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 들어갈 위가 없어

위암 4기 생존자의 복직 일기 2

by 이유

3년 만에 회사 동기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복직 소식을 듣고 하나둘 연락을 준 고마운 동기들이다.

회사 근처에 뭐가 맛있는지 물었다. 3년 전 내가 자주 가던 식당들은 많이 사라졌거나 바뀌어 있었다. 그들이 추천한 곳은 한식당이었다. 메인 메뉴는 김치찌개.


맵고 짠 음식은 위암 수술 이후 줄곧 피하고 있던 터라, 메뉴판을 훑어보다가 맑은 국물의 국밥이 있는 걸 보고 ‘그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11시 50분. 점심시간.

회사 로비는 점심 메이트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도 이산가족 상봉하듯 까치발을 들고 반가운 얼굴들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익숙한 무리. 동기들이었다.


“야, 진짜 보기 좋아졌다.”
3년 전, 예쁘게 만나던 애인과 결혼까지 한 P군.


“그러게. 삐쩍 말랐었는데 지금이 딱 좋네.”
같은 학교 출신의 재밌는 성격의 L군.


“언니 진짜 안쓰러웠는데… 이렇게 보니까 감동이야.”
항암 중에도 종종 만나줬던 따뜻한 J양.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시간답게 직장인들로 가득했고 웨이팅도 있었지만, 다행히 예약을 해둬서 바로 앉을 수 있었다.


“우리 김치찌개 4인분에 라면사리 추가하자!”

L군이 손을 번쩍 들며 주문하려는 순간,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오빠, 나는 맑은 국밥 먹을게! 나 맵고 짠 거 소화가 안 돼서 김치찌개 못 먹어. ”

그는 번쩍 들었던 손을 내렸다.

“아, 맞다. 너 자극적인 거 못 먹지. 미안, 생각을 못 했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냐, 난 오히려 먹방 보는 기분으로 셋이 먹는 거 보는 게 좋아.”


그래서 우리는 김치찌개 3인분에 맑은 국밥 하나를 주문했다.

김치찌개는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라면사리며 돼지고기며 건더기가 가득했다.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도 하나둘 꺼내졌다.

결혼하게 된 계기, 신혼집 이야기, 다른 동기의 연애사까지.
모두가 3년 사이에 연애도 결혼도 참 잘도 해냈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다.
3년이라는 시간, 나만 한참 뒤처진 느낌.

나는 국밥을 깨작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던 중 P군이 말했다.

“많이 먹어.”

나는 애꿎은 맑은 국밥을 휘저으며 말했다.

“응응. 오빠도 많이 먹어!”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내 국밥 양은 거의 줄지 않았다. 다시 P군이 말했다.

“왜 이렇게 조금 먹어? 입맛이 없어?”

그 말에 나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그들의 김치찌개 냄비를 봤다.

“나 진짜 많이 먹었어.”

그러자 J양도 한마디 거들었다.

“에이 언니 국밥이 거의 안 줄어들었는데? 맛이 별로야?뭐 다른 거 시켜줄까?”

나는 당황하며 얘기했다.

“아냐 아냐. 나 진짜 괜찮아. 더 들어갈 위가 없어!”

편하게 던진 말이었는데,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위가... 없어?”


L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나 위암이잖아. 암 수술 받을 때 위 전체를 잘라냈어. 사실 비장도 같이. 그래서 진짜 많이 못 먹어. 이 정도면 진짜 충분해.”


J양은 입을 가리며 말했다.

“진짜...? 위가 완전히 없는지는 몰랐어... 언니 진짜 고생했네.”


그들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조금만 먹어도 진짜 배불러. 근데 왜 허리 사이즈는 안 줄어드는지 모르겠네?”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일부러 유쾌하게 넘겨보려 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여전히 걱정과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사무실로 돌아갈 시간. 우리는 각자 다른 층으로 흩어졌다.

“다음엔 이유가 잘 먹을 수 있는 메뉴로 먹자~!”


그렇게, 조심스럽고 따뜻한 한 끼를 함께했다.
내게는 김치찌개보다 훨씬 더 깊고 뜨거운 점심이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