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이부시게 Jul 02. 2024

그림자

너를 사랑해

철쭉을 베개 삼아 벌러덩 들풀에 누워 하늘 멍을 한다

산책을 가려고 운동화를  신는데 발이 잘 들어가질 않는다.

너는 기어코 내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고 나를 따라나선다.

내가 모자를 쓰면 너도 같은 모자를 쓰고, 가방을 들면 너도 같은 가방을 들고,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을 때도 원피스를 입을 때도, 역시 같은 옷을 입는다. 

런데 넌 한 가지 색만 좋아한다.

내 모든 것을 따라 하면서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날마다 같은 색만 고집한다. 설마, 머리도 안 감고 세수도 안 하고

옷도 안 빨아 입는 건 아니겠지!


따스한 햇살을 너무도 좋아하는

너는 해바라기와 참 많이 닮았다.

해가 내 왼쪽에 있을 땐 오른쪽에서,

해가 내 오른쪽에 있을 땐 왼쪽에서,

해가 내 머리 꼭대기에 있을 때는

내 정수리 위에 올라앉아 따스한 햇살을 즐긴다.

신발에 달라붙은 껌딱지처럼 딱 달라붙어 해를 바라보며

내 주위를 빙그르르 도는 모습이 꼭 혼자 강강술래 하는 듯하다.

나처럼 해 봐라 요렇게’ 게임을 하자고 하지도 않았는데 따라쟁이를 하며 내 키를 크게 했다 작게 했다 장난꾸러기 짓을 한다.


엘리베이터도 같이 타고, 길도 함께 걷고, 횡단보도도 같이 건너고, 문화센터도, 도서관도, 산책도 늘 함께 간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을 나갈 때면  더 신나 한다. 

싱그런 초록 풀과 꽃들이 예쁘다며  위에 누웠다 가겠다고 떼를 쓴다.

"내가 졌다. 졌어!"

누우니 하늘이 멋지다며 넌 이제 하늘 멍까지 한다.

엄마에게 떼쓰며 아무 데나 벌러덩 누워버린 꼬마 같은 너의 용기가 사실은 부럽기만 하다.


유치원 다녀온 딸아이가 엄마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재잘대듯이 내가 가는 곳은 어디든 졸졸졸 따라다니는 .

운전하려고 자동차 문을 열면 차 문이 닫힐세라 얼른 올라타고, 버스를 탈 때도 자기를 놓고 가기라도 할까 봐 냉큼 올라탄다.

저녁밥을 먹고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도서관을 향한다.

'어라~ 또 따라 오네!'

그렇다.

넌 햇살을 좋아한 게 아니라 밝은 빛을 좋아했던 거였다.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흐린 날은 숨바꼭질을 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가로등도 없는 어둡고 캄캄한 곳에선 널 찾을 수가 없다. 내가 잠자리에 누울 때도 숨바꼭질을 한다.

어휴~ 그렇게 따라다니더니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찾았다! 여기 있었구나! 내 마음속에.

내 마음속에 쏘옥 들어와 36.5도의 온기를 즐기는

넌 나이고, 난 너이고.


햇볕 좋은 날 베란다에 솜이불 말리듯, 햇살 좋은 날

길을 따라나선 너는 마음집에서 쏘옥 빠져나와 눅눅하고 축축해진 마음 뽀송뽀송 말리며 함께 걷고, 어두운 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는 함께 있으니 걱정 말라며 함께 걸어주는 나의 소중한 친구.

아무렇지도 않은 척 겉모습에 가면을 쓰고 있는 나의 감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넌  '쉿! 비밀’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한 가지 색의 형체만 그리는 속 깊은 친구.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지겹도록 따라다닌 너는,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웃어도 울어도 마음 아파해도 무표정으로 아무런 반응이 없다.

어느 날 답답해서 네게 말을 건넸다.

무슨 말 좀 해봐!’ 그래도 속 깊은 친구는 묵묵부답이다.


난 알고 있다.

햇볕보다 밤거리의 불빛보다 네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행복해하면 넌 나보다 더 행복해하고, 내가 마음 아파할 때 날 꼭 끌어 앉고 보듬고 있다는 걸.

내가 죽는 그날까지 따라다니며 날 지켜 줄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난 외롭지 않다.

함께 있어 줘서 고마워. 사랑해!

작가의 이전글 루비 보석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