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이라는 판타지

by 유이월

집으로 거의 매일 식품 샘플을 배달시킨다. 공구 전에 시식을 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바빠서 요리를 할 틈도 잘 없지만, 샘플들만으로도 이미 우리집 식단은 결정이 나있다. 그러니까 식구들은 일종의 실험대상이다. 먹여보고 별로라는 반응이 나오면 그 공구는 접는다. 집밥을 거의 하지 않으니 편한 점도 있지만 가끔 식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식구들이 좋아할 것 같은 식품 위주로 공구를 하니까 실험군이 된 것을 싫어하지 않는 것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죄책감이 드는 것을 보면, 알게 모르게 나 역시 수고가 들어간 집밥이라는 판타지를 내면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손수 장만한 식재료로 정성들여 음식을 만드는 일은 숭고하다. 나무랄 데가 전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부엌을 사랑하고 요리의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전혀 그렇지 못하거나 그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므로 누군가는 식탁을 책임져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대체로 여성들이 그 일을 담당한다. 재주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인 경우에도, 그 희생이 당연시되곤 한다.


나는 유학생활을 하는 10년 동안 ‘삼시세끼’의 집밥 판타지를 완벽히 구현했다. 한국처럼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시엔 밀키트 같은 것도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메뉴를 두 번 먹는 일도 잘 없었다. 끼니마다 새로운 음식을 해냈고, 마치 그게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부엌에 살았다. 아마도 그때 나의 집밥 에너지가 바닥난 것 같다. 현재의 나에게 부엌은 고통의 기억을 끌어올리는 공간이다. 언젠가 내가 은퇴라는 것을 하는 날이 오면 다시 집밥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을 수는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현상은 조금 더 지속될 예정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집밥이 곧 사랑이라는 공식에서는 좀 벗어나고 싶다. 일정 수준의 품질을 보장하는 밀키트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이를 구매하는 여성들은 때때로 심리적 부담감을 느낀다.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사회적 역할이 다양해지는 시대에도 집밥 판타지가 여성들에게 불필요한 압박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집밥을 만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들이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생각하거나 가족을 충분히 돌보지 못했다고 여기는 것은, 여성의 시간을 오롯이 가정에만 귀속시키려는 가부장적 사고의 산물이다. 가족을 위한 요리만이 사랑의 척도인가? 가사노동을 줄이고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는 없는가? 여성에게 덧씌워진 프레임이 끊임없이 죄책감을 유발하는 오늘날, 각자가 각자의 삶에서 사랑에 대한 현대적이고 실질적인 해석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빠르고 간편하게 식사준비를 할 수 있는 제품들을 끊임없이 발굴한다. 집밥 만들기에 익숙하지 않은 남성들도 부엌에 쉽게 접근 가능해지고 죄책감에 찌든 여성들이 해방감으로 나아가는 데 내가 하는 사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집밥 판타지는 해체되어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전통적인 성 역할에서 자유로워지고 가족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실제적으로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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