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 너마저

고마워요!

by RECO

유퀴즈에 빌 게이츠가 게스트로 나온 것을 보았다. 빌 게이츠라니. 신기해하는 것도 잠시. 영화보다 더한일이 현실에서 벌어지는데 신기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우리가 추앙하는 어떤 것이 고개를 떨구고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들도 손에 쥐고 싶은 가치들로 변모할 날들이 오게 될 것이다. 그런 세상을 마주할 날은 롤러코스터를 타는것처럼 재밌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고민이 있냐는 유재석의 질문에 빌은 과거 사람을 관리할 때 자신의 실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대하듯 엄격하게 대했다는 것. 지금은 그런 식의 매니지먼트를 하지 않지만 직원들 차번호를 다 외워서 누가 일찍 출근하는지 아닌지 봤다는 것이다. 피식. 나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사실 나에게도 빌과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10년 전 관리자로 인사발령을 받고 캠퍼스를 책임져야 했을 때 나름의 책임감으로 한일은 부끄럽게도 직원들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근태부터 학생들 지도 상담은 잘하고 있는지. 강의실마다 수업이 녹화되고 있었기에 녹화본을 돌려보며 높은 곳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CCTV처럼 눈동자를 굴렸었다. 가끔 헉헉 거리며 조깅을 뛸 때 그때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곤 한다. "leadership'의 L자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만 그런 실수를 하는 줄 알았는데, 유명인사인 빌이 직원들 차번호까지 외워서 동선을 살폈다니 그 친군함에 이모티콘이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면서 "에이~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능청스럽게 TV속 빌을 빤히 쳐다본다. 잘난 사람도 실수를 하는구나..어쩌면 그 시절의 나를 용서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고개를 들었다.


'가녀장의 시대'를 쓴 이슬아작가의 강연을 며칠 전에 다녀왔다. 슬아작가는 자신이 존경하는 작가선생님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작가선생님은 어떤 1루수가 공이 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장면을 보고 공감하며 울었다고 했다. 야구에서 1루수는 공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인데 공이 오는 게 무섭다는 1루수를 보며 자신 없는 원고를 대할 때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슬아작가는 늘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던 작가선생님이 "잘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모습에서 '이 사람도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했다.


나는 빌과 슬아작가의 얘기를 필사노트에 꾹꾹 눌러 적었다. 훗날 잘못된 행동들에 이불킥을 하고 돌아누워 손톱을 뜯을 때, 스스로를 향한 비난의 화살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습격할 때, 금방이라도 내면이 녹아 없어질 것 같을 때 이 이야기들을 열어보자고. 시선이 머무는 곳 어딘가에 두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