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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태어나다

by 이은

2022.10.6 모임



꿈 내용.

나이 든 도사 할아버지가 보물처럼 가지고 다니던 짐을 푼다.
거기 있던 건 알인데 나에게 준다.
알에서 새파란 용이 태어난다.
손바닥만 하던 용은 금방 자라 품에 안고 다녀야 할 정도 크기가 된다.
난 용을 안고 언니와 함께 건물 옆 캣타워처럼 생긴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용을 안전하게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게 목표다.
(건물은 커다란 성의 규모다.)
하지만 건물에는 이미 적들이 많다.
어느 정도 올라가 창문으로 상황을 지켜보는데 들켰다.
건물 마당에 중장비들이 널려있다. 그것들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언니가 먼저 들어가 시선을 뺏는다.
난 마음속으로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스파이처럼 있다가 다른 용이 공격했으면 됐지 않나 아쉬워한다.


저번 꿈에는 독수리와 백호였는데 이번에는 용이다.

모임 사람들은 내 꿈을 볼 때마다 놀란다.

어쩜 이렇게 스펙터클한 꿈을 꾸냐며.

나도 신기하지만 워낙 이런 꿈이 일상이었던지라 오히려 현실적인 꿈이 더 찝찝할 때가 있다.


판타지 꿈이 현실보다 더 쉬울 수 있다.

상징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꿈을 많이 꾼다고도 한다.

발을 땅에 딛지 않고, 상상의 동물이 나오는 꿈은 어쩌면 현실 도피처럼 보인다.

판타지를 많이 꾸는 사람이라면 현실의 내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투사 내용.

도사 -> 꿈에서 나를 도와주는 역할
붉은 옷 -> 생명. 피. -> 생명을 품고 있다.
알에서 태어남은 엄청난 변화.
새로 태어난 나를 지키고 있는 느낌.
용(파랑) -> 창조성. 이성적.
붉은빛에서 파란 용이 태어난 게 인상적.
나는 여전히 성 밖에 있다. -> 두려움을 마주하고 빼앗겼던 성을 되찾아야 한다.
사다리 -> 내 안에 잘 정비되어 있지 않은 무언가.
기계는 작동하는 방법을 알면 된다. -> 두려워하는 일이 아예 답이 없진 않다.
언니 같은 강단이 필요하다.


꿈을 투사받다 보면 내 꿈인데도 대체 무슨 의미가 숨어 있는 건지 모르겠는 때가 많다.

융은 답은 네 안에 있다고 했지만, 그 답이 꽁꽁 숨겨져 있으니 문제다.


꿈은 고대와 현대가 기이하게 섞여있다.

도사 할아버지에게 받은 알, 성, 용이 주요 매개체로 나오지만

방해요소들은 현대시대에서나 볼법한 중장비들이다.


현실의 어떤 점이 내면의 성으로 들어가기를 방해하고 있다고 보인다.


왜 하필 중장비일까.

그중에서도 굴착기가 기억에 남는다.

굴착기는 건축 현장에서 쓰인다.

토사를 운반하고, 건물을 해체하며, 지면을 정리하는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데


어쩌면 내면의 성을 무너뜨리고 그곳에 새로운 것을 지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용이 자라나야 할 성이 오랜 기간 방치되어 더 이상 필요 없다 느낀 거다.


투사에서 용은 하나의 창조성으로 봤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알 것도 같다.


창작을 한 지 얼마나 됐을까.

21년도부터 소설을 완성하겠다며 기획을 열심히 했었는데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 쓰고 싶었던 작품이 딱 꿈에서처럼 커다란 성들이 있는 배경이었다.

판타지 장르에 대한 로망이 크기 때문에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왕좌의 게임, 룬의 아이들을 참고하여 들뜬 마음으로 기획했었다.


하지만 그건 잠시 묻어둬야 했다.

혼자가 된 현실은 꿈을 키울 정도로 여유롭지 않았다.


꿈 공부를 한 지 몇 달이 지나며 스스로를 돌아보다 보니

다시 창작의 힘이 돋아났다.

이야기는 전보다 더 확장되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부족한 점이 많이 보였다.

기반을 더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어쩌면 중장비들은 방해물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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