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창의로 빛을 낸다.

보이지않는 형체

by RECO

밤하늘의 별들을 봅니다. 같은 빛을 내는 것 같아도 저마다의 빛을 내고 있는 별들. 사람도 자신만의 빛을 내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각자만의 삶과 경험 속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며 세계관을 만들어갑니다. 때로는 고통이 붓을 들어 그 사람의 가슴을 휘젓고, 때로는 결핍이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도 합니다. 멋대로 휘어져버린 굴곡진 삶의 기록들은 그 사람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그 사람에게서 새어 나오는 빛은 예술이 됩니다. [절규]로 유명한 작가 뭉크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을 접하게 되고 그의 작품은 어두운 몸부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죽음의 기억을 그린 뭉크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대중의 내면에 추상의 모습으로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불의의 사고로 신체적 고통 속에 살았던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며 자화상을 그렸고 강렬한 색으로 거칠게 붓칠 하며 고통과 아픔을 잊었습니다. 고통마저도 승화시키는 그녀의 반전은 삶의 아픔이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었습니다. 봉준호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틴 스콜세지가 했던 말을 수상소감에 넣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이 말은 예술의 창의성이 한 사람의 삶에서 시작됨을 증명합니다. 뭉크와 칼로의 삶처럼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삶에서 관통된 감정들입니다.


피카소는 앙리 마티스의 작품에서 힌트를 얻어 세기의 걸작 [아비뇽의 처녀들]을 탄생시킵니다. 마티스는 스승 세잔으로부터 영감을 얻습니다. 세잔은 빛의 변화를 강조한 인상주의 화풍을 따르기보다는 본질에 가까이 가려는 장의성의 시니피에를 만들었습니다. 자신만의 우물을 파서 본 것이지요. 그런 세잔을 존경한 마티스는 보이는 색이 아닌 내면에서 느낀 색을 표현했습니다. [모자를 쓴 여인]의 얼굴을 파란색으로 표현한 그의 용기는 아방가르드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피카소는 마티스의 작품을 모방해 한발 더 나아가 미에 대한 기준을 파괴하고 인체를 분해하여 표현하기에 이릅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군요. 모방에서 과감하게 방향을 틀어 자신에게 유턴했던 이 창의성의 본질은 용기입니다.


[아웃라이어]로 유명한 말콤 글래드웰은 21세기 가장 창의적인 인물인 스티브 잡스를 두고

"그의 천재성은 편집 능력에 있다"라고 주장했지만 잡스의 대담한 상상력은 인정할 만합니다.

그는 대학시절 친구와 교정을 걷다가 노트를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난 이 만한 크기의 컴퓨터를 만들 거야"

친구는 그게 가능하냐고 비웃었지만 잡스는 웃지 않았습니다. 누가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요? 잡스는 누구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불가능의 영역에 깃발을 꽂고 생각의 영역조차 신대륙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대담한 상상력은 인간의 마음속에 피어나는 욕망이며 창의성의 근간이 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창의의 영역을 지키고 가치를 추앙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저작권'이라는 법의 테두리에 보존하는 또한 모두가 인정할만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이 아닌 영역으로 넘어간다면 어떨까요?

우연한 계기로 [Theatre D'opera Spatial]라는 제목의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AI 가 그린 그림으로 2022년 콜로라도 박람회에서 미술대회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림이 어찌나 훌륭한지 예술계에서도 점차 AI들의 작품에 관대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AI의 예술작품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가요?

고작 기계일 뿐인데 모사 수준의 그림을 예술작품이라고 부를 순 없지! 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고 물론 반대의 의견도 있겠죠.


AI의 메커니즘은 생각보다 정교합니다. 입력된 데이터의 양도 방대하지만 그 데이터를 활용하는 AI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Deep learning기술입니다. 인간의 신경망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이 프로그램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간처럼 사고하고 학습합니다. 입력된 데이터를 활용하기는 하지만 유사성을 걸러내어 기존에 없던 독창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AI에게 있을까요?


AI에게 입력한 방대한 데이터는 뭉크가 느낀 삶이며 프리다 칼로의 과감한 붓터치입니다. 주류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길을 개척한 세잔과 마티스, 피카소의 용기입니다. 스티븐 잡스의 담대한 상상력입니다. 인간의 내면 속에 형태 없이 존재했던 모든 것입니다.

이런 소중한 가치들이 기술을 만나 진보하면서 오리지널리티를 넘어서려 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에 대한 바운더리를 우리에게 되묻고 있습니다.


창의의 본질은 우주의 섭리처럼 모양이 없습니다. 오직 관찰자인 인간의 응시만을 통해 물질로 구현될 수 있습니다. 문명을 불러일으킨 투쟁의 역사에서부터 내려온, 동굴 벽화에 기록된 삶으로부터 이어져온, 전사의 후예로부터 손으로 전해온 강한 도구입니다. 인간의 이런 도구 없이 AI는 예술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AI의 창의일까요? 아니면 적어도 딥러닝을 통한-사유의 과정을 거쳐 만든- AI의 작품 저작권은 지켜주는 게 맞을까요? 그렇다면 AI프로그램을 만든 엔진이어에 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요?


창의성은 인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기술의 저작권과 창의의 저작권은 같지 않습니다. 인간은 더욱 창의에 발을 두어야 합니다. 창의는 더욱더 보호받아야 합니다. 기술은 진보하지만 그 진보를 끄는 것은 창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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