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밝은 밤
나는 가끔씩 죽고 싶다. 오늘은 샤워를 하다가 다 끝이 났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두렵다니 피식 웃음이 났다. 뒷짐을 지고 가파른 뒷산을 쌕쌕 대며 올랐다. 정자에 가니 덤벨이 있길래 두 손으로 잡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했다. 집에 돌아오니 입고 나간 옷에 차가운 바람에 묻어있다. 해진 옷의 구멍 속에 들어있었던 모양이다. 지체 없이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읽기만 하려는데 훔치고 싶어 안달이 난 손이 간지럽다. 노트를 찾아 필사를 했다. 감탄을 하며 창밖을 보니 달이 엄청 크게 걸려있다. 3년 된 묵은지를 꺼내 돼지고기를 넣고 폭폭 끓였다. 상도 차리지 않고 싱크대에 서서 게눈 감추듯 먹었다. 귤 3개를 까먹고 믹스커피도 뜨끈하게 마셨다. 계란이 똑 떨어져 동네 마트에 가서 두 판을 샀다. 친한 고교동창이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어제 술 취한 신랑을 데리러 가는데 라디오에서 나온 노래를 듣고 내 생각이 났다고 한다. 나는 어제 전혀 누군가가 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아.. 내가 몰라도 누군가가 나를 생각할 때도 있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친구는 요즘 어떻게 살기에 연락도 없냐고 섭섭해했다. 통화를 마치고 친구의 이름이 찍힌 휴대폰을 보며 못다한 말을 전했다. 나는 요즘 겨울이 좋아졌어. 실은 몇 년 된 것 같아. 칼처럼 생긴 바람이 얼굴을 긋고 지나가면 베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뺨을 때려주는 것 같기도 해서 좋아. 사실은 이런 말이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