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4기 환자의 복직 일기 5
위암 환자였던 내가 회사에 복직한 지 두 달이 지났다. 복직 후 많은 일이 있었다.
얼마 전, 일기장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환영은 짧고, 현실은 길다.”
처음 며칠은 따뜻함이 가득했다.
많은 회사 동료들이 ‘인간 승리다’, ‘기특하다’ 같은 응원의 말을 건넸다. 특히 항암 치료 중에 마르고 머리카락이 빠진 모습을 봤던 동기들은, 그저 다시 회사 건물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라고 했다. 그 말들이 고마웠다.
'그래, 나도 이제 다시 시작하는구나' 싶었다. 대단한 일을 해낸 것도 아닌데, 건네주는 말들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회사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변해갔다. ‘암투병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성과를 내야 하는 실무자’로 대하기 시작했다. 따뜻했던 환대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그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조금 힘들었다. 나는 여전히, 매일매일이 낯설고 어렵기 때문이다. 몸도 마음도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출근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싶다. 항암 치료를 받으며 면역력이 떨어져 한동안 붐비는 시간에는 대중교통을 피했었다. 지금은 출퇴근을 위해 다시 지하철 속으로 몸을 밀어 넣어야 하니 그 과정이 몹시 버겁다.
회사 안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긴장 속에서 업무를 해야 하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하루 종일 마음이 무겁다.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쓰러지듯 눕는다. 그리고 실수는 잦다.
‘케모 브레인’이라는 말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항암 치료 이후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다. 치료 중에도 느꼈지만, 회사로 돌아와 다시 일하다 보니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누가 나에게 무슨 지시를 했는지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쉴 새 없이 노트를 적으며 하루를 버틴다. 분명 설명을 들었는데도 깜빡해서 혼난 적도 있었다.
“왜 이렇게 썼냐, 왜 확인 안 했냐.”
모두 맞는 말이었다. 정말 계속 아차 싶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스스로가 점점 더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야근을 하고 있을 때면 괜히 눈치가 보인다. 사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조차 나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앉아 있는 것도 힘들고, 집중하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니까. 사람들이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누군가 메신저로 한 줄 물어오면 ‘네’ 혹은 ‘아니요’ 대답 하나에도 십 분, 삼십 분을 고민한다.
그 한마디조차 틀릴까 봐 무서운 것이다. 괜히 대충 답했다가 또 실수할까 봐, 실망시킬까 봐 두렵다. 자료를 찾고, 전임자에게 묻고, 심지어 챗GPT에게까지 묻는다.
며칠 전, 휴직 전 함께 일했던 부장님을 3년 만에 만났다. 그가 나를 보고 말했다.
“생각보다 보기 좋다.”
그 말이 참 묘했다. 살이 빠졌다는 뜻일까.
생각보다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라는 뜻일까.
한참을 곱씹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암환자 같지 않아 보여요.”
좋은 말이라는 걸 알지만, 혼란스럽고 부담스럽다.
내가 겪은 시간들이 그저 ‘그 정도면 괜찮은 거였네’
라고 평가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모든 암환자가 똑같은 모습으로 아픈 것도 아니다.
탈모가 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사람마다 부작용이 모두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아팠던 시간이 더했거나 덜했던 것도 아니다.
너무 쉽게, 내 지난 시간을
별 것 아니었다고 말해버리는 듯하다.
나는 사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잘 돌아왔다.”
“기다렸다.”
“와 줘서 고맙다.”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얼마나 ‘괜찮아 보이는지’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회복 중이니까.
신입사원 시절, 환영회에서 오래된 선배들이
“왜 이제야 왔니.”
라고 말해줬던 일이 기억난다.
그때 마음이 참 뭉클했었다.
아마도 나는, 그때 그 선배들의 따뜻한 마음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야 왔구나.”
“건강히 돌아와 줘서 고맙다.”
그런 따뜻한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복직은 단지 회사에 다시 나오는 일이 아니다.
몸도 마음도, 삶 전체를 다시 맞춰 나가는 일이다.
혹시 주변에도, 누군가 다시 시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한다.
“기다렸어.
와줘서…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