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식의 변화: 직렬에서 병렬로, CPU에서 GPU로

어느 연구자의 일기

by 김박사의 생각들

지식의 변화

우리는 지금 지식의 구조가 바뀌는 거대한 전환점 위에 서 있다. 마치 컴퓨터의 연산 방식이 CPU에서 GPU로 진화했듯이, 지식의 축적과 생성 방식 또한 '직렬적 사고'에서 '병렬적 탐색'으로 이동하고 있다.


직렬식 지식의 시대

지금까지의 지식은 마치 CPU처럼 직렬적으로 쌓여왔다. 연구자는 기존의 연구를 하나씩 따라가며, 이전 세대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논문은 정해진 포맷에 따라 수직적으로 구조화되고, 특정 분야의 권위자들이 지식의 흐름을 통제했다.

이 방식은 분명 탄탄하고 안정적이었다. 수백 년 동안 학문은 이렇게 축적되어 왔고, 인류는 그 결과로 현대 문명을 일구어냈다. 그러나 이 구조는 느리다. 지식을 확장하고 연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도, 답을 낼 수 있는 사람도 제한적이었다.


병렬식 지식의 도래

그러나 지금, 우리는 GPU적 사고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GPU는 수많은 코어를 동시에 작동시켜 복잡한 연산을 병렬로 처리한다. 이는 AI나 빅데이터 시대에 최적화된 방식이다. 마찬가지로 지식도 병렬적으로 탐색되고 생성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인간 게놈 프로젝트였다. 과거라면 염기서열을 하나하나 해독해나갔겠지만,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샷건 방식(Shotgun Sequencing)을 도입했다. 전체 유전체를 쪼개 병렬로 처리하고, 그 조각들을 정렬해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이 접근은 마치 GPU의 사고방식과도 같았다. 동시에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동시에 실험하고, 동시에 해석해가는 방식.

이후 AI가 등장하면서 이 흐름은 더욱 가속화된다. 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은 단순히 직렬로 축적된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방대한 지식 네트워크를 병렬적으로 연결하고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한다. 누가 더 많은 시도를 하고, 누가 더 효율적인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이는 곧 지식 생산 방식 자체가 민주화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skbuZU%3D


왜 지금 병렬화가 가능한가?

이 변화는 단순히 철학적 담론이 아니다. 기술적 배경, 특히 하드웨어의 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거에는 병렬적으로 지식을 처리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했다. 데이터 저장 용량, 처리 속도, 네트워크 인프라가 병렬처리를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엄청난 데이터 처리 능력과 AI 연산 능력을 가진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지식의 병렬화'가 오히려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직렬적으로 축적된 지식들이 충분히 방대해졌고, 이들 간의 연결만으로도 새로운 통찰을 낳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우주의 구조와 닮은 지식의 구조

이 지식의 병렬화는 우주의 구조와도 유사하다. 초기 우주는 별 하나하나가 존재하는 '직렬적 구조'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별들이 모여 은하를 만들고, 은하가 모여 은하단을 이루며, 마지막으로는 필라멘트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는 마치 병렬단의 집합과도 같다.

이제 우리는 지식의 ‘필라멘트’를 만들기 시작한 시점에 와 있다. 다양한 병렬적 지식들이 교차하고 연결되며 새로운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병렬단을 다시 직렬처럼 정렬해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는, ‘2차 지식 혁명’이 도래할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정보 축적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의미와 통찰의 생성이다.


5XQxjza5-RRDHEfQch06hMBLbZBrvGPcdN6GIZAFjeW0Q6bUnGGkBcjmCO9q74oGPaW0k-1ZLBKG943pFutQjA.jpg


지식의 민주화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지식의 민주화다. 과거에는 몇몇 엘리트에게만 허락되었던 지식 생산이 이제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누구나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누구나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GPT와 같은 도구들은 지식 생산의 장벽을 낮추고, 다양한 사람들이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제 지식은 계급이 아니다. 속도다. 시도다. 연결이다.


결론

지금 우리는 지식의 구조가 CPU에서 GPU로, 직렬에서 병렬로 변화하는 거대한 문명 전환기에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순히 더 많은 정보를 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고의 방식, 문제 해결의 방식, 그리고 인류가 지혜를 만들어가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얼마나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얼마나 많은 시도를 해볼 준비가 되어 있는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모든 아이는 한 번쯤 학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