서울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나를 조롱하는 의미였다. 지금처럼 핸드폰 내비게이션 기능이 상용화되기 전, 그러니까 자동차에 탑재되어 있는 내비게이션조차 잘 없던 예전에는 운전자들에게 지리에 대한 감각이 운전을 위한 필수적 요건이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또 유달리 불쾌하지도 않아 어느새 내 별명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실 맞는 말이긴 하니까. 일례로 과거에 이런 경우도 있었다. 지금처럼 내비게이션 어플 깔린 핸드폰이 없었던 그때, 운전을 해서 어딘가를 간다는 것이 내겐 적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하던 일이었다. 목적지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가는 길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만 했다. 그 전날까지 인터넷으로 길을 미리 숙지하고 필요하다면 메모까지 해야만 비로소 어딘가로 '운전'할 준비를 마친 셈이었다. 물론, 준비가 완벽하다고 해서 운전까지 완벽한 건 결코 아니었다. 한 번 헤매기 시작하면 마치 함정에 빠진 것처럼 같은 자리를 뱅뱅 돌게 되는지라, 또 그걸 이미 충분히 경험하고 나니 적어도 1시간 정도의 여유 시간을 확보한 뒤 출발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이런 일련의 (누군가에겐 불필요한) 과정을 겪고 나면 누구나 조금 더 수월한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지 않을까. 나에겐 그 고민의 결과가 어느 날 문득 눈 앞에 보인 버스노선이었다. 버스 뒤를 졸졸 따라만 다녀도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어느 날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도달한 결론은 나쁘지 않았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릴지언정 안정성과 최적화의 측면에서 높은 성공률을 보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1시간 전에 출발하지 않아도 됐다. 우스꽝스러울 수는 있을지언정 불필요하게 헤매는 과정과 실패의 횟수가 비약적으로 줄다 보니 어느새부턴가 운전을 할 때마다 버스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버스기사라는 다른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이 역시 기존의 '서울촌놈'과 같이 맞는 말이기도 하고, 또 유달리 불쾌하지도 않아 어느새 내 별명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실 맞는 말이긴 하 별명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실 맞는 말이긴 하니 말이다. 지금은 모두 다 알다시피 살짝만 경로를 벗어나도 핸드폰에 설치된 내비게이션에서 친절하고도 기민하게 다른 경로의 길을 안내해 준다.
"여보, 오늘은 왜 이 길로 가요?"
"어, 딱 보니까 저 쪽 길이 막히는 것 같더라고. 오늘은 이 길이 낫겠어. 네비에서도 이 쪽 길을 추가로 알려주기도 하고."
이렇듯 연애 초반에는 짐짓 태연하게, 마치 의도했다는 듯 여유 있게 대처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미 나의 본모습이자 정체성을 들켜버렸으니 문득 다른 길로 가도 아내는 익숙한 듯 묻지도 않는다. 운전자인 내가 헤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내, 감사해야 할지 불쾌하게 생각해야 할지 모호하다. 이미 구겨진 자존심이야 어찌할 도리 없다곤 해도, 그러나 예전 운전할 때 버스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던 과거에 대해서까진 아내는 앞으로도 계속 몰랐으면. 운전에 대해서 아내에게만큼은 전문가처럼 보이고 싶기에, 아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그래서 차에서 쿨쿨 편히 잘 수 있도록 말이다.
나 역시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서 편히 잘 수 있는 날이 올까. 언제일지 모를 그날이 오게 된다면, 길을 헤매거나 운전 중에 실수를 해서 낙심할 어느 날, 그때에는 버스 뒤꽁무니를 쫓아다닌 어느 얼간이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그런 얼간이도 있으니 당신은 전혀 낙심할 필요 없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