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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눈이부시게
Jul 02. 2024
그림자
너를 사랑해
철쭉을 베개 삼아 벌러덩 들풀에 누워 하늘 멍을 한다
산책을 가려고 운동화를 신는데 발이 잘 들어가질 않는다.
너는 기어코 내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고 나를 따라나선다.
내가 모자를 쓰면 너도 같은 모자를 쓰고, 가방을 들면 너도 같은 가방을 들고,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을 때도 원피스를
입을 때도, 역시 같은 옷을 입는다.
그
런데 넌 한 가지 색만 좋아한다.
내 모든 것을 따라 하면서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날마다 같은
색만 고집한다.
설마, 머리도 안 감고 세수도 안 하고
옷도 안 빨아 입는 건 아니겠지!
따스한 햇살을 너무도 좋아하는
너는 해바라기와 참 많이 닮았다.
해가 내 왼쪽에 있을 땐 오른쪽에서,
해가 내 오른쪽에 있을 땐 왼쪽에서
,
해가 내 머리 꼭대기에 있을 때는
내 정수리 위에 올라앉아 따스한 햇살을 즐긴다.
신발에 달라붙은 껌딱지처럼 딱 달라붙어 해를 바라보며
내 주위를 빙그르르 도는 모습이 꼭 혼자 강강술래 하는
듯하다
.
‘
나처럼
해 봐라 요렇게’ 게임을 하자고 하지도 않았는데
따라쟁이를 하며
내 키를 크게 했다 작게 했다 장난꾸러기
짓을 한다.
엘리베이터도 같이 타고, 길도 함께 걷고, 횡단보도도 같이
건너고, 문화센터도, 도서관도, 산책도 늘
함께 간
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을 나갈
때면
넌
더
신나 한다.
싱그런
초록 풀
과 꽃들이 예쁘다며
그
위에
누웠다 가겠다고 떼를 쓴다.
"내가 졌다. 졌어!"
누우니 하늘이 멋지다며 넌 이제 하늘 멍까지 한다.
엄마에게 떼쓰며 아무 데나 벌러덩 누워버린
꼬마
같은
너의 용기가
사실은
부럽기만
하다
.
유치원 다녀온 딸아이가 엄마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재잘대듯이 내가 가는 곳은 어디든 졸졸졸
따라다니는
너
.
운전하려고 자동차 문을 열면 차 문이 닫힐세라 얼른
올라타고, 버스를 탈 때도 자기를 놓고 가기라도 할까 봐
냉큼 올라탄다.
저녁밥을 먹고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도서관을 향한다.
'
어라~ 또 따라
오네
!'
그렇다.
넌 햇살을 좋아한 게 아니라 밝은 빛을 좋아했던
거였다.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흐린 날은 숨바꼭질을 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가로등도 없는 어둡고 캄캄한 곳에선 널
찾을 수가 없다.
내가 잠자리에 누울 때도 숨바꼭질을 한다.
어휴~ 그렇게
따라
다니더니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찾았다! 여기 있었구나! 내 마음속에.
내 마음속에
쏘옥
들어와 36.5도의 온기를 즐기는
넌 나이고, 난 너이고.
햇볕 좋은 날 베란다에 솜이불 말리듯, 햇살 좋은 날
길을 따라나선 너는
마음집
에서
쏘옥
빠져나와 눅눅하고
축축해진
마음
를
뽀송뽀송 말리며 함께 걷고, 어두운 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는 함께 있으니 걱정 말라며 함께
걸어주는 나의 소중한 친구.
아무렇지도 않은 척 겉모습에 가면을 쓰고 있는 나의 감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넌
'
쉿! 비밀’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한 가지 색의 형체만
그리는 속 깊은 친구.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지겹도록 따라다닌 너는,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웃어도 울어도 마음 아파해도
무표정으로 아무런
반응이
없다.
어느 날 답답해서 네게 말을 건넸다.
‘
무슨 말 좀 해봐!’ 그래도 속 깊은 친구는 묵묵부답이다.
난 알고 있다.
햇볕보다 밤거리의 불빛보다 네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행복해하면 넌 나보다 더 행복해하고, 내가 마음 아파할
때 날 꼭 끌어 앉고 보듬고 있다는 걸.
내가 죽는 그날까지
따라
다니며
날 지켜 줄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
그래서 난 외롭지 않다.
함께 있어 줘서 고마워.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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