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육자의 일기
한국 교육에서 '공부 잘한다'는 말은 곧 '정답을 잘 맞힌다'는 뜻이었다.
객관식 시험, 정답이 하나뿐인 문제, 외운 만큼 보상받는 시스템. 이는 산업화 시대에는 꽤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다. 정답보다 중요한 것이 생겼다. 질문하고, 비판하고, 의심하는 능력. 즉 '문제를 정의하는 힘'이 필요한 시대다.
AI가 지식을 압도적으로 더 잘 알고, 검색하면 모든 정보가 나오는 시대에, 우리는 왜 여전히 정답을 요구하는가? 그건 시스템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 공무원 시험, 자격증. 한국 사회의 주요 진입 관문이 여전히 정답 중심 구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잃는 것이 크다. 아이들은 질문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점수'로 보상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의 폐해는 현실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 A군은 수학 성적이 전교 1등이고 수많은 경시대회 수상 경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해보자고 했을 때, 그는 “주제가 뭐죠?”, “결론은 뭔가요?”라고 되물었다. 자신의 생각을 출발점으로 설정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그는 프로젝트의 방향을 정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고, 매번 '정답이 있는지'를 먼저 물었다.
반면, 또래의 B양은 성적이 평균 수준이지만 평소 일상에서의 ‘왜?’를 자주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녀는 커피 찌꺼기가 배수구를 막는 현상을 보고, 이를 필터로 재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학문적 깊이는 얕았지만, 명확한 문제의식과 주체성이 돋보였다. 그 결과 그녀는 인터뷰에서 교수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우수 참가자로 선정되었다.
리서치 교육은 이러한 교육 구조에 던지는 반문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탐색해 보고, 때로는 실패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정답보다 훨씬 더 깊고, 복잡하고, 본질적이다. 질문이 생기지 않으면 탐구는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가르쳐야 한다.
공부란 무엇인가? 단순히 많은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를 갖추는 것이다. 그 도구는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지금의 교육 시스템이 정답 중심에서 질문 중심으로 옮겨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