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키스

스무 살

by RECO

수업이 끝나고 식당으로 향했다. 제육볶음을 먹고 나오는 길에 우리 과 2학년인 선배 커플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식사하러 가세요?"

"어 그래.. 벌써 먹고 가는 길이구나"

네~미소로 답하며 스치려는 순간 □선배가 나를 불러 세운다.

"미수야, 대성이가 너 엄청 좋아하던데 알고 있었어?"

"네?? 대성이 가요?"

우리 과 과대 대성이는 큰 키와 잘생긴 얼굴 다정한 성격의 소유자로 여자 동기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선배들을 잘 따르는 그 특유의 귀여운 짓 때문에 2.3학년 선배들의 이쁨도 독차지하고 있는 장본인이기도 다.

"그래. 어제 선배들이랑 술 먹다가 취했는데 네가 너무 좋다고 그러더라. 근데 너만 보면 말이 안 떨어진대.

고백하면 받아줘" 여자선배도 찡긋 웃으며 말을 거든다.

맙소사... 말이 돼? 대박사건이다.

"네... 에.. "

두선배가 던진 수류탄을 손에 쥐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야. 진짜로? 대성이가? 나를?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돌리니... 아뿔싸. 저게 누군가? 대성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으윽.. 어떡해.

" 하이~ 밥 먹으러 가냐?"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대꾸도 없이 나를 슬쩍 보더니 하는 말 "보면 몰라?"

너는 늘 그런 식이였지. 툴툴댔지. 한 번도 다정하게 말해주는 법이 없었지.

"맛있게 먹어라"

그때 대성이가 나를 불렀다.

" 진미수"

오!올 것이 온 건가? 나는 최대한 포카리스웨이트 느낌으로 뒤를 돌아다보았다.

"으.. 음...?"

"너 왜 돈 안내? 2만 원. 생파로 호프집 간거"

으이그. 알았어 준다 줘. 나는 선배가 나를 놀리려고 장난친 거였구나 확신했다. 그제야 왜 내가 곧대로 받아들였을까. 순간 웃음이 났다.


며칠 후 수업을 마치고 전철역으로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선배가 학교 후문에서 담배를 피우며 통화를 하다가 담배와 전화를 동시에 끄면서 아는 척을 했다.

"알바가냐? "

"네. 오늘 날씨가 춥네요. 근데 여기서 뭐 하세요?"

"야. 너 왜 대성이 마음 안 받아주냐?"

네???? 이건 또 뭔 소리인가.

"대성이가 너 엄청 좋아하더구먼. 어제 술 먹고 니 얘기밖에 안 하던데?"

진짜야. 뭐야. 내 가슴은 또다시 혼란스러웠다.

" 저번에도 □□선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긴 한데 정작 대성이는 별말 안 하던데요?"

"걔가 자존심이 세서 그래. 네가 좋아죽겠는데 고백은 못하고 미치겠다고 하더라. 네가 좀 받아줘라"

아니~~도대체 자꾸 뭘 받아주라는 거야. 정작 본인은 고백할 생각도 없는데.


그 후로도 대성이는 나를 소 닭 보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기어이 현장을 잡고 말았다. 과방 열린 문틈 사이로 ○○선배와 대성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니까 왜 고백을 안 하냐고~~ 좋으면 가서 말을 해"

"아.. 진짜 못하겠어요.. 하아 군대도 가야 되고 아버지도 아프시고.. 선배도 알자나요 우리 집 사업 망해서 단칸방 신세된 거.. 괜히... 말했다가.. 아 그냥 나랑은 좀 다른 것 같아. 근데 왜 좋지? ㅎㅎ달라서 좋은 건가? 여하튼 귀여워 죽겠어요. 나보다 나이도 1살 많아요 걔"

치사한 놈. 나이 많은 게 뭐? 그나저나 오호.. 귀엽다고? 이야... 귀여우면 끝난 거다. 대성이의 목소리로 직접 들으니 박진감 넘치고 좋았다. 나는 인기척을 하고 과방문을 열었다. 순간 당황한 두 사람.

"어 어쩐 일이야..? 알바 안 갔어?"○○선배가 묻는다.

나는 대성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손 빗질로 길들여진 듯 귀뒤로 넘겨진 머리카락. 날렵한 턱선과 그 아래 툭 튀어나온 목젖. 무심한 듯 나를 쳐다보는 눈빛.대성이는 같지만 다른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다.

"아이고 집에 가야겠다"

대성이가 가방을 들고 후다닥 과방을 나선다.


그날 이후로 종강파티만을 기다렸다. 술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게지는 것이 창피해서 그런 자리에는 가끔씩만 갔었고 가더라도 금세 일어났었다. 그런 나를 대성이는 늘 못마땅해했었다. 알바를 마치고 조금 늦게 합류했다.

"어 미수 왔네? 여기 앉아"

탁자를 이어서 붙인 직사각형 테이블 끝에 앉았다.

"자 한잔 받아" 선배 중 하나가 맥주를 채워준다.

대성이는 대각선 끝에 앉아서 선배들과 떠들며 웃고 있었다. 벌컥벌컥 나는 연신 잔을 비웠다. 모습이 신경 쓰였는지 안 보는 척 대성이는 힐끗 거렸다.

주황색 불빛 아래에 테이블 끝과 끝에 앉아서 우리는 팽팽한 줄을 서로 당기고 있는 듯했다. 잔을 들어 술을 마실 때 일부러 대성이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대성이도 취했는지, 아니면 끝과 끝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에 안전하다 느꼈는지 혹은 에라 모르겠다 했는지 가끔씩 노골적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대성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담배를 피우려는 모양이다. 칼을 찬 장수의 심정으로 대성이를 따라 나갔다.


추운 겨울 매서운 바람이 뜨거운 볼에 닿아 김이 모락모락 날 것 같았다. 정작 연기 속에 있는 것은 대성이었다. 주점 옆 좁은 골목 끝에 대성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대성이가 있는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대성이는 점차 자신에게 다가오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져서 바람마저 형태가 보이는 듯했다. 나는 대성이 앞에 도착했다. 얼마동안 우리는 말이 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너 나 좋아해?"

나는 내 스타일대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당황한 기색도 없이 여전히 나를 쳐다보며 대성이가 연기를 뿜는다.

"아니"

"선배들이 그러던데? 네가 나 좋아한다고? 왜 네 마음 안 받아주냐고 나한테 그러 던데?"

대성이는 마치 큰 벽처럼 말이 없다.

"그리고 나 다 들었어. 네가 나 귀엽다고 한 거. 네 입으로 그랬잖아. 내가 좋아 죽겠다고. 나 다 알아"

대성이는 여전히 나를 쳐다볼 뿐 말이 없다.

술기운 때문일까. 대성이가 자꾸만 잘생겨 보였다.

" 진미수. 내 눈 똑바로 봐" 이윽고 대성이가 피고 있던 담배를 손가락으로 몇 번 털어 끈 후 내 어깨를 잡는다. 나를 내려다보는 대성이의 눈동자 속에 빨간색 코트를 입고 서있는 내가 보인다.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나는 후퇴하지 않고 말했다.

"그게 나자나" 피식 웃는 대성이가 하얀 입김을 토해낸다.

"아니 2학년 선배야"

누구? 혹시 그 야리야리하고 동그란 안경 쓴 2학년 과대 ◇선배? 맨날 너랑 둘이서 식당에서 밥을 같이 먹던? 조금의 타격감도 없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내 인생 첫 키스를 대성이와 한다면 멋있겠다고 생각했다. 대성이의 눈. 코. 입을 차례로 보았다. 대성이가 이대로 나를 잡아당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렇구나.... 알았어."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진심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지만 그만 대성이를 두고 돌아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대성이가 내 오른팔을 잡아 돌리더니 와락 껴안았다. 조금 전 상상대로 난 대성이의 가슴팍에 안겨있었다. 대성이는 내 왼쪽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정인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내듯 한 손으로는 내 허리를 잡고 다른 한 손은 내 머리에 대고 있었다. 적막뿐인 그 좁은 골목 안이 뮤직비디오처럼 몽환스러웠다. 대성이가 얼굴을 들어 내 두 눈을 응시했다.

"키스해도 돼?"

"아니. 안돼"

대성이의 뜨거운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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