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만 모르고 모르지만 안다.
I혼모노를 읽었다. 단편들이 끝날 때마다 다트가 박히듯이 내면이 따끔댄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잘 아는 개념이지만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것. 알지만 모르고 모르지만 아는 것.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다. 학폭을 묵인하는 애들에게
"너희는 왜 동조하는 거야? 나쁘다는 것을 모르는 거야? 알지만 대신당할까 봐 두려워서 못하는 거야?"
직장 내 괴롭힘을 알면서도 눈감는 사람들에게도.
"잘못된 거 알면서 왜 말 안 해요? 괜히 나섰다가 골치 아파지니까 그런 건가요? 먹고살아야 하니까?"
누군가는 확성기를 찾았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눈알을 굴리며 고개 숙인 채 말이 없다. 나는 그들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매일 지옥으로 출근했다. 회사 근처 벤치에 앉아 한참 있다가 들어갔다. 상사는 날 업무에서 배제했다. 없던 부서를 만들어 발령을 내고 직급도 강등했다.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행안부산하 지방세 연구원이 당한 것과 비슷했다. 그런 인간들은 학원을 다니며 배우는 건지.. 시나리오가 똑같다.) 직급을 이용해 망신을 주거나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공개적적으로 말했다. 나 때문에 누군가는 퇴사까지 고민한다며 이간질했다. 하루에도 여러번 트집잡거나 폄하했고 그 짓을 위해 출근하는 것 같았다. 고객이 준 인사고과까지 중간에서 위조했다. 본때를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상사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그렇게 괴로우면 그만두면 될 일인데 나는 지옥 같은 출근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부당함에 고개 숙이고 싶지 않았고 권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그깟 인간에게 지고 싶지 않았고. 다음 달에 갚아야 하는 대출금이 있었고 무엇보다 10년 넘게 다닌 회사에 대한 애정과 직급을 놓고 싶지 않았다.
피가 철철 나게 때려 맞아도 키득거리며 웃는 학폭 가해자와 주변인들. 망신을 당하고 트집을 잡힐 때 모니터만 바라보며 침묵을 지키는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와 주변인들. 그 주변인들의 눈빛이 가해자보다 더 끔찍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목에 방울을 달고 지나가면 그 소리를 피해 수군대던 주변인들은 누군가 죽어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나면 검은 실루엣을 하고 등장한다. 모자이크 처리된 얼굴과 변조된 목소리로 말한다. "사실.. 부당하긴 했어요."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쳐다본다. 저 무표정의 내면에는 겁이 질린 두려움이 있다. 나라고 달랐을까. 갑자기 낯익은 얼굴 하나가 포착된다. 뾰족한 턱. 치렁치렁한 파마머리..수많은 장면들이 플래쉬처럼 터진다. 뜨끈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식도를 타고 내면을 적신다. 그래.. 저렇게 거리를 지나가다 만날 수 있는 흔한 50대 아줌마일 뿐인데.... 유리창 너머 그녀에게 안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