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도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많았다.
주로 글쓰기 모임에 참석했는데 비슷한 결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친밀해졌던 두 분에게 꿈 모임을 제안했다.
내가 가르칠 만한 그릇은 안 되고, 그저 속 얘기 터놓는 자리라며 슬슬 꼬셨다.
두 분 모두 흔쾌히 승낙하고 지금까지 달에 한 번씩 모임을 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특별한 활동을 했다.
나만의 방을 꾸미는 미술 활동이다.
사소하지만 나의 무의식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이 많이 도움이 되곤 했다.
수많은 그림 중 왜 하필 이 색으로 표현했으며, 이 그림을 그렸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찾을 수도 있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해 왔던 것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일은 특별한 경험이다.
내가 그린 나만의 방이다.
제목처럼 창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창이 많은 것은 다양한 시각과, 페르소나가 존재한다는 의미로 그렸다.
한쪽 벽면은 푸른색에 반듯한 격자형, 다른 벽면은 유기적 패턴의 창이 있다.
딱딱하고, 이성적이며 논리를 따지고, 보수적인 나의 모습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본능적인 에너지에 가까운 나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음을 표현했다.
전체적인 색감이 멍 같기도.
바깥은 우주다.
창이 많지만 하나의 통창이 아니므로 행성이 잘려서 보이고 있다.
다양한 측면을 볼 수는 있지만, 전체의 그림을 보기는 어렵다.
창에 가까이 가야만 볼 수 있을 텐데 방 안의 나는 웅크리고 앉아 보지 않고 있다.
양 끝의 밝고 어두운 부분이 극명하게 갈려 현실과 내면의 괴리감이 크다.
하지만 점차 다양한 색채가 떠오르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내면을 탐구하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현재의 모습이다.
벽 한 면이 온통 창이다.
커튼 하나 없다는 점이 마음에 깊이 닿는다.
외부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 쓰고 있으며,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저 그림을 보다 보니 한 작품이 연상된다.
우주까지 떠오른 나의 방.
혼자 남아 마지막 비디오를 떠나보냈다.
너를 좋아해.
(생략)
소년은 기쁨에 사로잡혔지만 즉시 겁에 질렸다. 이 고백이 남아 있을 그에게 지옥을, 소녀가 없는 세계에서 소멸을 맞기까지 그리움의 지옥을 불러일으킬 주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허공의 아이들> 김성중
요즘 들어 일이나 관계에 회의감을 느꼈다.
나는 노력하고 싶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을 때,
싸워주지 않고 포기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봐야 했을 때.
이런 결말뿐이라면 노력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멋대로 살고 싶고 숨고 싶었다.
떠나든 말든 신경 끄고 그냥 내 인생 살아야지.
이 악물고 버텼던 거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느는 건 실망감뿐이었다.
나에 대한 실망, 사람들에 대한 실망.
그저 웅크리고 앉아 관망하고 있다.
일단은 숨어있자.
잠시만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