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타버린

위암 4기 생존자 복직 일기 3

by 이유

암병원에서 건강검진이 있는 날이었다.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서 휴가를 냈다. 휴가였지만 늦잠을 잘 순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병원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 대신 병원으로 출근하여 몇 시간이나 각종 검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몹시 피곤했다.


집에 있던 엄마는 저녁 약속이 있다며 곧 나가겠다고 하셨다. ‘조금 쉬었다가 엄마가 나가면 혼자 저녁을 챙겨 먹어야겠다’ 생각하며 침대에 널부러졌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냄새지?'

내 방이 주방 쪽에 있다 보니 이따금 다른 집에서 끓이는 고등어나 된장찌개 냄새가 들어오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다른 집에서 나는 냄새겠거니 하며 창문을 닫고 다시 잠들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창문을 닫자 냄새는 더 강해졌다.

‘뭐지? 엄마는 금방 나가니까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이 없을 텐데…?’

불안한 마음에 방문을 열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인덕션 위에 놓인 냄비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뭐야 이게 뭐야!”

나는 깜짝 놀라서 연기를 손으로 휘젓으며 내비를 옆으로 치우고 환풍기와 창문들을 활짝 열었다. 엄마는 내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소리를 듣고는 잠에서 깬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고 했다.

“엄마가 냄비 인덕션에 올려뒀어!?”

나는 창문들을 세게 열고 선풍기를 강으로 틀어놓으며 엄마에게 다그쳐 물었다.

엄마는 아직도 덜 깬 목소리와 표정으로 “잠들어버렸네”라고 했다.

나는 화가 잔뜩 났다.

“아니, 다 죽으라는 거야 뭐야! 저녁 먹으러 간다면서 나가기 10분 전에 냄비를 불에 올려놓고 잠들면 어떡해!”

왈칵 눈물과 화가 잔뜩 나 소리를 질러버렸다.

엄마는 내가 치운 냄비를 싱크대에 가져가 물을 가득 부었다. 그러자 연기는 더 짙어졌다. 나는 성질을 부리며 방 안에 있는 선풍기들을 창문 쪽으로 향하게 했다. 환기를 하려 했다. 집 안에 환풍 시스템이 있었지만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이리저리 버튼을 아무리 꾹꾹 눌러도 작동이 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사이 엄마는 모든 방의 방충망까지 모조리 다 열어버렸다.

'이제 여름이라 내가 제발 방충망 꼭 닫아두고 환기하라고 그렇게 몇 번이나 말했는데.'

눈앞에 파리 몇 마리가 창문으로 들어온 것을 발견했다. 그 모습에 또 화가 났다. 어제도 내가 집 안에 있는 파리 몇 마리나 쫓아냈는데 말이다. 또다시 한번 화를 버럭 내버렸다.


“엄마! 방충망은 닫고 환기해야지!”

그러자 엄마도 화를 낸다.

“방충망을 열어야 제대로 환기가 된다고!”

우리는 고성이 오가는 모녀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엄마는 갑자기 베란다에 있는 건조대 리모컨을 찾기 시작했다.

“이놈의 리모컨은 도대체 어디 뒀냐, 정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엄마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신경질적으로 리모컨을 찾아다녔다.


사실 나는 그 리모컨이 TV 앞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화가 나서 바로 건네줄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잠시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엄마가 계속 화를 내며 리모컨을 찾는 소리에 한숨을 깊이 내쉬고, 결국 TV 밑에 있던 리모컨을 찾아서 베란다로 향했다. 건조대가 올라가도록 리모컨 화살표 버튼을 눌렀다.

'위이잉' 소리를 내며 옷을 걸어둔 건조대가 천천히 올라갔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엄마는 또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게 옷이 창문을 가리니까 환기가 안 되잖아!”

나에게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는 엄마를 보니 또 화가 진정되지 않았다.


속이 뒤집혔다. 불을 올려놓고 잠들어 온 집이 탈 뻔한 상황인데, 왜 화를 내는 쪽이 엄마일까. 엄마는 또 나를 흘겨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방귀 뀐 사람이 성낸다더니.


엄마는 험상궂어진 내 표정을 한 번 흘겨보더니 또 소리를 질렀다.

“너 화낼 거면 나가! 연기 마시잖아! 탄 냄새 발암물질 나오는 거 몰라!? 암환자가 어디 이런 연기를 맡고 있어 나가 너!”

나는 말없이 핸드폰을 챙겨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까지 탄 냄새가 가득했다. 버튼을 눌렀지만 엘리베이터는 오늘따라 한참을 기다리게 했다.

18층, 17층, 16층... 층마다 멈췄다.

계속 이 냄새를 맡고 있자니 도저히 못 참겠어서, 계단으로 빠르게 내려왔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아이들이 까르르 소리를 내며 ‘엄마, 엄마!’ 하며 뛰노는 놀이터였다.

조금 진정이 된 채로 생각해 보았다. 엄마는 왜 나에게 화를 냈을까? 나는 왜 엄마에게 화를 냈을까?

사실 내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던 것은 엄마가 걱정되어서였다.

어제 엄마와 대화할 때, 검은색으로 염색한 머리 밑으로 흰머리가 가득한 것이 눈에 밟혔다. 눈 밑엔 주름도 깊게 파여 있었다. 만약 내가 오늘 건강검진 휴가가 아니어서 집에 없었다면? 엄마는 연기에 중독돼 질식사했을지도 모른다. 집 전체가 불에 타버렸을 수도 있다. 혹시 치매일까, 걱정이 밀려들었다.


반대로 엄마는 왜 나에게 화를 냈을까? 엄마의 잘못으로 집안에 불이 날 뻔한 스스로에 대한 화였을까. 또 그 냄새를 맡은 딸이 걱정되어서일까. 사실 저녁 약속이 있는 엄마는 내가 저녁으로 무언가를 먹으라고 요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깜빡 잠든 스스로에게 난 화였을까. 그 복잡한 마음이 드니 또 눈물이 맺혔다.


이게 엄마랑 딸의 관계인가? 서로 걱정되어서 화를 내고, 또 화를 내서 사랑함을 드러내는 것인가?


놀이터에서 놀던 한 아이가 그만 넘어지며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가 조심하랬지!’ 아이의 어머니는 엉엉우는 아이를 일으키며 화를 낸다. 사실 아이가 다쳐서 속상함에 나온 화였으리라.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 해가 지니 저녁을 먹으러 아이들과 어머니들은 집으로 향했다. 나도 그만 배가 고파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 오니 탄 냄새가 집안에 가득 했다.


주방으로 가 보니 까맣게 타버린 냄비가 보였다. 냄비다 탈 때 뜨거웠던 열기가 식혀져 있었다. 나는 그 냄비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하얗게 다시 돌려놓으려고 수세미를 벅벅 문질렀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한참을 씨름하다 그냥 주저앉아버렸다. 열기는 식었지만 까맣게 타 버린 냄비. 내 마음과 같다.


사실 새까맣게 타버린 것은 내 마음이 아니었을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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