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특하다

위암 4기 생존자 복직 일기 4

by 이유

“기특하다”


복직한 지 한 달이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여전히 회사 곳곳이 낯설었다. 이질적인 이 곳에서 나는 매일 긴장한 채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화장실에 가던 길, 몇 번 마주친 적 있던 단발머리의 중년 여성 분과 또 마주쳤다. 아직 성함도, 직함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분이었지만, 볼 때마다 환한 미소를 건네주시던 분이었다.

그날은 화장실에서 그분이 양치를 하고 계셨고, 내가 들어서자 싱긋 웃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셨다.

“A팀 팀장님이 참 기특하대요.“

나는 얼떨결에 “네?” 하고 되물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순간 귀를 의심하였다.

“건강하게 돌아와서, 참 기특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대요.”


그 말을 들으니 잠시 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에 뭉개뭉개 퍼져갔다. 오래전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생활기록부에 써주던 말들.

"기특하다, 대견하다."

어린아이였을 때나 듣던 말인데, 지금 다시 들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뭉클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드렸다. 그 짧은 인사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얹혀 있었다.


복직한 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 병명도, 몇 기였는지도, 어느 정도는 다 전해졌겠지.

회사라는 공간은 이상하리만치 ‘속사정’에 빠르다.

그래서일까, 어쩌다 처음 마주한 사람들조차 나를 조심스레, 혹은 따뜻하게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말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기특하다


그 말은 마치 나의 3년을, 그 긴 투병과 생존의 시간을 무심한 듯 끌어안아주는 말 같았다.

나는 그저 ‘다시 일하러 나온 사람’인데, 누군가의 눈에는 기특하고 대견하게 보였다는 사실이 긴장을 풀게 해 주었다.


예상 밖의 MBTI

식사 자리에서 MBTI 이야기가 나왔다.

나를 INFJ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분이 계셨다.

나는 속으로 ‘어? 내가 I로 보인다니? ENFP인데?’ 하고 놀랐다.

활발한 성격인 내가 I로 보이다니, 계획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내가 J로 보이다니.

아마도 복직한 이후 말을 아끼고, 눈치 보고, 조심조심 행동해서 그랬던 걸까.

사실은, 괜히 나를 평가하는 눈들이 있는 것 같아 스스로 틀 안에 들어가 있던 건지도 모른다.

부서 사람들은 좋았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어쩐지 자꾸 ‘의식’하게 된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잘 이겨냈다”는 따뜻함도 있지만, 동시에 “앞으로 이 사람이 일을 제대로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나 조심스러움도 함께 느껴진다.


그래서 말을 줄이게 되고, 피곤하지 않아도 될 일을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다. 괜히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못 들은 척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들은 그저 따뜻하게 대해주려는 것뿐일 수도 있다. 내가 지나치게 마음을 닫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그날 그분이 건넨 “기특하다”는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조금씩 열기로 한다.

그 말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걱정도, 응원도, 환영도, 그리고 안쓰러움 같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아마도 그 한마디로 나는 지금까지 잘 버텼고, 또 내일도 그렇게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에게 오늘도 "기특하다"라고 말 해보려 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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