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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Feb 06. 2019

저의 꿈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직업과 꿈은 같은 단어인 줄 알았습니다.

# 이럴 줄 내 진작 알았더라면,

대학에 입학한 이후부터 우진 씨의 목표는 줄곧 공무원이었다. 입학 후 친구들은 술과 연애로 캠퍼스 낭만을 즐기는 사이, 우직하리만치 우진 씨는 공무원 시험 합격을 위해 묵묵히 공부했었다. 당최 술을 못 먹는 체질이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어느 순간 불편해진 우진 씨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결국 책상을 벗 삼아 대학생활을 보냈다. 친구들은 홍대나 이태원의 클럽에서 놀며 대학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동안, 공부를 마친 후 들르곤 하는 동네 싸구려 헬스클럽에서 우진 씨는 낡은 운동기구들과 사투를 벌이곤 했다. 얼마나 오래됐을까, 녹이 잔뜩 슨 운동기구를 들어 올릴 때마다,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마치 비트처럼 조용히 헬스클럽에 울려 퍼졌다. 바로 길 건너엔 헬스클럽이 아닌 근사한 최신식 시설의 '피트니스 센터'가 있지만, 우진 씨는 구석진 헬스클럽에서 묵묵히 자기와의 싸움에 골몰했다. 

지금이야 혼술이나 혼밥이란 문화가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던 그때는 혼자 밥 먹고, 혼자 무언갈 한다는 게 적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하던 때였다. 그 용기란 것이 기본적으로 내재된 타고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억지로 쥐어짜야 몇 방울의 용기가 나오는 사람도 있다. 안타깝게도 우진 씨는 후자의 인간이었던 터라, 드넓은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우진 씨는 (평소 헬스로 단련된) 그 우람한 팔뚝으로 이미 바짝 마를 대로 마른 용기를 쥐어짜야 했다. 우진 씨의 대학생활은 근육과의 싸움, 외로움과의 사투, 그리고 공무원 시험공부와의 전쟁으로 귀결될 수 있었다. 



# 아픈 데는 없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요 코치님?


누구보다도 열심히 땀 흘려 연습하고, 선수단 내에서 훈련을 제일 열심히 하는 투수가 있다. 남몰래 흘린 땀의 양을 알기에 감독은 알기에, 어느 날 경기에 투입하지만, 이내 상대팀에 난타당하고야 만다. 다급해진 투수코치가 작전타임을 걸고 마운드로 올라간다. "문제가 뭐야 도대체, 너 열심히 했잖아, 왜 제대로 된 '뽈'(ball)을 못 던지는 거야, 어디 아픈데라도 있는 거야?"



대입 준비를 하던 고3 시절에도 우진 씨는 묵묵히 땀 흘려가며 성실히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라는 것이, 수험생 각자가 그동안 공부한 시간과 총량을 서로 비교하며 겨루는 시험이었다면 그 큰 수혜자는 바로 우진 씨였으리라. "공부하는 만큼 대학을 갈 수 있다면, 넌 분명 서울대를 들어가야 할 거야" 대놓고 머리가 나쁘다고 하는 건지, 정말 안타까워서 한 말인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아리송하다. 마치 어제 들었던 말처럼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데, 과연 그 진의가 무엇이었을까. 난 서울대를 갔었어야 했을까. 그게 문제였던 건가. 차라리 내게 부상이라도 있었더라면, 할 말이라도 있었을 텐데. "사실은 팔꿈치가 욱신거립니다 코치님, 그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투수는 아프지도 않은 애꿎은 팔꿈치를 만지며 마운드를 내려온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내려와 미안한 마음이 크다. 부디 역전해서 우리 팀이 승리하기를. 투수는 결국 고개를 떨군 채 마운드를 내려간다. "차라리 대패라도 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을". 훗날, 그날의 기억을 회상할 때 누군가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4회 말 갑작스러운 큰 비로 인한 우천 취소, 그날의 등판이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일이 되었다.


 한창 무더운 여름날, 땀에 짓무른 엉덩이를 살짝 들며 부채질로 바람을 넣곤 했던 우진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이후 4년간 인고의 시간 끝에 공무원 토목직에 합격함으로써 그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부모님과 친구들 모두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등을 두드렸지만, 감격스러운 마음보단 담담한 마음이었던 우진 씨다, 이상하리만치. 그렇게 우진 씨는 모두가 바라던 공무원이 되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꼬박 6년 만의 일이었다. 



# 죄, 죄송합니다.!

"우진 씨, 문서에 오타가 너무 많네요, 앞으로 주의 좀 부탁드릴게요. 꼼꼼히 좀 검토해 주셔야 하겠어요 앞으로도"
"아니, 일을 이렇게 넘기면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 저 건은 왜 아직도 안된 건가요?"
"우진 씨, 제대로 좀 합시다 좀, 아니 한 두 번도 아니고 나 원."
"우진 씨, 진짜 이럴 거야? 똑바로 안 해?"


대화할 때 상소리를 추임새처럼 넣는, 입이 험한 민원인들을 제외하고도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본래 꼼꼼하지 못한 성격을 제일 탓해야 함은 맞지만, 그걸 제외하고서라도 주어진 일의 양이 너무나도 많았다. 실수를 통해 배워가며, 더 나은 업무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건, 일의 양이 적당하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가능한 얘기다. 넘쳐나는 일의 홍수 속에선, 조그만 실수들은 필연적이며, 그 실수들이 민원인들과 동료들의 불만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움츠러들고 위축된 우진 씨는 계속해서 실수를 연발하게 된다. 상하관계와 그 위계가 확실한 공무원 조직, 그중에서도 토목과는 그 위계의 질서가 손에 꼽히는 부서 중에 하나다. 일반행정직에 지원했더라면 조금은 나았을까, 하긴, 그런 비교가 지금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거칠게 문을 열며 팀장이 들어온다. "우진 씨, 어딨어, 일처리 진짜 이따위로 할 거야?!?"

퇴근은 전쟁에서의 도피가 아닌,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다. 단지 전장이 달라졌을 뿐, 아이 둘 애 아빠 우진 씨는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쉴 틈이 없다. "여보, 윤서 목욕물 좀 받아줘요, 젖병도 소독도 좀 해주고, 아참 저기 저 기저귀 좀 갖다 줄래요?" 적들의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 한가운데에서 오늘도 우진 씨는 누구보다도 낮은 포복으로 전방을 향해 열심히 기어가고 있다. 



# I'm fine, thank you and you?

내일 아침 출근길에 누군가가 '안녕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난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 난 정말 '안녕'한 게 맞나. 다들 이러고 사는 걸까, 혹은 나만 이러고 사는 걸까. 반문하고 싶은 마음이다. '댁들도 안녕하십니까'라고. 문득 초등학생 시절 영어시간에 왜 그리 열심히 이 문장을 외워야 했던 건지, 그 이유를 지금 알 것 같다. 그 영어 교과서의 저자 역시 정신없이 바쁜 생활 속에서 나처럼 삶의 회의를 느꼈던 게 아닐까, 어떻게든 알려주고 싶었던 저자는 그 문장을 교재에 넣으며 훗날 성인이 될 초등학생들에게 어떤 암시를 주고 싶었던 거지, 지금은 비록 알리 없겠지만, 성인이 된 어느 순간 깨달음이 오리라. 그때를 위해 너희들에게 이 문장을 선물 하마. 열심히 암기해서 먼 훗날 꺼내어 볼 수 있기를 '아임 파인 땡큐, 앤 쥬?"





Q1 : 지금 하시는 일을 간략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예, 안녕하세요 저는 9급 토목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 지금 이 곳 xx시청 토목과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Q2 :  공무원이 본래부터의 꿈이셨나요? 아니면 어떤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딱히 어떤 계기라기보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도 공무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이런 막연한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사기업은 내가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라는. 사교적인 부분이라거나, 밥 먹는 반복되는 야근, 또 퇴근 후 어느 정도의 반 강압적인 회식 같은, 제가 적응하기 힘든 부분들 때문에 아무래도 일반 사기업은 배제를 했었던 것 같아요. 


Q3 : 사기업이라고 해도 근무환경이나 회식문화 같은 부분들은 제각각이지 않을까요? 사기업이라고 해서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잖아요.

네, 맞아요 모든 사기업이 그런 건 아니죠. 사실, 공무원 시험에 계속 떨어지던 어느 해에 이 공무원 공부가 나한테 안 맞는 길인가 싶어 살짝 방황한 적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지인을 통해 조그만 중소기업에 들어갔었어요, 뭐 낙하산 비슷한 거라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단지 누구나 메고 싶은 낙하산이 아니었을 뿐이에요(웃음). 그곳에서 짧다면 짧은 시간을 보냈었는데, 그게 저한테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었어요. 전형적인 상명하복의 문화였던 터라, 제가 적응하기가 어려웠어요. 결국 두 달 남짓 짧은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하는 수없이 다시 공무원 공부를 다시 시작했죠. 배운 게 도둑질이라, 이미 그 시점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공무원이 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이 서른에, 공무원 공부만 하느라 가뜩이나 전무하던 사교성은 더 바닥을 쳤거든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불편하고 힘든 저한테 사기업은 아니라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Q4 : 그럼 지금 공무원이 되신 후, 현재 생활에 대해서는 만족을 하시나요?

안타깝게도 결코 아니에요. 그게 바로 지금의 제 문제이기도 하고요. 지금의 삶을 위해서 공무원 공부를 그렇게 악착같이 했던 건 결코 아니에요. 아이러니하지만, 차라리 지금 직장이 사기업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럼 당장에라도 때려치울 수 있으니까요.

나름의 노력을 안 했던 것도 아니에요. 먼저 있던 팀에서는 팀장님과 동료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업무도 도저히 맞질 않아서 다른 곳으로도 전출도 신청했었어요. 일반적으로 다른 부서로의 전출이 이쪽에선 힘든 편인데, 웬일인지 그때 전 운 좋게도 다른 곳, 다른 팀으로 전출도 됐었어요. 그렇지만 결국 늘 똑같아요. 어딜 가나 힘들어요. 이 토목직이라는 직렬 자체가 그렇지 않나 싶어요. 늦게까지 해야 하는 야근과 빡빡한 업무량은 어딜 가나 마 잔가지였어요. 


Q5 : 퇴근 후에 보통 어떤 생활을 하시는지요? 

퇴근 자체가 늦어요. 개인 시간 자체가 거의 전무해요. 그나마 팀에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대학원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이대로 뭔가 안주하면 왠지 뒤처지는 기분이 들거든요. 100세 시대를 대비하려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무언갈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노력이 없다면, 퇴직 이후의 삶이 결코 녹록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금수저가 아닌 다음에야, 저 같은 사람들은 늘 부지런하게 무언갈 해야 하는 게 맞겠죠. 그렇지만 지금은 제가 잘 가고 있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자꾸 들곤 하네요. 야근, 육아, 대학원, 지금은 이 세 가지를 병행하는 게 너무 힘에 붙여요. 스트레스도 크고요. 편두통이 심해서 얼마 전부터는 병원엘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Q6 : 본인이 꿈꿨던 공무원으로서의 삶과 지금 삶이 다르다고 보시나요?

누구나 다 그렇겠죠. 공무원 하면 떠올리곤 하는 그런 것들이요. 정시퇴근, 여유로운 업무환경, 정년보장, 비경쟁적인 동료관계, 저도 이런 것들을 막연하게 떠올렸던 것 같아요. 저라는 사람 자체가 어떤 성공지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남들과 비교했을 때 적은 월급일지라도 하루하루가 여유 있는 삶이기를 바라요. 제가 원래 헬스도 그렇고 권투도 그렇고 운동을 좋아하거든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도, 하루 공부를 마친 뒤에 체육관을 들러서 운동하는 게 저의 낙이기도 했어요. 공무원이 된다 해도, 삶에 큰 변화는 없을 줄 알았어요. 공부하는 시간에 일을 하고, 단지 그 대가로 돈을 벌 뿐, 정시 퇴근하면 체육관에 들러서 운동을 한 후에 집에 갈 그림을 그렸었죠. 지금은 상상도 못 할 그림이었죠(웃음) 업무가 끝나면 다 같이 회식에 참석해야 하고, 회식이 끝나면 당구장엘 삼삼오오 가는데, 저는 사람들과의 공감대도 없고 당구도 칠 줄 모르다 보니까 자연스레 밖으로 돌게 돼요. 이런 부분이야말로 대학 다니던 시절과 다를 바가 없는 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행인 건 그때부터 이런 생활은 익숙했었다 보니까, 지금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크게 당황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에요. 젊어서 쌓은 내공(?) 덕이겠죠.(웃음)


Q7 :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요?

열심히 육아와 대학원 공부를 꾸준히 병행하는 게 일단은 목표입니다. 현재 하고 있는 업무는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체념이죠. 어찌 보면 나이를 먹어가며 하나 둘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배워가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나만 이러는 게 아니라, 남들도 다 이러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하기도 하고(웃음), 여하튼 그렇습니다.


Q8 : 예전부터도 그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경쟁률은 종전의 기록을 계속 갈아치우고 있을 만큼 계속해서 인기인 시대입니다. 오죽하면 초등학생들이 되고 싶은 유망직종에도 '공무원'이 상위에 오를 만큼인데요, 아무래도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공무원이 되신 만큼, 지금 공무원을 준비하는 분들께 현직에 계신 입장에서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할 말이 많죠.(웃음) 먼저 본인이 왜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 깊게 생각하시기를 권면하고 싶어요. 직업을 찾을 때 본인만의 우선순위라는 게 있잖아요. 연봉이 우선이라던지, 안정성이 우선이라던지, 복지나 대우라던지 하는 것들이요. 그리고 그 우선순위가 충족이 되었을 때 오는 나머지 부산물들도 다 감당할 수 있는지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혹은, 본인이 생각했던 그 우선순위가 충족이 안되었을 경우까지도요. 제가 공무원이 되고자 했던 건, 그리 많지 않은 연봉에도 정시퇴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요.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회식도 없고, 야근도 없는 그런 생활이요. 퇴근 후에 운동도 하고, 애들하고도 놀아줄 수 있는 아빠를 꿈꿨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럴 수 없더라도 앞으로는 차차 나아지겠죠. 

가끔 제가 다른 직렬에서 일했다면 어땠을까 싶은 호기심도 들어요. 그렇지만, 그건 그야말로 복불복이지 않나 싶어요. 결국, 공무원이라고 해서 꼭 편한 업무환경에서 일한다는 섣부른 맹신은 위험한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왜 공무원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보는 시간이야말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에 앞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라 공무원을 꿈꾸는 친구들은 부디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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