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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Jan 27. 2020

눈치 보지 않는 삶, 그래도 되겠습니까?

[서평]'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를 통해 확인하는 나만을 위한 삶

뭔가를 대상으로 '덕질'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대상이 아이들이든, 배우든, 뮤지컬이든, 심지어 철도나 총기류든 간에 많은 사람, 특히 어르신들이 비꼬며 이렇게 묻는다는 것을. 그게 밥 먹여주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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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덕질을 하는 사람은 또 알 것이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네, 밥 먹을 힘을 줘요!"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 中>


복싱에 대한 책이라면 프로 복서의 고군분투기라거나, 다이어트를 위한 복싱 권면서를 떠올리기 쉽다. 그래서 단순히 '복싱'을 소재로 한 책이라고 했을 때 스치듯 귀담아듣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제목을 듣고 나서, 그리고 책 표지를 찬찬히 보고서야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다.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 이유 없이 좋아한다고 누차 얘기했던 #웨일북스 책이라는 건 표지 밑의 조그만 글씨를 보고선 알 수 있었다. 첫 장을 넘기는 그 설레는 마음은 독서하는 이라면 모두 공감할 게다.

프롤로그를 자기소개서'라고, 또 목차를 라운드 1부터 12라운드로 표현한 저자의, 혹은 편집자의 번뜩이는 재치가 엿보인다. '디테일을 아는 자들이로구만.' 디테일을 살뜰히 챙기는 사람들을 보면 프로의 향기가 난다. 때문에 단지 이야기의 초입임에도 직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적어도 재미있을 게야.'


세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자 되뇌이지만 책을 읽자마자 아차 싶은 마음이 든다. 복싱이라는 소재로부터 남성 저자를 은연중에 상상했건만 저자는 당당한 여성이 아닌가. 심지어 표지에도 '여자'라는 표현이 버젓이 있었음에도 지나쳐버렸으니 디테일을 모르는 내 모습이 영 볼썽사납다 느꼈다. 오만과 편견 없는 세상으로의 길은 이렇듯 멀고도 험난한가 싶은 마음과 함께 다시금 책을 읽는다. 겸허하고도 겸손한 마음으로.


사립 고등학교, 특히 외고에서 수학교사로 일하던 저자는 몹시도 우연한 기회에, 혹은 운명과도 같은 이끌림에 의해 복싱에 입문하게 된다. 말 그대로 '복싱'이라는 운동 그 자체에 덕질을 하게 된다. 힘든 일과를 마치고 도장에 다니며 복싱을 배우기 시작한다. 퇴근한 직장인이 무언갈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도 피곤한 일인지 모두들 짐작하리라. 미치도록 힘든 그 과정 속에서도 복싱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것조차' 없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하루하루에 대한 송구스러움 때문 아니었을까. 20대의 젊은 나이에도 저자는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만한 통찰을 이미 갖추고 있었던 듯하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저자의 글은 그리고 문체는 재기 발랄하다. 음식을 한 입 먹고선 유달리 할 말 없음에도 칭찬해야 하는 상황에 조동아리에서 나오곤 하는 '담백하다'는 의미의 그 담백하다 말고, 마찬가지로 별 다른 의미 없이 내뱉는 '재기 발랄' 말고, 진짜 생기 있고 활기찬 문체. 저자는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심지 있는 정신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지나치게 비약하지도, 혹은 과장하지도 않은 채 본인의 이야기를 그저 '담백'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그 힘은 저자가 중간중간 읊조리듯 이야기하는 '과거에 경험한 남녀차별'을 이야기할 때 빛을 발한다. 주도적이고도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한 저자는 지난날 본인이 겪어야만 했던 불합리한 경험에조차 어퍼컷을 날린다. 이 얼마나 시원하고도 후련한 이야기일까. 이제 서른을 갓 넘은 이 여성 작가는 진짜배기다. 솔직하면서도 근사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일까. 자신의 경험을 이리도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필력을 넘어선 저자의 매력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성 작가는 진짜배기다.

과거 외고를 다니던 시절을 이야기하기도. 혹은 그곳을 나와 자유로운 삶을 사는 지금을 이야기하기도. 때론 어린 시절 경험했던 무언가를 노래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복싱처럼 치고 빠지며 잽을 날리면서 어느샌가 훅을 치는 것처럼 리드미컬한 구성으로 짜여있다. 그 결과 순식간에 이 한 권의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남은 건 모두에게 드리는 추천사와 작가 '설재인'이라는 이름 석자뿐.


은연중에 우린 사실 너무나도 많은 눈치를 보고 살진 않는지,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됐다. 소확행, 욜로를 즐긴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우리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행복에 어떤 한계를 만들고 있진 않는지. 그 한계가 내 능력의 한계라기보다, 다른 이의 시선과 평가 혹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어떤 틀일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었다. 아니라곤 하지만 내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다른 이로부터의 평가'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지 한 번쯤은 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자신의 삶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를 통해 나 역시도 은연중에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때문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기 바란다. 지금 내 삶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끼거나,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면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말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지, 대체 '왜' 그걸 부둥켜 잡고 있어야 하는지 자문해 보길 바란다. 무언가를 꼭 쥐고 있었을 때 죽고 싶었다던 저자가, 그것을 손에서 놓은 지금 도리어 영원히 살고 싶다고 말하는 그 이유를 이 책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그때는 죽고 싶었는데 지금은 영원히 살고 싶다."

....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 中>


은연중에 겪고 있을 차별과 아픔이 있는 여성들, 약자들, 소수자들에게 특히나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어서 툭툭 털고 일어나 상대에게 어퍼컷을 날리라고. 당신 스스로의 삶을 존중하는 법을 읽어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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