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의 소통

제2의 삶을 꿈꾸며

by 정은영

요란한 ⛈️ 천둥번개가 한바탕 휩쓸고 간 오후 5시 30분.

어둡고 무거운 구름이 도시를 감싸고, 경쟁이라도 하듯 서둘러 불빛들이 하나둘 켜진다.

어둠을 재촉하듯 잿빛 먹구름이 온 도시를 장악해가고 있는 이 시각.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창밖은 스산한 공기를 머금은 채, 겨울이 오는 골목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덩달아 바빠지고 있다. 축축한 도로 위로 차들도 급하게 차량등을 켜며 오가고 있다.



창문에 빗방울들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또르르 떨어지는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 천둥번개 때문에 무서워!" 살짝 흥분된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잠시 집에 들러 다시 학원을 가야 하는 딸아이에게 비가 올 수 있으니, 우산을 챙겨가라고 한 상황이었다.

"엄마? 민증 받았어!" 18살이 된 딸아이는 2주 전 민증 발급 통보를 받고, 신청을 했었던 터라, 목이 빠져라 민증을 받고 싶었던 따님은 드디어 민증을 손에 넣자마자, 신이 난 모양이다.

벌써 따님에게 민증이 생기다니...

세월이 무심히 흘러가는 듯 하지만 과정 속엔 수많은 일들이 얽히고설켜있었을지 모른다. 아직도 내겐 마냥 아기 같은 따님이 민증이 나오다니, 이는 곧 나도 나이가...ㅜㅡ 이런저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틀 전, 따님과의 일촉즉발 상황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따님과의 사이는 그리 나쁘진 않았지만 무척 요즘 예민해진 그녀에게 신경이 쓰였었다. 고2인 그녀는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 갈팡질팡하고 있던 터라, 그날도 조금 더 예민한 날인 것 같았다. "딸? 민증 나왔는지 확인해 봤어?" 순간 그녀의 미간이 일그러지면서 "엄마! 내가 알아서 해." 하면서 홱 돌아서는 그녀를 어이없이 바라본 나는 내 마음 저 깊은 속에서 확 올라오는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뭐라고? 방금 엄마한테 뭐라고 말한 거야? 지금 엄마한테 짜증 낸 거니? 어떤 포인트에서 네가 짜증 나는 상황인거지?"라고 내 입은 멈추질 않았다. '꼭지가 돈다'는 말이 여기서 나오는 건가?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엄마를 친구처럼 편하게 생각하는 건 알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거실로 나와." 하며 나는 최대한 화를 참고 명령조로 말하지만 이미 내 말투의 온도는 차가웠다. "엄마가 다른 건 넘어가도 네가 엄마를 무시하는 태도는 그냥 넘기기엔 힘드네. 엄마가 우습니?" 하면서 나는 브레이크 고장 난 차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는 반성하고 있다기보다는 불만스러운 표정과 왜 본인이 엄마한테 혼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엄마가 이 집을 나갈까?" 이런 말을 던지고 나서야 후회가 밀려왔다. "아니, 내가 나갈게." 그녀의 대답에 내 눈알이 돌아가는 소리가 이내 내 뇌 속을 헤집어 놓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주걱을 찾아들고, 그녀 앞에 다가갔다. "방금 뭐라고 했어?" 하면서 그 주걱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향해 내리쳤다. "아..!" 하면서 신음하며 무릎을 꿇은 그녀는 아픈지 얼굴이 일그러졌다. 계속 허벅지를 손으로 비비고, 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한테 그게 할 소리니?" 하면서 '그러게 왜 엄마라는 사람이 딸아이한테 그런 말을 내뱉냐고...' 하면서 나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다. 딸아이가 너무 아프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나약해지지 않기 위해 나는 긴 호흡을 내쉬었다. 나는 한동안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곧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프니?" "........" 아무 대답 없는 그녀에게 "엄마는 더 아파. 알아?" 하면서 내 화를 잠재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애를 썼다.

"엄마도 부족한 사람이야. 하지만 네가 무엇 때문에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으나, 짜증이 난다면 무엇 때문에 짜증이 나는지 엄마한테 말해주면 좋겠어. 물론 싶진 않겠지만 것도 네가 노력해야 할 부면이야. 너의 감정을 제어하는 법도 배워야 하지 않겠어?"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던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그녀의 힘껏 힘을 준 눈 근육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어려운 공부가 자녀와의 소통인 것 같다.

그녀와의 소통을 위해 처음엔 내 감정을 추슬러야 했기에 힘들었지만 이제는 부모로서 자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징계를 해야만 했다. 물론 폭력으로 징계는 아니다. 체벌이라는 명목으로 자녀에게 화풀이 대상으로 가하는 행위는 폭력이다. 나는 과연 체벌이라는 명목으로 화풀이를 자녀에게 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맞은 허벅지가 아픈지 계속 허벅지를 비비는 딸아이를 바라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허벅지가 괜히 움찔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멍이 들까 봐 '연고를 발라줄까'하는 마음이 들다가 곧 그런 행동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멍이 들었다면 그 멍은 엄마의 마음도 커다란 멍이 들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올바른 징계는 언제나 어렵다. 나는 자리에 일어나,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가서 고구마를 찾아 요리하기 시작했다. 딸아이와 좀 더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고구마탕을 하기 위해서다. 참...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달콤한 고구마탕을 후다닥 만들어 접시 위에 올려 식탁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딸? 이리 식탁으로 와서 앉아. 고구마탕 엄마랑 같이 먹자." 내가 부엌으로 간 사이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피신하고 있었다. 못 이기는 척하면서 나오는 그녀는 "갑자기?"말하고는 이내 식탁에 앉아 포크로 고구마탕 한 개를 찍어 한입 베어 물었다. "엄마? 왜 갑자기 고구마탕이야?" 속으로 나는 '묻지 마 이것아!'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고구마탕을 해준 엄마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과 입은 기분이 좋은지 "엄마! 이거 고구마탕 어떻게 한 거야?"

"왜?"내가 묻자. "코팅이 예술이야. 골고루 잘 베었어." 딸아이의 음식 평가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화해?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나도 내 감정을 잘 다스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엄마! 근데 나 허벅지 무지 아파.""아프라고 때렸지, 그 상황에서 간지럽게 해 줄까?" 하며 나는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근데, 엄마 나 내일이 되면 시퍼렇게 멍이 들 것 같은데.. 어떻게 해?" "다른 허벅지도 똑같이 만들면 되겠다. 그렇지?" 하는 내 말을 듣던 딸아이는 손사래를 치며 "살려줘.. 엄마....!" 하며 서로 웃기지 않는 상황인데, 서로 실소를 터트렸다.

그다음 날 아침.. 학교를 가던 중, 딸아이의 톸 문자가 도착했다. '카톡이 와쪄여...'

"엄마! 나 허벅지가 멍들었어. " "응... 예쁘게 멍들었지? 색깔이 맘에 안 들면 언제든 말해.. 엄마가 예쁘게 나오도록 연구해 볼게." "헉.... 엄마..... 으..... 악"

그녀와의 소통....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ㅡㅜ.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열심히 일한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