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좋아한다. 한 달에 적어도 다섯 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면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눈길 사로잡는 영상보다 독서가 더 재미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럼에도 책이 재미있다'고는 대답하지 못하겠다. 생각해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쉴 새 없는 이미지가 쏟아져 나오는 영상이 주는 간편함과 재미는 사실 비교할 수가 없다. 다만 그럼에도 책을 읽고자 하는 건, 읽는 즐거움 역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재미의 또 다른 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칫 영상의 재미에만 심취하다 보면 그 소소한 재미의 끈을 놓치기 쉽다. 한번 놓쳐버린 끈을 다시 붙잡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기에, 그런 연유로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독서를 습관처럼 하려고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책 그 자체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책에 담긴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책이라는 물성이 내뿜는 특유의 아우라 역시 책을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책 냄새, 혹은 한 손에 쥐었을 때 적당한 그립감이나 종이 질감에서 느껴지는 그 촉감에 이르기까지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주는 만족감을 나는 사랑하는 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전자책도 이용한다. 전자책을 이용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그러나 전자책만을 주로 이용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기술이 발전해서 종이책을 읽는 것 같은 감성까지도 구현할 수 있다한들, 그 질감까지 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느끼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 우린 손 끝에서 전해지는 종이의 그 질감까지 고스란히 느낀다. 읽는 행위뿐만이 아니라 책을 통한 종이의 질감까지 모두 느끼는 총체적인 경험, 그것이 독서가 아닐까.
그럼에도 내가 전자책을 이용하는 이유는, '언제 어디서나'가 주는 가치에 있다. 외출하기 전 그 날 읽을 책을 신중하게 고르지 않더라도, 혹은 예기치 못하게 책을 읽고 싶은 순간을 마주하더라도 이 전자책 단말기만 있다면 내가 원하는 찰나의 순간에 독서가 가능하다. 좁은 핸드폰 화면이 줄 수 없는 만족감과 책에 대한 몰입력이 가능하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그러하다. 시시때때로 휴대폰을 들여다볼 때마다 펼쳐지는 영상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언제 어디서건 전자책 리더기를 열면 그곳에 나만의 서재가 펼쳐지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리디에서 출시된 새로운 전자책 리더기인 리디페이퍼 가 더 궁금했다. 리디북스에서 출시한 세 번째 자체 리더기라고 하니 이미 사용 중인 전작 페이퍼 프로와 비교해서 얼마나 진보했을지가 궁금했다.
리디에서 나온 이번 세 번째 전자책 단말기인 리디페이퍼를 보고 느낀 건 간편함과 편리함이었다. 누군가가 기기의 스펙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난 그저 6인치의 소담함과 유려한 디자인에 눈이 쏠렸다. 그리 크지 않은 내 한 손에도 쉽게 잡힌다. 페이퍼 프로 대비 종이책의 그 질감에 더 가까이 다가간 듯하다. 다른 무엇보다, 가벼워서 좋다. 173g이라 하니 흔히 볼 수 있는 수건 한 장의 무게, 이 한 장의 수건의 무게의 기기에 수 백 권의 책이 들어가게 되는 셈이니 가히 움직이는 서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인상적인 점은, 이전에 쓰던 페이퍼 프로보다 속도가 무척이나 빨라졌다는 점이다. E-ink 특성상 어느 정도 속도의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페이지를 넘기는 데 있어 조금의 답답함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오른쪽에만 있는 물리키는 화면을 돌림과 동시에 왼쪽에 위치하게 된다. 텍스트는 어느새 제자리다. 양 쪽에 물리키가 있는 페이퍼 프로와 비교해도 기능적인 불편함이 전혀 없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출퇴근 길에 핸드폰 화면 속 영상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이따금 느낄 때면 굳이 애써 책을 읽게 된다. 그러나 집에서 진득하게 앉아서 읽을 때 장점이 되는 페이퍼 프로의 큰 화면이 지하철이나 외출할 땐 괜히 신경 쓰인다. 한 손에 쉽게 들어왔으면, 조금 더 가벼웠으면. 한 손에 들어오기로는 휴대폰만한 기기가 없지만, 휴대폰으로 전자책을 볼 땐 영상과 SNS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읽던 페이지에서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영상을 기웃거리며 보게 된다. 너무 작은 화면이라 독서에 몰입하기에도 쉽지 않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6인치 리디페이퍼는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한 손에 쉽게 들 수 있는 사이즈와 무게인데다가 6인치 화면에 가득찬 활자를 읽는 맛이 있다. 점퍼 주머니에 쉬이 들어가는 사이즈이기에 언제 어디서든 꺼내기에 용이하다. 달리 말해, 독서를 위한 준비과정이 비약적으로 절약된다고 할 수 있다. 지하철이건, 카페건, 잠시 잠깐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 있는 어느 공간에서건 말이다. 덕분에 시간을 좀 더 알차게 쓸 수 있겠다라고, 괜히 한 번 더 다짐하게 된다. 외출할 땐 무조건 챙기게 된다. 책 바리바리 가방에 욱여넣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외출해서 무엇을 읽을지 고민할 필요도 없으며 그 시간마저도 절약할 수 있다.
내 의지를 신뢰하지 않을 때가 있다. 집에서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하거나, 저녁에 과자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가 그렇다. 박약한 의지를 보완하기 위해 난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하거나 애당초 집에 과자를 들이지 않는다. 책 역시 마찬가지로, 핸드폰, 그리고 태블릿으로 굳이 책을 보려 하지 않는 건 쉽사리 영상의 유혹에 굴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다용도에 적합한 기기들이 아닌가. 영상을 보거나 인터넷을 하기에, 또 동시에 다른 여러 가지를 하기에 좋은 기기들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독서라는 행위는, 다른 것들과 동시에 하기에 적합한 활동은 결코 아니다. 오로지 활자에만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진정으로 독서를 원한다면, 진득한 독서도 좋지만 짧은 찰나의 시간 동안에라도 집중도 있는 독서를 원한하는 이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전자책 리더기로 독서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그 효험에 대해 나의 경험을 토대로 분명히 이야기해 줄 수 있다. '허비'하는 시간들을 줄일 수 있노라고, 조금이나마 유의미한 '독서습관'을 장착할 수 있다고, 그래서 누구에게나 허락된 동일한 그 하루라는 시간 동안에 난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었노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