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세상

보고싶다

by RECO

바람이 보드랍다.

저 멀리, 더 멀리 해를 통과해서 온 것처럼.

이제 막 귀 뒤로 넘긴 머리카락을 풀어헤치며

귓바퀴를 돌아 얼굴을 쓸어내린다.

햇볕에 둔 내 두발.


죽은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까마귀가 온다.

눈의 혈관이 뜨거워진다. 눈썹 털이 적셔 온다.

입매는 일그러지고 물이 뚝뚝 떨어진다.


조용히 있고 싶다. 혼자가 되고 싶다.

가라앉고 싶다. 다시 돌어가고 싶다.

눈을 뜰 수 없었던 진공상태로.

그 자궁 속으로 돌아가 웅크리고 싶다.


내 그리운 사람.

난 울지 못했다. 오른손을 턱에 괴고 잠든 모습.

난 그저 서 있었다.

연분홍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걸어온 봄날에

햇살을 이불 삼아 잠든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부재는 숨이 막히다.

슬픔이 깊어 파낼 수가 없다. 들여다볼 수 없다.

꾹꾹 발로 밣는다. 망치로 못을 박는다.


TV를 보고 싶다.

시골 아낙네들이 웃으며 쑥을 캐는 들판.

옛 시절 얘기가 정겹다.


밥을 먹고 싶다.

무를 넣고 칼칼하게 지진 갈치조림.

참기름을 넣고 쓱쓱 밥을 비빈다.


걷고 싶다.

트럭 뒷칸에 산 처럼 쌓인 무지갯빛 과일들.

참외 열개를 사서 뒤짐을 진다.


관을 껴안아본 사람은 안다.

차가운 발을 붙잡고 몸부림을 쳐본 사람은 안다.

쇳소리가 나도록 목놓아 본 사람은 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세상 안에 세상이 있다.

난 큰 세상을 말했고 당신은 작은 세상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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