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어하우스와 외국인 가족
"꿈은 언제나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되며 꿈꾼 사람의 건강과 자기실현을 돕는다."
왜 무섭고 끔찍한 악몽을 꿀까? (생략) 꿈 이론에서 악몽이란, '지금 여기에 네 본성에 어긋나는 게 있어. 뭔가를 시급히 바꾸어야 하니 제발 깨어나서 이 상황을 좀 볼래?'라는 메시지다. 무의식은 급박하게 경각심을 촉구할 때 악몽의 형태를 취한다. 왜냐하면 진화의 역사에서 인간은 신나는 꿈을 꿀 때보다 끔찍하고 잔인한 악몽을 꿀 때 훨씬 꿈을 잘 기억하고 꿈에 관심을 더 쏟는다는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나의 꿈 사용법> 中
꿈을 다루려면 우선 그 꿈을 기록해야 한다.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쓸 것. 그것 말고는 문법을 모두 지켜가며 쓸 필요는 없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둔다. 워낙 꿈을 많이 꾸고, 기억에 남는 것도 많아서 어렵지 않았다.
누구의 꿈을 할 건지 순서는 딱히 정해진 건 없었다. 지원자가 있으면 하는 거다. 나는 용기를 내서 투사받고 싶다고 꿈을 올렸다.
※ 아쉽게도 당시에 글을 쓰는 계획이 없었어서 구체적인 기록들이 없다. 수첩에 있는 내용을 참고했으며 생략된 부분들이 있다. ※
2022년 7월 7일
제목 : 쉐어하우스와 외국인 가족
장면 1.
나는 언니와 말을 타고 식당 앞을 지나간다. 지나가던 남자가 간장을 붓는다. 난 잘 못이 없음에도 남자에게 해명한다.
장면 2. (정확히 기억 안 나는 부분)
쉐어하우스에 도착했다. 외국인 가족이 살던 곳이다. 친아버지가 방에서 칼을 들고 서 있다. 방에 들어가니 누군가의 기억을 훔쳐보는 것처럼 방에서 일어난 일이 눈에 보인다. 여자 아이의 방처럼 보인다. 침대 위 선반에 인형들이 많다. 아이는 침대에 쓰러져 있다. 아이의 몸 위에 두루마리 휴지가 올려져 있다. 속으로 생각한다. 이곳이 바로 무덤이구나.
장면 3.
다시 현재의 방으로 바뀌어있다. 그런데 인형 소품이 그대로다. 나는 두려움에 뒤돌아 방을 나가려는데 암전이 되어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렇게 꿈에서 깬다.
질문이 시작되었다. 꿈속 상황에 대한 질문과 연상, 감정에 대한 질문들을 받았다.
뭔가 상담을 받을 때와는 색다른 기분이었다. 인터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좋았던 기억을 말하면서도 생각보다 덤덤해서 스스로 놀랐다.
꿈을 다루면 다 까발려진다. 단어 연상 질문을 받다 보면 속 깊은 이야기들이 툭툭 나온다.
그러니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 알리고 싶지 않은 내용이 있다면 그 꿈은 잠시 미뤄두는 게 좋을 수도 있다.
나는 이날 모든 것을 탈탈 털어냈다. 꿈모임의 큰 장점은 본 지 얼마 안 된 사람들 속에서 더 진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거다.
질문이 모두 끝나면 각자 생각하는 투사 내용을 말해준다.
투사 1
: '집'이라는 공간은 정체성인데 그곳이 쉐어하우스라면 내면이 분리되어 있음으로 보인다. 아빠와 칼 무덤이라는 키워드는 나를 과거의 기억으로 이끌었다. 외국인 가족을 연상했을 때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가식적이라고 했다. 내 가족의 이중성이 엿보인다. 방에 아빠가 내 방에 들어와 있다는 것은 아빠가 나에게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테리어는 달라졌지만 소품이 그대로 있다. 이 부분은 과거의 어떤 부분이 고쳐지지 않았고,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나는 과거의 기억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투사 2.
: 말을 타고 가는 강단 있는 언니의 성격을 내가 필요로 하는 거 같다. 아이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투사하며 나온 연상) 부분에서 과거의 어떤 일이 연관되어 있는 게 아닌가. 아빠에 대한 배신감도 클 거 같다.
투사 3.
: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어떤 것을 봐야 하는데 회피해 버렸다. 첫 장면에서 잘 못은 남자가 했음에도 내가 해명을 하고 있다. 언니가 말을 이끌고 가는 것으로 보아 언니에게 의지하는 게 크고, 다른 사람에게 민폐 끼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이 작동한 거 같다. 두 번째 장면으로 보아 나는 과거에 이미 죽은 기억이 있다. 어떤 부분이 나를 죽게 했다. 아빠와 관련이 있는 거 같다.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소품)
꿈은 꼭 가까운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정말 원초적인 질문을 할 때도 있고, 위의 내용처럼 오래된 과거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나올 때도 있다.
내면이 쉐어하우스처럼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주관을 맞춰주는 성향이 크다. 메뉴를 정하더라도 어떤 게 먹고 싶다고 주장하지 않거나, 주장을 하더라도 다른 의견이 나오면 거기에 따른다. 그런 사소한 것부터 해서 주체성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는 점이었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쓰는 공간이라 하면 불편함이 가장 먼저 느껴진다. 집에서는 후줄근하게 있기도 하고, 멋대로 쉬고 싶고 화장실도 편하게 쓰고 싶을 텐데 그러지 못할 거 같다. 나의 내면이 많이 불편한 상태구나. 어디 마음 놓고 쉴 곳이 없구나. 이 꿈을 통해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이 꿈이 말해주는 가장 큰 문제는 과거의 트라우마이다. 여자 아이는 7~8세 정도로 되어 보였는데 그 시기에 나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방 안에 보인 아빠와 관련되어 있을 거 같다는 투사를 참고하여 생각해 봤다. 아빠가 나에게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나만 아는 기억이다. 지금의 나는 그래, 실수겠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내면 아이는 그러지 못한 거 같다.
꿈에서 가족이 나오면 현실의 가족 관계도 참고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집은 다른 사람이 볼 때는 평범하게 잘 살고 있는 가족처럼 보일 거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말 다사다난했다. 누군들 그러지 않겠느냐고 스스로를 억눌러왔다. 가족들에게 받은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게 꿈으로도 투영되어 보인 것이 신기하고, 역시 꿈은 다 까발리는구나. 감탄했다.
꿈을 통해 문제를 다룬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는다. 다만, 깊은 공감과 위로를 받고, 스스로도 털어냄으로 어느 정도 해소되는 부분이 있다.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지 않나. 인지하는 것부터가 시작이고, 시작이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