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황금용'에 사는 투명한 존재들의 절규

쉼멜페니히 희곡, 대한민국 '안산'으로 재탄생하다.

by 은밀한 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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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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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다양한 노동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사회 안에서 공존하고 있고, 그들의 문화와 사회는 대한민국 안에서 고유한 개성으로 우리 일상 속에 녹아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안에 수많은 외국인들과 우리가 생각하는 공통된 심리적, 사회적 거리는 가깝지 않은, 먼 거리감을 지니고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이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타인에게서, '이가 아파요!'라는 고통의 외침이 들려올 때, 우리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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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대한민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이방인들의 어두운 현실을 다룬 작품, 연극 <안산, 황금용>입니다. 이 작품은 독일의 저명한 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의 희곡 '황금용'을 바탕으로, 한국의 다문화 도시 안산을 배경으로 각색되어 우리 시대의 질문을 던집니다.



안산 '황금용' 식당, 끝나지 않는 이방인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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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산, 황금용>의 무대는 안산에 자리한 작은 베트남 식당 '황금용'입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다섯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 최근 일하기 시작한 소년이 썩어가는 치아의 극심한 통증을 호소합니다. 불법 체류자의 신분인 소년에게 치과는 너무 먼 이야기. 소년의 고통과 상관없이 분주한 주문 속에서 식당 손님들, 그리고 황금용 안의 다른 인물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뒤엉키면서 연극은 시작됩니다. '치통'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통은 글로벌 자본주의 속에서 개인이 겪는 비가시적인 구조적 폭력과 윤리의 부재를 상징하는 강력한 은유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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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어터쿰에서 창작집단 상상두목이 선보인 이 작품은, 다양한 소품과 무대 디자인, 조명 활용으로 극의 공간 전환과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 소극장 극장의 장점을 영리하게 활용했습니다. 노련하고 경험 많은 배우들은 원작의 빠르고 발음하기 어려운 방대한 텍스트양을 준수한 연기로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현실의 고통과 비현실적인 상황을 오가는 극의 독특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만들어냅니다.



브레히트적 소격 효과: 왜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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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산, 황금용>은 '연극은 무엇을 재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강력한 동시대적 응답을 제시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사실주의 연극의 틀을 과감히 거부한 연극적 장치들입니다. 배우들은 쉼 없이 여러 역할을 넘나들며 다역 연기를 선보이고, 극의 서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병렬적으로 나열됩니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에게 감정적으로 동일시하기보다는, 극의 상황과 구조를 이성적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브레히트적 소격 효과'를 극대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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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객석에서 '누가 불쌍한가'라는 감정적 질문에 갇히기보다, '왜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가'라는 거시적인 질문에 사색하게 됩니다. 기존 연극에서 많이 사용하는 선형적 플롯을 거부하고, 서로 다른 사건과 공간을 몽타주처럼 병렬 배치함으로써, 연극은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의 단면을 해체적으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비가시적 노동과 구조적 무관심이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인간을 소모품으로 만드는지를 목도하게 합니다.



악의 평범성: 윤리의 부재와 책임의 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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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산, 황금용>은 이주노동자의 비극을 넘어, 글로벌 자본주의의 구조적 폭력과 그 속에서 개인의 윤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작품을 통해 제가 느낀 것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었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은 그 누구도 극악무도한 악당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요리사는 그저 요리를 하고, 연인은 자신의 일상을 살며, 관리자는 정해진 규칙을 따를 뿐입니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시스템 안에서 기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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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로 그 '정상성' 속에서 소년의 고통은 끝없이 외면당하고, 비극은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됩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윤리의 부재와 책임의 분산을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질문하는 연극적 장치입니다. 작품은 이야기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통해 '이야기를 왜, 어떻게 부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며, 투명 인간처럼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연극 언어의 혁신, 그리고 우리 시대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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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산, 황금용>은 단순히 이주노동자의 비극을 다룬 연극이 아닙니다. 형식적으로는 연극 언어의 혁신을 보여주고, 내용적으로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구조적 폭력을 해체하며, 윤리적으로는 관객 자신의 책임에 대해 묻는 총체적인 예술 경험입니다. 이를 보여주고자 많은 노력이 가미되었지만, 완전한 무대로서 관객들을 완벽히 설득시키기에는 작품 자체가 가진 철학적, 형식적 난이도가 상당했음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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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작품은 침묵된 현실에 대한 강력한 예술적 외침입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타자들에 대한 무관심, 보이지 않는 구조적 폭력에 대해 질문하며 '누가, 왜 아파하는가'를 냉철하게 사색하게 합니다. 소외된 존재들의 '이가 아파요!'라는 절규가 단순한 물리적 고통을 넘어 우리 사회의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경종으로 다가오는 작품, 연극 <안산, 황금용>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 작품은 우리 시대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줄 것입니다.



[작성자 정보]: 은밀한 수집가, 丁火 丁海緣 드림

[질문]: 연극 <안산, 황금용>을 보면서 당신의 마음에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이가 아픈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혹은 우리가 '타자의 고통'에 대해 마주해야 할 책임은 어디까지일까요? 댓글로 함께 이야기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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