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기온차가 커서 외출복을 고르는 일도 일이다. 아르바이트를 가야 하기에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뜨게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좀처럼 침대와 몸을 분리하는 과정은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간신히 몸을 일으켜 거실을 지나 화장실로 향하던 발걸음은 이내 딸아이 방 앞에 멈추었다.
인기척이 없는 딸아이의 방문을 빼꼼히 들여다보았다. 10월 3일 개천절 휴일인데, 한참 달콤한 잠에 빠져있을 아이가 없다. 순간 대체 얘가 어딜 간 거지? 뇌를 굴리며 생각하던 중 간밤에 딸아이의 카톡문자로 "엄마? 내일 친구들이랑 새벽에 만나서 서울에 가야 돼"라는 문자 내용이 생각났다. "서울은 왜?" "친구가 서울에 취직했는데, 거기 가서 사진 찍고 오라고 했대." "누가?" "학교 샘이"
학교 담임선생님은 딸아이에게 대학이냐, 취업이냐를 두고 고민을 하는 딸아이에게 대학을 권유했지만 딸아이는 자신은 먼저 취직을 원한다고 하여 집 근처 법원 앞 법무법인 땡땡 회사에 실습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보건대학에 담임선생님이 딸아이의 수시원서를 대신 넣었고 후에 합격통지서를 받았지만 담임선생님이 대학에 가지 말고 여기 회사에 무조건 3년을 버틴다면 재직자 취업 전형으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며 가지 말라고 문자가 와 있었다. 남편이나 나는 딸아이가 어떠한 선택을 하든 존중하기에 응원하기로 했다.
그런데 딸아이의 친구도 서울에 취직을 했다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를 소리를 하고 새벽 일찍 나간 모양이다. 무튼 의문을 가진 채 나는 일터로 향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이웃 언니와 통근버스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괜스레 딸아이의 오늘 일정이 신경이 쓰여 톸으로 "딸? 지금 어디니?" 몇 분이 지나도 답이 없는 톸을 들여다보며 답답한 마음에 딸에게 전화를 했다. 두어 번의 신호음이 가다 "엄마? 왜?" 수화기 너머에 전철 안 안내 멘트와 같은 주변 소음이 들렸다. 동트기 전 일찍 집을 나선 후유증 탓에 딸아이의 목소리는 졸음에 겨워 목소리가 갈라졌다. "너 어디 가는 거니?" "몰라..친구들이 무작정 가자고 해서 나도 지금 어디 가는지 몰라. " 아니 이게 무슨.. 순간 횡설수설하는 아이의 대답에 황당했다. 담임선생님이 가서 사진 찍어 오라는 말은 대체 무슨 말인지 답답하여 물어보니 "몰라" 하고는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에 "너희들이 정확한 행선지는 말해줘야 부모님들이 걱정을 안하지." 속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콱 막힌 듯 답답함과 불안감이 엄습했다. 결국 내가 원하는 답은 얻지 못한 채 통근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의 통화 내용에 주위 언니들과 동생들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집에서 회사까지 십여분 짧은 거리임에도 오늘따라 삼십여분 길게 느껴지는 이 지루함과 답답함은 쉽게 떨쳐내기 힘들었을 순간 딸아이로부터 카톸 문자가 왔다.
구글지도와 함께 보이는 장소 모 카페 서초구청점이 보였다. "여기 가래." "엥?" "몰라요. 나도 왜 가는지.. 묻지 마요. 나도 모르니까 ㅋㅋㅋ" 이런 황당한 문자에 슬슬 걱정이 되고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어느새 통근버스는 회사에 도착했지만 내 이성과 감정이 충돌하기 시작하여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동료분들도 옆에서 같이 걱정해 주는 가운데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담임선생님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휴일에 쉬고 계실 선생님께 너무 미안했지만 어찌 된 상황인지 알아야 했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했다. "아..선생님? 쉬시는데 너무 죄송해요. 딸아이가.." 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선생님은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하셨다. 친구가 취직한 곳에 가서 사진을 그것도 휴일에 가서 찍어 오라는 것은 절대 없다고 한다. 취직한 곳이 서울 모 카페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하셨다. 담임선생님은 일단 걱정하지 말라며 딸아이와 직접 통화해 보겠다고 나를 안심시키고는 전화를 끊었다. 딸아이에게 톸으로 혹시 커다란 건물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거든 무조건 빠져나오라며 혹시 모를 다단계에 끌려가는 게 아닌가 싶어 딸아이에게 빨리 내려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과 딸아이와 그 친구들의 엇갈린 내용은 타들어가는 내 마음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전화를 통 받지 않는 딸아이가 십 여분이 지나 전화를 받자. 이내 나는 이성을 잃기 시작해 딸아이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일을 해야 하기에 더 이상 통화가 불가능했고 그렇게 나는 몸과 마음이 분리된 채 일하러 발길을 돌렸다.
시간은 흘러 점심시간이 다가오자마자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열어보았다. 부재중 전화 3, 톸 문자..
담임선생님의 연락이었다. 딸아이가 전화를 안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속도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손이 아니 몸이 떨리는 것인지 땅이 흔들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딸아이에게 전화를 거니 아이가 전화를 받는다. 안도감과 동시에 화가 치밀어 어디냐고 다그쳤다. "엄마 그게 아니라.... 아까 전에 담임샘과 통화했어요. 엄마가 크게 오해한 거 같아요. 우리 정말 서울 여기 서초동 카페에 왔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근처 편의점 왔어요. 엄마가 걱정하는 거, 그거 아니에요... 죄송해요. 걱정하게 해서..." 저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딸아이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해 보였다. 걱정한 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싶기도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시도했다. "선생님? 죄송해요. 방금 딸아이와 통화했어요." "아니에요. 어머님! 분명 상황이 심각한 내용이었어요. 어머님이 걱정하실만했어요. 내용을 알아보니 친구 중에 한 명이 서울 모회사에 취직한 건 맞아요. 카페가 아니고요. 알아보니 그 회사가 좋은 회사더라고요. 이 친구가 서울길을 잘 모르니 취업담당 선생님께서 첫 출근 전에 시간이 되면 주말에 한 번 갔다 오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부분을 어머님께 제대로 말씀을 못 드렸던 거 같아요. 희주가 친구랑 같이 가주고 싶다고 몇 주전에 얘기했었는데 그걸 잊었다고 하던데요.. 그런데요. 어머님?..
희주가 학교 생활에서나 지금 회사 실습생활을 너무 잘하고 있어요. 회사 관계자분들이 일 잘한다고 칭찬이 자자해요. 그러니까.. 희주 많이 혼내주지 마세요."
"아.. 네 선생님! 희주가 밖에서는... 잘하나 봐요?" "하하하하.. 어머님.. 네.." 아무래도 딸아이가 담임선생님께 미리 무언가 부탁을 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선생님? 다시 한번 쉬는 날 죄송했어요."
이렇게 한바탕 소동이 휩쓸고 간 오늘 하루가 지나간다. 다행이었고, 후들거렸던 손발이 힘이 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