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4기 생존자의 복직 일기 1
“라떼는 말이야...”
나도 모르게 신입사원에게 ‘라떼는 (나 때는)’을 연거푸 말하고 있었다. 복직 한 지 얼마 안 되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고마운 인수인계를 해 주는 고마운 신입사원에게 말이다.
5년 반 전, 나는 이 회사에 입사했다. 소위 말하는 대기업 중 하나였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근속 10년, 아니 30년은 족히 넘은 선배들에게 업무를 하나하나 배워야 했다.
그 선배들은 교육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 때는’을 입에 달고 있었다.
“나 때는 월급도 안 주는 회사가 쎄고 쌨어.”
“나 때는 컴퓨터 없이 다 손으로 썼다니까.”
“나 때는 말이야...”
처음엔 그 옛이야기가 참 신기했다. “와 정말요?” “헉 진짜요?” “에이 거짓말~”을 연발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들었다. 그런데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 네...”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게 됐다. ‘나 때는’이라는 말만 들어도 귀가 아파질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바로 그 ‘라떼는 말이야’를 말하고 있다. 그것도 신입사원 앞에서.
그 신입사원도 아마 5년 반 전, 내가 지었던 그 표정을 짓고 있겠지. 어딘가 어색하고, 뭔가 할 말은 많은데 일단 웃고는 봐야 할 것 같은, 그 표정 말이다.
이 회사로 돌아온 건 정확히 3년 1개월 만이었다. 회색 카펫이 깔린 사무실, 빼곡한 책상과 의자들, 출근 시간 2호선 지옥철, 사원증을 찍고 네모난 큐비클로 향하는 익숙한 동선까지. 3년 1개월만에 돌아온 이 사무실은, 익숙했지만 동시에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이곳에 출근했을 때 나는 만 27살이었다. 지방 근무를 2년 반 정도 하고 서울 사무소로 옮긴 지 딱 두 달. 이제 ‘신입’이라는 꼬리표를 막 뗀 직장 3년 차였다. 실무 경험을 쌓으며 커리어를 만들어가야 할 시기였다. 새로운 부서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고, 처음 해보는 일에 적응하느라 매일 새벽같이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했다.
주말도 반납한 채,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회사에 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냥... 잘하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고, 잘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달을 쉼 없이 달리던 나는 어느새 진통제로도 가라앉지 않는 복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식은땀에, 현기증까지. 모니터의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던 어느 날, 결국 회사 안에 있는 건강관리실을 찾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나의 상태를 보고 말했다.
“이 정도면 빠르게 정밀검사를 받아보셔야겠어요.”
인근 병원에서 위내시경을 받았고, 조직 검사 결과 위암이 발견되었다. 병원은 상태가 심각하다며 대학병원으로의 진료를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로 병원 예약도 하늘의 별 따기였지만, 가장 빠른 날짜로 외과 진료를 잡았다.
대학병원은 사람이 많았다. 기존 검사 결과를 제출하고, 다시 위내시경, 복부 CT, 혈액검사를 반복했다. 2주 후,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위암이 확인됐습니다. 예후가 좋지 않아 당장 입원해서 수술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너무 정신이 없었다.
'고작 27살에 위암이라니. 그것도 예후가 좋지 않다고? 아니, 수술조차 못할 수도 있다고?'
처음 든 생각은, ‘회사는 어떡하지?’였다. 겨우 입사한 지 2년 반, 본사로 온 지는 3달.
'내가 하던 일들은 어쩌지? 지금 빠지면 누가 대신하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당장 내일 입원하라는데.
나는 휴직을 신청했다. 그리고 1년. 병세가 좋아지지 않아 또 1년. 여전히 치료 중이어서 마지막으로 다시 1년. 도합 3년을 휴직했다.
'잠깐만. 회사를 다닌 기간은 2년 반인데, 휴직은 3년.
이쯤 되면 나는 중고 신입사원 아닌가?'
무려 3년 전 업무 방식만 기억하는 ‘라떼는’ 중고 신입사원. 그런 내가, 업무를 인수인계해주는 신입사원 앞에서 ‘나 때는 말이야’를 연발하고 있다니. 어쩌면, 괜히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 회사를 다녔었고, 예전에는 열심히 했고, 뭔가를 이뤘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하지만그 전설같은 라떼는을 연거푸 남발하는 걸 듣고 있는 신입사원은 무슨 죄인가.
직급도, 연차도 5년은 차이 나는 사람 앞에서 인수인계를 해주며 하루 종일 ‘라떼는’을 들어야 하다니.
내일은 달달한 라떼라도 하나 사줘야겠다.
고마움의 표시로, 그리고 약간의 미안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