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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이부시게 Jun 25. 2024

루비 보석함

영롱하게 빛나는 사랑


내 손가락에는 없는 4,500만 원짜리 루비반지.




 스물일곱 살.

1993년 3월에 결혼날짜를 잡았다.

결혼식 준비 중 내게 제일 큰 과제는 결혼예물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장신구에 관심이 없는 난, 결혼이란 제목으로 예물을 꼭 골라야 하는 숙제인지 난제인지를 해결해야 했다.


치장이나 멋 부리는데 별 관심이 없었지만, 막상 예물을 선택해야 하는 숙제를 쥐어 주니 조금은 관심이 생겼다.

사실 난 요즘 젊은이들처럼 커플링 하나만으로도 족한 사람이다.


숙제처럼 보석상을 이곳저곳 둘러봤지만, 워낙 관심이 없는 분야라 그런지 마음에 와닿는 예물이 없었다.

직장이 방배동이었던 난, 어느 날 퇴근 후, 을지로 입구 롯데백화점 지하상가에 있는 보석상에 들렀다.

그런데 그곳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는 루비반지가 눈에 쏘옥 들어왔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꼭 갖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가격을 물으니 4,500만 원이란다.

루비세트도 아니고, 반지 하나의 가격이 450만 원도 아닌 4,500만 원 이라니...

4,500만 원이면 내가 신혼살림을 시작할 17평짜리 아파트값이다.

난 놀라는 표정도 짓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아 네~ 신랑이랑 같이 들릴게요”라고 하고 보석상을 빠져나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비둘기 핏빛’의 루비는 다이아몬드보다 더 비싸단다.

그 반지가 ‘비둘기 핏빛’의 루비 반지였던 것이다.

남편과 나는 넉넉한 집안의 자식도 아니고, 직장 생활로 겨우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검소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아니 직장생활로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경제적인 보탬을 드리는 상황이다.

그러니 이 루비 반지는 우리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그냥 먼 나라 이야기하듯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나이가 50을 넘으니 갱년기가 찾아왔다.

훅 하고 올라오는 열기로 부채를 들고 다녀야 하고, 면역력이 떨어져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기고, 손목터널증후군, 고관절 통증, 허리와 목 디스크...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아프다 보니 우울증까지 와서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다.


남편이 어느 날 루비 보석함 10개를 내밀었다.

보석함 하나에 루비알이 300개쯤 들어 있으니 모두 합치면 루비알은 3,000개다.

결혼식에 받지 못했던, 아니 엄두도 못 냈던 4,500만 원짜리 루비반지를 이 갱년기에 3,000개의 루비알로 내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

보석함에 알알이 꽉 찬 영롱하게 빛나는 붉은빛.

이 3,000개의 루비알을 건네준 남편의 마음을 그 무엇에 견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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