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육자의 일기
많은 부모님과 학생들은 입시를 준비하면서 ‘스펙’을 쌓는 것이 곧 경쟁력이라고 믿는다. 공모전 수상, 봉사활동 인증서, 논문 참여 이력.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대학들은 이런 ‘스펙 리스트’에 피로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스펙은 숫자와 결과를 보여주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이 진정으로 궁금해하는 것은 ‘이 학생이 왜 이런 활동을 했는가?’이다. 즉, 결과보다 과정, 과정보다 동기와 문제의식에 관심이 있다. 내가 여러 지원자들을 지도하면서 가장 큰 차이를 느꼈던 것은, 같은 활동이라도 그 활동을 바라보는 시선과 질문의 깊이가 완전히 달랐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은 봉사활동을 단순히 시간 채우기로만 여긴다. “스펙 관리에 필요해서 참여했어요.” 하지만 또 다른 학생은 같은 활동을 하면서도 “왜 이 지역은 청소년 복지 서비스가 이렇게 부족할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그리고 이 질문을 더 깊이 탐구하기 위해 직접 사례를 조사하고, 정책 보고서를 찾아 읽었다. 이 둘의 활동은 겉으로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대학에서의 평가와 울림은 전혀 다르다. 전자가 ‘경력’이라면, 후자는 ‘서사’다.
활동 중심 포트폴리오에는 공백이 많다. 활동의 시작과 끝, 수치와 결과만 적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러티브 중심 포트폴리오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나는 무엇에 문제를 느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가?”, “과정에서 어떤 시행착오와 성장이 있었는가?” 이 질문의 답변이야말로 진짜 스토리다.
대학은 점점 더 이 내러티브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고등학교에서 진정한 지적 호기심을 발휘해본 학생이 대학에 와서도 더 깊은 연구와 탐구를 해내기 때문이다. 입학 사정관들은 활동 리스트를 볼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한다.
질문 리스트
1. 이 활동은 본인이 기획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시켜서 한 것인가?
2. 실패하거나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3. 이 경험이 본인의 가치관이나 진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4. 다음 단계에서 이 학생은 어떻게 성장하려 하는가?
이 질문에 진정성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은 단 한 번의 프로젝트라도 좋으니, 본인이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도전한 경험에서 나온다. 부모와 컨설턴트가 만들어준 ‘완성된’ 경력으로는 이런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할 수 없다.
내러티브 중심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려면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포트폴리오 준비 원칙
1. 활동이 아니라 질문에서 출발하기. “어떤 질문 때문에 이 활동을 시작했는가?”
2. 과정과 실패를 숨기지 않기.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도, 그 경험이 준 깨달음을 솔직히 적기.
3. 성장의 변곡점을 기록하기. “그때 어떤 생각이 바뀌었는가?”
4. 연결고리를 만들기. 여러 활동이 단절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도록 하기.
결국, 대학이 알고 싶은 것은 ‘당신은 누구인가?’이다. 활동 중심의 표면적인 이력이 아니라, 왜 그런 길을 선택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담은 서사다. 내러티브는 포장할 수 없다. 경험한 것만이 진짜 이야기를 만든다.
스펙은 숫자에 불과하지만, 서사는 사람을 증명한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무엇을 했는지 말하기 전에, 왜 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 질문이야말로 진짜 입시 준비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