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값 좀 하세요!

얼마면 되니?

by RECO

SBS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기억에 남는 사건이 다. 범죄자는 70대 노인으로 평생을 바다에서 보내온 어부이다. 그는 바다가 보이는 동네에 놀러 온 20대 청춘 남녀의 목숨을 앗아갔다. 노인은 20대 여자의 유방을 만지고 싶다는 욕망으로 배를 태워주겠다고 유인했고 공짜로 바다에 나갈 생각에 들뜬 청춘남녀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해당했다. 남자는 여자를 지키려 저항했으나 어부의 옥타곤이였던 바다에서 남자는 맥없이 제압되었다.

키 작고 왜소해 보이는 늙은 노인. 그것이 우리가 그를 정의하는 한줄평이다. 나이 먹고 손녀뻘한테 무슨 짓이냐는 아마 당신의 한줄평일 것이다. 정말 그럴까? 그에게도 그는 키 작고 왜소한 늙은 노인일까? 노인과 어부라는 수동적 정의에 매몰되어 살아갈 뿐 그의 내면은 그가 바다에서 잡아 올린 활어와 같을 것이다. 성추행을 목적으로 한 살인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지만 노인이라는 점이 윤리적 측면으로 가중되어 비난받는다면 그건 논해볼 여지가 있다.


"헤어진 연인 찾아가 칼부림..."

헤드라인만 보고 철없는 20대의 그릇된 행동쯤으로 치부하며 클릭했다가, "ㅇㅇ동에 사는 60대 K 모 씨는... "로 시작된 기사를 마주할 때가 있다. 사랑이 청춘들의 전유물이 아니지만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나이 먹고는 안 할 텐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최근에 읽은 책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착각을 해요. 노인들이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별거 없어요. 나는 그냥 쉽게 늙었어요"

어떤가. 소금에 절여져 쭈글쭈글한 오이지로 가득한 유리병이 바닥에 깨부서지는것 같지 않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은 오이지가 아니라 늙은 고정관념이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에는 70대분들이 몇 분 계신데 그중 한 분(여)은 자신의 수영폼이 어떤지 자주 물어보신다.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르듯이 건조한 답변만 반복하던 어느 날 마음먹고 립서비스를 한 적이 있다. "몸의 선이 예뻐서(실제로 몸매가 이쁘심) 수영하시는 동작이 발레 하시는 것같이 우아해요" 그분은 밝게 웃으시며 무용하는 것 같아? 선이 예뻐? 재차 물으셨고 급기야 내 볼에 뽀뽀를 하시는 게 아닌가. 뽀뽀받은 볼을 만지며 물속으로 매끄럽게 사라지는 그분의 뒷모습을 봤다. 춤추는 고래의 모습이었다.


나와 같은 동에 사시는 어떤 분과의 에피소드를 마지막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그분은 80이 가까이 되는 연세(나이)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결혼을 한 번도 안 하셨단다. 언젠가 한번 엘리베이터에서 핸드폰의 사용을 도와드린 적이 있는데 답례로 감자를 주셨고 그 인연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연락을 하신다. 그날도 온라인 주문을 도와드리고 내어주신 커피를 마셨다.

"어르신, 언제라도 도움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그분은 쌜쭉한 표정으로 "어르신이라고 하지 마. 언니라고 불러" 하시는 거다. 솔직히 당황했지만 그 후로 난 그분을 언니라고 부른다. 아저씨보다는 오빠가 낫고 아줌마보단 아가씨가 좋은 건 인지상정이다. 아줌마!라는 말이 비속어의 뉘앙스를 풍기는 것처럼 어르신이라는 말은 결혼을 안 한 그분이 듣기엔 다소 거북했을 수도 있고 나이를 먹었다고 어르신으로 불리는것보단 언니라고 불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아니면 필자와의 나이차이가 크지않다고 느끼셨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가지는 담론. "나이 먹고 뭐 하는 짓이냐" "나잇값 좀 해라" 라는 말은 상대방의 행동을 제한한다.

사람마음은 다 똑같다. 마음만은 청춘이라고 하지 않나.

나이로 인한 외모변화는 그저 삶이란 언젠가는 끝이난 다는 표식일 뿐이거나 속세로의 미련을 조금씩 내려놓으라는 충고일 뿐 사람의 마음은 엽록소가 가득한 잎처럼 푸르다.


내로남불식 사고의 가능성도 있다. 자신은 팔팔하고 까딱없다며 당연시하고 상대를 대하는 기준은 까다로워서 나이라는 무기로 내리치곤 한다.

90세의 노모가 신발 타령을 해서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무슨 신발이냐 했는데 그 딸이 그 나이가 가까이 되어보니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똑같아서 돌아가신 어머님께 죄송했다는 사연을 라디오에서 들은 적도 있다.

나이가 있는데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고 우리는 쉽게 말하지만 그 말을 하는 자와 듣는 자의 내면에는 머리가 시커먼 청년이 앉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문득 엉뚱한 상상을 한다. 만약 나이는 먹되 외형이 그대로 라면 어떨까? 나이는 들어가지만 외형의 변화는 30대 초반에서 멈춰진다면?

외형의 변화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 갇혀 원하는 것을 자제해 왔던 이들에게 해방구가 될까. 아니면 사회는 이전에는 없던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될까.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밥을 듯이 나이가 먹었다고 갈증과 허기가 참아지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도 정체성의 형태는 바꾸진 않는다.몸과 마음의 시차만 존재할뿐이다.벤자민의 시계는 거꾸로 흐른다가 아니라 시간은 흘렸으나 벤자민은 그대로다가 더 실득력이 있다. 나이를 먹어도 콤플렉스도 그대로고 자존심도 그대로다. 내면과의 갈등도 그대로고 자아실현의 마음도 그대로다. 20년이 넘은 빛바랜 우리집 냉장고는 보기엔 누래도 여전히 작동중이다. 어쩌면 좋은 조건일수도 있다. 나이듬에 따라 마음마저 주름이 생긴다면 더 억울하지 않을까? [변하지 않는 내면]이라는 이 매카니즘을 잘 이용하자. 나이는 숫자이고 마음이 진짜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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