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보 부작용
초등학교 4학년 때 내게는 심각한 비밀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왼쪽 옆구리가 간지럽다는 것이다. 살이 아니라 옆구리 속에서 간지럼을 타는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간질간질.
이 증상이 시작된 것은 안방 벽장 때문인지도 모른다. 벽장은 사계절 이불을 넣어놓은 곳인데 한 뼘 정도 닫히지가 않았다. 밤에 잠을 자면 벽장틈새로 누군가 손짓으로 나를 부르는 듯한 막연한 공포가 있었고 바로 옆에 부모님이 계심에도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뒤척였다. 낮에 벽장 안에 이불만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지만 밤만 되면 공포가 되살아나 날 한숨짓게 했다. 그럴 때마다 옆구리가 간지러웠는데 그 이유는 모르겠다. 참다못한 나는 비밀을 엄마에게 말씀드렸고 옆구리를 살펴보신 엄마는 괜찮다고만 하셨다. 겉이 아니라 속이라고 항변했지만 더는 들어주시지 않았다. 간지럼이 계속 이어지고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많아지자 엄마는 급기야 나를 병원에 데려가셨다.
우리 동네에는 유명한 내과가 있다. 모기성내과.
큰 사거리의 모퉁이에 위치한 이곳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인기가 많은 이유는 의사 선생님 때문인데 웬만한 병은 다 고쳐주실 뿐 아니라 엄청 친절하셨다. 선생님께는 실례가 될 수도 있겠지만 둘리만화에 나오는 마이콜과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계셨다. 날씬한 몸에 하얀 가운을 입은 선생님은 목에 건 청진기로 검진하시면서 어떻게 불편한지 꼼꼼히 물어봐주셨다. 선생님에게는 아빠에게서 나는 화한 스킨냄새도 났다. 언젠가 한 번은 왜 병원이름이 모기성이냐고 물었더니 모기성은 선생님의 이름이라고 했다.
"○○왔니? 어디가 아파서 왔어? 또 감기에 걸렸니?"
파마머리의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물으신다.
"아니요.. 왼쪽 옆구리가 간지러워요" 엄마도 이제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구리가 간지러워? 아픈 게 아니라? 흠.. 어디 보자..,, 여기?"
"네.. 근데 겉이 아니라 속에서 간지러워요 간질간질.."
"그렇구나,,"
심각한 얼굴로 청진기를 옆구리의 여기저기에 대신다.
이마에 열이 있는지 손으로 확인하시고는 무엇인가를 베토벤처럼 막 적으신다.
"약을 지어 줄 테니 먹도록 해. 이 약을 1주일간 먹으면 바로 나을 거야!..○○이. 간지러웠겠다"
간지러웠겠다.... 선생님의 이 말 한마디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은 나의 간지러움.
'선생님은 다 아시는 거아.. 엄마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는데 선생님은 청진기로 내 병을 확인하셨어. 빨리 약 먹고 나아야지!'나는 두 손을 꼭 쥐었다.
1주일 동안 열심히 약을 먹었다. 벽장 속의 공포는 계속되었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간지럼증상이 사라지고 있었다. 신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더 이상 간지럼을 느끼지 못했고 기분이 날아갈 듯 개운했다.
"엄마 나 이제 안가지러워" 슈퍼맨처럼 한쪽 팔을 힘껏 올리고 엄마에게 자랑했다.
"그래? 다행이네.. 역시 선생님이 잘 보시네. 마침 고구마를 쪘으니 따끈할 때 몇 개 갖다 드리자"
곱게 담아주신 고구마를 들고 10분 거리에 있는 모기성내과로 왈츠박자를 타며 신이 나서 갔다.
"선생님! 엄마가 고구마 갖다 드리래요!"
"아이고 맛있겠다. 엄마께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그나저나 이제 옆구리는 괜찮니?"
"네! 약 먹으니까 다 나았어요! 어떻게 고치신 거예요?"
진짜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듯 양손을 턱밑에 대고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동그란 안경을 올리시며 회전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내려다보셨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시며.
" 아... 그거... 하하 그건 말이야. 선생님이 볼 때는 ○○이가 괜찮은데 ○○이는 계속 간지럽다고 했잖아. 어떻게 하면 ○○이를 낫게 해 줄까.. 고심하다가 방법을 찾아냈지. 약을 먹으면 ○○이는 약을 먹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할 거고.. 그래서 선생님이 가짜약을 지어준 거야. ○○이가 먹은 것은 진짜약이 아니라 어린이 비타민이야. 이런 것을 플라시보 효과라고 해~"
"아.... 플라시보...."
나는 찢어진 눈으로 90도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횡단보도에 서서 힐끔 병원을 바라봤는데 왼쪽 옆구리가 다시 간지러웠다. 간질간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