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시작하며 2
블로그를 시작하며 1
자존심이 강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윤랜드’의 상상을 밖으로 꺼내놓았다. (윤랜드에 대해서는 언젠가 따로 이야기하겠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어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죄책감 때문에 나의 자존감은 더욱 낮아져 갔다.
그러다 결국 거짓말은 하나둘씩 들통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았고, 나 스스로의 재치 덕분에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여전히 '거짓말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그 죄인의 무게가 너무도 버거워서, 나는 그때 몹시 괴로워했다.
내 기준에서, 죄인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래서 나는 벌을 받았다.
초6 하고 중2 때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왕따를 당했다 (같은 애).
한 번은 사과받고 다시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왕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거짓말에서 비롯된 죄책감과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나라는 존재가 귀찮았던 걸까.
혹은, 아무런 이유조차 없었던 걸까.
—어찌 되었든, 나는 왕따를 당했다.—
특히 상처가 되었던 것은 체형에 대한 비난이었다. 내가 응원하던 아이돌에 대해, "이런 뚱뚱하고 못생긴 애가 팬이라니 불쌍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냥 철없는 중학생의 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저주와도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나는 뚱뚱하고 못생겨서, 사랑하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불가능해."
작은 불안이 확신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그날은 수요일이었을까, 아니면 금요일이었을까.
부모님이 일을 나가고 혼자 남은 방에서, 그 비난이 적힌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이 저주는 오랜 세월 동안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친했던 그 친구는 어느새 내 우상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뛰어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찾아내어, 내 몸과 비교했다.
그녀를 계속 생각했고, 그녀보다 내가 나아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과 함께 비열한 만족감을 느꼈다.
존경과는 다른 감정이었지만, 분명 열등감이었다.
그녀는 바이올린을 잘 연주했다.
그녀와 나는 달랐다.
하지만, 창의력과 재능 면에서는 묘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늘 경쟁 상대였다.
어쩌면 그녀도 나와 같은 열등감을 느꼈던 걸까.
그래서 나를 괴롭혔던 걸까.
왕따가 끝나고 내가 한국으로 떠난 후에도,
나는 계속 그녀를 의식했다.
내가 잘했던 것은 공부뿐이었기 때문에, 고1 때 목표 대학을 정하고 그 꿈만을 바라보며 달려갔다.
매일같이 "이 대학에 들어가면, 걔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야."
그 기대를 품고,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그녀도 나를 의식했을까?
조금은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작은 단서들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어느새, 나는 그녀의 저주에서 벗어나 있었다.
고3이 되고, 나는 무사히 내가 꿈꾸던 학교에 합격했다.
그리고 많은 희망을 품게 되었다.
시간이 나를 구해주었다.
아무 소식이 없다가 그녀가 나와 같은 대학교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공통 친구를 통해 들었다.
살갗이 벗겨지는 듯한 고통과 공포를 느꼈다.
"살을 빼야 해."
그렇게, 극단적인 다이어트가 시작되었다.
나는 언제나 A+를 받는 모범생이었고,
고등학교도 수석으로 졸업했다.
94점 이하의 점수를 받으면 울었다.
그래서 체중도, 옷 사이즈도, 칼로리도, 모든 숫자에 집착했다.
애플워치로 소모 칼로리를 측정했고, 걸음 수를 셌다.
나는 단순히 외모를 바꾸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완벽하고, 왕따를 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있어 ‘그 아이’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하고, 일하고, 움직였다.
앉아 있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꼈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했다.
아르바이트와 동아리에 열중하는 친구들을 보며,
오로지 공부만 하는 나는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최소한 돈을 모으자고 다짐했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극단적인 절약 생활을 했다.
청바지를 손빨래했고, 며칠 동안 숙주나물만 먹으며 버텼다.
하지만 완벽하게 To-Do 리스트를 끝내는 나 자신이 좋았다.
날카로운 눈매와 뚜렷한 턱선이 좋았다.
내 삶이 내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 좋았다.
그것은 조건부 자존감 (contingent self-esteem)이었다.
168cm, 67kg였던 몸무게는 6개월 만에 39kg이 되었다.
내 삶은 확실히 무너지고 있었다.
외롭고, 밤마다 울었다.
하지만, 내 얇은 피부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6:00 기상
devotion
Morning routine (따뜻한 물 마시기, 스킨케어 등)
스트레칭, 폼롤러, 운동 (1시간)
학교 가기
방과 후: 공부
운동 (총 500kcal 소모)
저널링
하루 최대 600kcal 섭취
드레싱 없는 샐러드, 요구르트, 바나나, 오트밀, 계란, 두유, 블루베리
→ 이것만이 허용된 음식이었다.
그러다 12월.
이상하게도, 갑자기 세상이 즐거워졌다.
마음속의 짐이 사라졌다.
해방되었다.
몸에서 에너지가 넘쳐났다.
감정이 되살아났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돈을 쓰기 시작했다.
메이크업이 즐거워졌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39kg가 되었다.
진심으로 거식증 치료를 결심했을 때, 나는 이미 해리 상태였다.
내 몸은 EXTREME HUNGER (극심한 허기)로 혼란스러웠고, 내 자아는 점점 흐려졌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나는 처음으로 정신과를 찾았다.
그때는 아직 진단을 받지 않았지만,
그것이 조울증(양극성 장애)의 시작이었다.
나는 여전히 치료 중이다.
하지만, 이 왕따 시킨 아이에서는
많이 해방이 되었다.
거식증 후에는 폭식증도 찾아왔다.
그 이야기는 또 다음에 하겠다.
조울증과 대학에서 만난 새로운 우상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