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정착하는 다양한 이유들과 방법

동료회계사

by SueB

회계를 공부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공통점은 '동양인, 여자' 아마도 70%의 확률로 동양인 여학생들이 회계전공 강의실을 채우고 있었다. 한동안 호주정부는 회계, IT, 엔지니어링 과정을 공부한 학생들에게 같은 전공분야에 일한 경력 없이도 독립기술이민 영주권 신청을 허가했기에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무관하게 이 전공들에 몰리고 있었고 각 대학들은 Cash Cow(장학금이나 정부지원금이 아닌 현금으로 입금되는 현금이나 카드로 학비를 내는 유학생들을 부르는 은어)들을 최대한 받아들이기 위해 다양한 조건으로 입학시키기 시작했다.


영어가 안 되는 학생들에게는 본교 언어과정 3개월 또는 6개월 plus로 대학과정 입학을 제공하는 등 방만하게 입학인원을 늘려나갔다. 물론 입학한다고 다 졸업하는 것은 아니기에 여전히 졸업은 어려워 3년 과정을 4~5년 하는 것도 흔했으며 대학이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아마도 숫자에 강한 동양학생들의 특성상 남자아이들은 엔지니어링이나 IT로 여자아이들은 회계로 나름 고민한 선택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회사로 가도 신입 또는 2~3년 차들은 대부분 동양인 여직원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유일하게 백인 남성의 비율이 반을 차지하는 곳이 정부직에서 일을 할 때였다. 입사조건 자체가 시민권자이여야 하고 시큐리티 클리어런스를 통과해야 하며 주로 다루는 제품(?)들이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들이라 자연스러운 결과라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 입사 후 만나게 된 예쁘장한 베트남 출신 여자 동료와 친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한국음식을 좋아하던 그 동료와 점심이나 가끔은 저녁을 같이 먹으러 다니는 것도 좋았던 추억 중 하나이다. 자연스레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난 4살 때 호주로 와서 베트남어가 거의 불가능 한 그녀와 영어가 거의 안 되는 그녀의 엄마와의 관계가 신기했고 그녀는 한국에서 와 프랑스인인 남편을 만나 둘 다 호주 정부기관에 일하게 된 우리를 신기해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베트남 공산정부는 친미인사들의 숙청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한때 경찰로 일했던 그녀의 아버지는 안전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근접한 국가로 넘어가 피난민 생활을 하게 되었다. 쉽지 않은 생활 중 아빠는 건강이 나빠져 돌아가셨고 다행히 엄마는 5명의 자녀들과 호주로 피난민 정착프로그램을 통해 들어올 수 있었다.


5명의 자녀와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엄마는 베트남 커뮤니티가 있던 동네에서 현금 위주의 저임금을 받으며 일을 해야 했기에 (영어도 안되고 정부지원금을 최대로 받기 위해) 영어를 익힐 시간이 없었다. 당연히 자녀들의 교육은 순전히 학교에 맡겨야 했고 모두들 영어가 베트남어보다 편하게 되어 버렸다. 그래도 초등나이에 온 언니들은 어느 정도 베트남어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4살 때 온 동료와 그녀의 동생은 엄마와의 의사소통이 아주 기초적인 것만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동료는 자신을 베트남인도 호주인도 아닌 중간에 붕 뜬 상태로 인지하고 있었다. 언어도 기억도 없는 베트남인으로 보이기도 싫었고 그렇다고 호주에서 태어난 것도 아닐 뿐 아니라 생김새마저 전형적인 동양미인이라 어디 가나 어디 출신이냐고 질문을 받았기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힘들어했다. 다행이라면 이 동료는 심각한 것을 싫어하고 단순한 계산을 좋아하던 전형적인 회계사여서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었다. 단 남자친구를 사귀는 데는 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 은연중에 베트남 남자들이 끌렸으나 그들의 보수성은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호주에 정착하는 다양한 이유들과 방법