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차 회사생활을 다음 달 말일 끝으로 접게 되었다. 내가 아닌 남편의 회사생활이 끝이 다가온다. 자발적 은퇴도 아니고 회사의 경제난으로 IMF 사태 때도 건재했던 세아그룹 계열사였던 회사가 코로나 이후로 재정 악화가 심화되어 작년 하반기 때부터는 심폐소생술을 시도조차 못할 지경에 이르러 폐업을 하게 되었단다.
남편으로부터 이런 소식을 들었을 때, 걱정반 안심반이었다. 걱정이라 함은 아직 고2 자녀가 있고, 20년 넘게 일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실직하면 원치 않은 우울증 손님이 찾아오진 않을까 하는 우려와 안심반이라 함은 그간 쉬지 않고 일만 해온 사람이라 건강에 이상이 올까 했는데 이번참에 쉬면서 건강에 신경 썼으면 좋겠다는 다행스러움?
무튼 복잡한 내 심정을 알기라도 한 듯, 남편님이 말씀하신다.
"우리 노후준비는 네가 걱정 안 해도 돼. 쉬면서 소소하게 놀러 다닐 거야." 뭐시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는 남편을 향해 되물었다. "나는?" 남편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네기 위한 멘트는 바로 건너뛰고 머릿속의 필터링 없이 '나는?' 이라니.. 나도 참 나다.
그간 고생한 남편을 왜 모르겠는가? 남들 놀 때 쉬지 않고 일만 하는 사람이라. '일중독자' 소릴 들어가면서 일해왔던 사람이었는데.. 그 흔한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하는 나 자신이 얄미워진다. 남편 눈에 보기에는 난 철없는 아내이렸다.
3년 전부터 남편의 시름은 있었으나, 워낙 성실했던 사람인지라, 걱정은 하지 말라고 나에게 당부했지만 아직 50 초반이고, 한창 활동할 시기인지라걱정이 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경기가 안 좋다는 아우성은 여기저기에서 들렸지만 막상 우리 가족 앞에 닥친 현실을 마주하려니 아직은 얼떨떨하다. 그나마 야무진 딸아이가 자기 미래 계획은 준비를 잘하고 있는 듯하여 안심이긴 하나, 뒷바라지를 끝까지 못해줄 것 같은 약간의 불안감은 있다.
다음 주까지 퇴직결정을 할지 말지 정해야 한다는데, 막상 퇴직하려니 남편님의 마음은 복잡해 보였다.
평소 남편은 내가 직장을 갖는 걸 원치 않아서 아니 결사 반대했기에 지금 아르바이트하는 일도 겨우 일주일에 3일 정도 다니도록 허락받고 다니는 것이라, 전 시간 직장을 구해야 하나? 내 마음도 복잡하기 마련이다. 전에 다니던 직장도 내가 그만두진 않은 이상 다닐 수 있었던 직장도 신랑의 극심한 반대로 6개월 만에 그만둔 선례가 있었다. 그만두면서 신랑한테 당부했던 건 앞으로 내가 직장을 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했건만....
사람이 살면서 계획대로 모든 일이 잘 된다면 무엇이 걱정이 있으랴. 사람 사는 일이야 롤러코스터 타듯 불규칙할 수도 있고, 무난한 삶을 살다가도 시련을 겪는 일들도 있듯이,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나에게 위로가 될까? 겉으론 행복해 보여도 집집마다 시름은 한 두 가지씩 다 있기 마련 아니겠는가?
현재 겪고 있는 시련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구름 뒤에 숨어 있을 희망을 생각해 보자. 어쩌면 현실은 더 나아질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눈이 등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온몸이 밝을 것이지만 우리의 눈이 어둠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 어둠이 깊고 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몸이 밝아지도록 등불에 초점을 맞추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