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에서 직장인으로 복직 3개월 후기

암 4기 환자의 복직 일기

by 이유

항암이라는 전쟁


암환자에서 직장인으로 나의 직업이 바뀌게 된 것이 벌써 3개월째다. '암환자가 왜 직업이냐'라고 묻는다면, 생각해 보면 항암치료 자체가 하나의 전업이었기 때문이다.


아침 6시부터 병원으로 가서 혈액검사를 하고, 2-3시간을 대기한 뒤에야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없는지 결과가 나온다. 외래 진료로 교수님을 만나 "오늘 항암치료 합시다"라는 짧은 진료로 보고서야 항암주사실로 이동한다. 그러나 항암주사실에 침대나 소파 자리가 없으면 복도에 앉아서 너도나도 폴대를 하나씩 붙잡고 내 항암치료제가 배달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본격적인 항암치료를 하기 전 항암치료를 덜 힘들게 하기 위해 항구토제를 맞고, 600mL짜리 항암치료제 병을 두 개를 맞으면서 6시간을 버텨야 한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가만히 누워있는 게 아니다. 내 온 몸속에서 항암치료제가 암세포와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오후 4시쯤 되면 이제 항암치료를 마치고 필요한 약들을 받는다. 원내 처방전과 원외 처방전을 나누어 받아 약국에서 약을 받아오고 결제를 하고 나서야 끝난다.


집에 도착하면 오후 6시쯤이다. 9 to 6보다 긴 6 to 6였다. 그러나 끝난 게 아니다. 야근을 해야 한다. 사실 병원에서 항암제를 달고 나왔다. 직장인으로 치자면 잔업을 가지고 퇴근한 거다. 집에서도 인퓨저 항암제를 달고 밤샘 야근이 시작된다. 3일 내내 내 몸속에 항암제가 계속 투여되기 때문에 3일간 쉬지않고 철야가 이어진다.


새로운 전쟁터, 지하철

3년 후, 드디어 몸속 항암제를 털어내고 회사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내 몸속에 박혀있던 항암제를 툴툴 털어내고 말이다. 그런데 복직 한 첫 달은 출근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항암치료를 할 때는 면역력이 낮아서 마스크를 꼭 끼고 사람이 덜 붐비는 시간대에만 지하철을 타다가, 출퇴근 시간 지하철을 타니 정말 고역이었다. 몇 번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중간에 내려서 지하철역 의자에 1시간을 앉아 있다가 다시 탔다.


내 키가 작은 편이라 키 크고 건장한 분들이 내 앞뒤에 있으면 정말로 고래 사이에 낀 새우가 된 느낌이었다. 최대한 벽 쪽에 몸을 붙이려 하지만 지하철 안 공간 싸움을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웬만하면 사람이 그나마 덜 붐비는 시간대를 택한다. 가방을 앞으로 메고 귀에는 에어팟을 끼고 눈을 감고 그저 숨 쉬는 데만 전념한다.


마치 전쟁터에 끌려 나간 이등병 같았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설프게 전쟁터에 끌려나간 이등병말이다.


전쟁터에서 만난 전우들


지금은 지하철 타기의 달인이 되어버렸다. 이등병에서 이제 일쩜오등병(?) 정도 된 것 같다. 이제는 익숙해졌다. 지하철을 타면서 나름의 패턴도 발견했다. 같은 시간에 항상 같은 칸에 타게 되는 익숙한 사람들도 눈에 띈다.


출퇴근이라는 전쟁터에서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우리는 서로 말을 건네지 않지만, 나만의 연대감이 생겼다. 똑같이 무채색 정장을 입고, 똑같이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똑같이 이 아침 전투를 버텨내는 전우들이다. 그들 또한 그들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암환자일 때는 굉장히 무작위의 시간에 지하철을 타서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힙하게 입고 성수동 팝업을 가는 젊은이들, 곱게 차려입고 꽃놀이 가는 어머니들, 중무장을 하고 등산을 가는 어르신들 말이다. 그런데 출퇴근 시간에는 무채색의 조용한 직장인들이 그득하다. 웃음기가 없는 표정에, 눈에는 피곤함이 새겨져있다. 회사라는 전쟁터로 향하는 전우들이다. 나와 같은 전우들을 보며, '오늘도 파이팅'이라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적응이라는 단어


사람은 정말 적응의 동물이구나.

처음에는 너무나 힘든 출퇴근이, 3개월 만에 출퇴근에 이제 익숙해졌다. 몇 시 몇 분에 지하철이 오는지, 지금 나가면 지각할 거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어느 칸에 사람이 그나마 적은지. 몇 번 출구로 나가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덜 걷는지 등 말이다.


그리고 가장 적응 완료를 빨리 한 것은 월급날이다. 매월 같은 날에 들어오는 월급이 이보다 좋을 순 없다.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전쟁터를 버텨내기도 한다.


암환자라는 첫 번째 직업에서 직장인이라는 두 번째 직업으로. 그 사이의 모든 크고 작은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그 과정에서 겪은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이제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매일 아침 전쟁터를 향하는 지하철을 타며 생각한다.

전국의 모든 전우들, 오늘도 살아냅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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