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육자의 일기
국제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많은 이들이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봉사활동, 인턴십, 각종 대회 수상 경력, 심지어 특허 출원까지—이 모든 활동이 대학 입시를 위한 ‘스펙’이라는 이름 아래 줄 세워진다. 물론 이력서에 한 줄 더 추가되는 경험이 학생에게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교육자로서 수년간 학생들의 성장 곡선을 지켜보며, 진정한 변화와 성장은 스펙이 아닌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스펙에 집착하는 학생들은 대개 ‘해야 하니까’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한다. 이들은 결과만을 중시하고, 과정에서의 실패나 좌절을 두려워한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은 특허 출원 경험을 쌓기 위해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아이디어가 예상만큼 발전하지 않자 곧 흥미를 잃고 팀에서 멀어졌다. 결과 중심의 사고가 오히려 도전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실패를 회피하는 태도로 이어진 것이다.
반면, 스스로 동기를 찾는 학생들은 ‘왜 이 활동을 하는가’에 대한 자기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한 학생은 영어 글쓰기 대회에서 수상하지 못했지만, 이후 자신의 부족함을 분석하고, 다음 해에는 스스로 멘토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며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순히 수상 경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주도성, 문제 해결력, 그리고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하는 힘 (레질리언스) 을 키웠다.
국제학교라는 환경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협업과 소통의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전적으로 학생의 태도에 달려 있다. 협업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 누군가는 갈등을 회피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학생은 단단해지고, 진짜 글로벌 인재로 성장한다.
실패 경험 역시 성장의 필수 조건이다. 국제학교에서 실패는 ‘낙오’가 아니라 ‘재도전의 기회’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실제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학생일수록 장기적으로 더 큰 성취를 이룬다. 이들은 대학 입시뿐 아니라, 이후 사회에 나가서도 자기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된다.
나는 학생들에게 ‘스펙’이라는 단어 대신 ‘성장’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떠올리길 바란다. 대학 입시라는 단기 목표에만 집착하지 않고, 자신만의 동기와 목표를 찾는 과정에서 진짜 배움이 시작된다. 교육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협업과 자기주도성의 가치를 깨닫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펙이 아닌 태도가 그들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일이다.
국제학교에서 진짜 배워야 할 것은, 결국 ‘나만의 성장 곡선’을 그려가는 힘이다. 그 곡선의 진폭이 크든 작든, 자기 자신을 믿고 도전하는 학생이 결국 더 멀리, 더 깊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오늘도 현장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