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정착하는 다양한 이유들과 방법

피난민 출신 세무전문 회계사 이웃

by SueB

이웃들 중 출근시간이 비슷한 사람들은 기차를 기다리다 보면 주기적으로 만나게 된다. 낯선 이들과도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관습에 따라 자연스럽게 친하게 된 000가 있다.


그녀는 에티오피아 출신으로 이집트에서 피난 생활을 10년 정도 하다가 가족전부 피난민 정착프로그램으로 호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벌써 2명의 아이엄마였으며 이곳에서 2명의 아이가 더 생겨 큰 애들은 벌써 대학을 다니고 밑에 둘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4명의 아이들을 키운 것도 놀라운데 그녀는 이집트에서 피난민 생활을 하는 동안 거의 제대된 교육도 못 받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호주에 와서 대학에서 회계를 전공하고 일을 하면서 CPA(공인회계사) 과정까지 마치고 큰 통신회사에서 세무전문 매니저로 일을 하고 있었다.


겉보기엔 나와 비슷한 검정 재킷에 검은 바지, 편한 신발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기차를 기다리고 있던 평범한 아줌마였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놀라움은 커져만 갔다. 히잡을 쓰고 있지 않아 몰랐지만 무슬림이었고 그렇다면 가정일에 남편의 도움은 거의 기대할 수 없을 텐데 4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현 직장의 매니저까지 올랐다니...


돈을 싸들고 유학 와 편하게 공부하는 유학생들도 실패하는 확률이 높은 과정들을 어린 시절 일어난 내전으로 이집트로 피난을 가 공부도 제대로 하지도 못한 그녀가 다 통과하고 사회구성원으로 잘 살아나가고 있었다.


당시 무슬림의 교리에 반하여 남자친구와의 동거를 위해 집에서 도망간 딸의 문제로 하소연하며 좋은 대학에 가서 엔지니어로 큰 회사에 취업한 큰아들과 너무 다른 행보를 보이는 딸이 이해가 안 돼 미치려고 하던 000는 한국에서 자식문제로 고민하던 많은 언니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문화와 세대의 갭은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니까.


50이 넘었던 그녀가 하던 부모님 건강문제, 자신의 건강문제 그리고 은퇴준비 등등을 지금 내가 50이 넘어하고 있으니 대부분 우리들의 인생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비슷하게 흘러가나 보다.


20년 전 내가 처음으로 일하던 호주회사는 이민자들의 영어교육을 정부에서 펀딩을 받아하는 곳이었다. 얼마뒤 수단에서 내전이 발발해 수단 피난민 정착프로그램이 생겼을 때 우리 회사가 펀딩을 받아 정착서비스를 제공하였다. 당시 공항에 마중 갔던 동료가 '키가 크고 마른 엄마가 조그마한 가방에 그들의 전재산을 담아 나오는 뒤로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쫄래쫄래 따라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라고 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두려움을 눈망울에 담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미래를 마주한 그곳에서의 삶은 어땠을까? 상상하기 힘들지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선 키가 유난히 크고 검은 수단인들은 어디에 가나 눈에 쉽게 띄었다 대부분 이슬람 교로 히잡까지 착용하면 아시안 유학생 수가 엄청나던 멜버른이었지만 그래도 백인이 대부분이던 이곳에서 너무나 차별화되어 보였다.


정착서비스를 위해 집을 구해주다가 보면 세입자가 수단피난민들이란 소개에 거절하는 부동산도 많았고(액면으론 다른 핑계를 대지만) 아이를 많이 낳는 관습 때문에 보통 4명 이상의 아이들과 부모가 한 가정구성원이라 정착서비스에서 제공되는 렌트비용으로 구할 수 있는 큰집은 대부분 서쪽의 끝 안 좋은 동네들에 한정되었다. 불행히도 안 좋은 동네에서의 인종차별 문제는 더 심각한 편이었다.


회사를 바꾸고 어느 정도 지났을 때 수단갱들의 문제가 뉴스를 가끔 장식하던 것을 보면 당시 그 어린아이들 중 일부는 적응이 힘들어 안 좋게 풀린 것으로 보인다. 하긴 그전에는 베트남갱, 또 그전에는 이탈리아갱 그리스갱들의 문제가 있었으니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멜버른인으로 스며들 것이다. 000처럼 훌륭하게 성장해 호주인으로 성장한 아이들과 잘 살아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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